새벽을 여는 금강 변 간이역 사람들

최수경 2019.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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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 등 농작물 팔아 쌈짓돈 버는 소중한 발길 이어줘

 

01.jpg » 간이역인 영동 심천역은 등록문화재 제287호이다.

 

대전에서 호남선과 나뉜 열차가 하행하다 옥천역을 지나 닿는 심천역, 이 역은 7080세대에겐 교련복에 기타 하나, 카세트 리코더 하나 들고 비둘기호 올라타 놀다 왔던 금강 변 역이다. 대전역, 옥천역, 이원역, 심천역을 지나 옥천역, 황간역, 이런 역들은 간이역 형태로 온전히 남아있는데, 여기서 역사의 발길과 정취를 느끼기에 그만이다.

 

금강을 따라 역이 왜 이리 발달했을까? 아무래도 과거 교통수단으로서 강길을 통한 뱃길이 최단 경로였다. 황포돛배나 나룻배 등 무동력으로도 가능한 수운 교통이 결국 철도 때문에 사라졌지만 말이다.

 

철도 역시 가장 빠른 직선 경로는 아무래도 강길을 따라가는 경로일 것이다. 또 주로 강가에 사람들이 모여 살다 보니,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 기차역을 만들 수밖에. 강 따라 철로가 많이 난 이유도 여기 있을 것이다.

 

10.jpg » 금강의 지탄교를 건너는 케이티엑스 열차.

 

대전에서 경부선을 따라 내려가자면, 세천역, 옥천역, 이원역, 지탄역을 지난다. 그리고 영동군에 들어 심천역, 각계역, 영동역, 황간역을 지난다. 

 

추풍령역을 넘어가면서 금강 수계를 지나 낙동강 수계로 넘어간다. 또 대전에서 경부선을 따라 서울로 올라가면 회덕역, 신탄진역을 거치고 매포역, 부강역, 내판역, 조치원역을 따라 금강의 지류 하천인 미호천으로 올라간다.

 

지금은 케이티엑스가 생겨서 거의 모든 간이역이 사라졌지만, 과거에 이름을 많이 들어 본 역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역의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면 공통적인 것이 있다. 바로 물 수(水)자, 내 천(川)자, 여울 탄(灘)자, 갯 포(浦)자, 강 강(江)자를 쓴다는 것이다. 모두 물과 관련된 단어다. 강가에 나란히 서 있는 역이다 보니 이런 이름들이 붙었나 보다.

 

11.jpg » 지탄교 아래 개울에서 사람들이 다슬기를 잡고 있다.

 

그런데 강을 따라 난 마을이 많다 보니, 어찌 역을 자기 마을에 내고 싶지 않았겠나. 실제 역이 있는 마을과 없는 마을의 차는 매우 심해서, 기차역은 마을 사람들에게 신지식을 경험하게 한 관문이기도 했다. 대도시로 통학이 가능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시골 출신 아이들은 집을 떠나 도시에서 단칸 셋방에서 밥을 해먹고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역이 있는 마을의 아이들은 집에서 아침밥을 먹고 통학열차를 타고 다녔으니, 가방끈이 긴 아이들이 많았다.

 

당시 주로 땅만 파먹고 살기도 힘들었을 때였는데,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이러한 배움의 과정이 생활사와 연결될 수 있었으니, 신지식을 통해 깨어있는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12.jpg » 무궁화 열차가 하루 왕복 두 번 서는 지탄역.

  

지탄역은 대전역에서 세천역을 지나 옥천에 접어들면 이원역 다음에 있는 금강 변 역이다. 연못 지(池), 여울 탄(灘)이 마을 이름이다. 지탄역은 옥천군 이원면 지탄리 주변의 원동리 백지리 포동리 사람들이 이용하던 간이역이었다. 

 

13.jpg » 무인역 지탄역사.

 

지탄역 앞에 가면, 논 한가운데에 송덕비가 서 있는데, 자신의 사비를 털어 마을에 역을 유치한 박인보의 비석이다. 마을 사람들이 열차를 이용하게 해서, 마을의 경제와 문화와 역사를 바꾸고자 했으니, 1960년대에 매우 깨어있는 사람이었다. 

 

14.jpg » 지탄역추진위원회가 30년 전에 세운 박인보(朴仁輔) 공덕비.

 

지탄역은 아침 7시 반에 대전 쪽으로 한번, 점심 1시경에 추풍령 쪽으로 한번 선다. 한번은 새벽안개가 끼는 지탄역에서 기차를 기다린 적이 있는데, 학교 가는 통학열차를 이용하는 학생은 없었다.

 

새벽 열차를 기다리던 이는 마을 어르신들로 큰 봇짐을 메고 삼삼오오 나왔다. 허리는 구부정한데, 몸보다 더 큰 보따리 속에는 산에서 나물 해서 빨아 말려 자른 약초가 들었다. 대전역 앞의 약재시장에 팔러 가는 참이었다.

 

또 더러는 대전역 광장에서 새벽에 섰다가 아침나절에 사라지는 반짝 시장에 갖고 가는 짐이었다. 이렇게 내다 팔아 쥐는 쌈짓돈으로 평생 자식 교육을 시켰다. 다른 동네와 달리 이렇게 열차를 이용해 비교적 쉽게 쌈짓돈이나마 만질 수 있었다. 그래서 대전으로 학교 다니는 자식들이 비교적 많아 동네에 깨인 주민이 많았다.

 

15.jpg » 새벽시장에 가기 위해 나온 사람들.

 

그런데 2007년 케이티엑스가 생기면서 전국의 80여개 간이역이 폐역되고 말았다. 지탄역도 그중 하나여서 마을 사람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전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려면, 이제 옥천 읍내로 버스를 타고 나가 다시 대전 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무엇보다 차비가 왕복 6000∼7000원은 족히 되었다. 어떤 때는 만원 벌러 갔다가 차비로 7할을 쓰니 헛걸음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차를 타면 시간도 덜 걸리고, 왕복 3000원이면 해결되는데 말이다. 기차역이 폐쇄되고 나서 2년간 마을 사람들의 경제적 고충도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노쇠한 몸을 이끌고 몇 번이나 버스를 갈아타는 일이 힘에 부쳤다.

 

16.jpg » 옥천 읍내 시내버스 차부.

 

그러나 지탄마을 사람들이 누군가. 실제 역이 복원되는 일이 쉽지 않았는데, 지탄역의 경우 무인역이라도 내달라는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바람과 노력으로 만 2년 만에 아침에 상행선 한번, 점심때 하행선 한번 등 하루 두 번 정차하게 되었다. 일찌감치 마을에 역을 유치하여 신지식을 경험한 주민들이 많아서였던지 폐역 복원에도 주민의 힘이 발휘되었다.

 

17.jpg » 지탄역 무인역 표지판.

 

직원이 없는 무인역이었기에, 어르신 짐을 기차에 실어줄 가족이 한명씩 따라 나왔다. 기차가 오기 전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아 보였지만, 정작 타는 사람은 몇 안 되고 나머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차장이 돈을 걷으러 객차로 건너왔다. 차장은 누구누구 탔는지 뻔히 아는 듯한 얼굴로 동네 사람 보듯 인사를 한다. 기차표 발권이 자동화되어 소형 단말기를 갖고 다니며 입력해서 차표를 출력하고 있었다.

 

02.jpg » 열차요금을 수납하러 다니는 역무원.

 

차장도 연세가 지긋한지라 눈이 잘 안 보여서 단말기 화면 읽기를 힘들어했다. 한참 화면을 바라보는데도 영 진도가 안 나간다. “그렇게 더디다간 대전역 다 가도록 차표도 못 끊겠네요” 했더니 껄껄 웃는다.

 

실제로 지탄역을 출발하며 차표를 출력할 때면 어느새 대전역 즈음에 와 닿았단다. 과거에 어르신들은 정작 지탄에서 탔건만 차비를 아끼느라 옥천에서 탔다고 거짓말을 했단다.

 

그러다 보니 정작 지탄에서 많은 사람이 탔는데도 지탄에서 발권한 사람은 하나도 없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 지탄에서 승차하는 사람이 없다고 역이 폐쇄되는 한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또 역이 폐쇄당할까 마을 사람들은 이제 거짓말을 안 한다. 오히려 서로에게 열차 좀 타고 다니라고 홍보하고 다닌다.

 

03.jpg » 열차 승객을 반갑게 맞는 최성희 역무원.

 

불과 20분도 안 되어 기차는 대전역에 도착했다. 대전역을 빠져나온 할머니들은 봇짐을 지고도 내가 못 따라갈 정도로 빨리 달려갔다.

 

열차 옆자리에 마 꾸러미를 들고 올라탄 할머니의 짐을 선반에 올려드리면서 상당히 무겁다고 느꼈는데,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저리도 빨리 갈 줄이야. 이유는 목 좋은 자리를 빨리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04.jpg » 대전역에 도착하자마자 등짐을 메고 뛰는 할머니.

 

대전역 광장의 새벽 시장인 반짝 시장에 모여든 이 동네 저 동네 사람들은 익히 아는 얼굴인 양 반갑게 서로 인사했다. 지금은 대전역 광장에 택시 승강장이 생기면서 시장 자리가 많이 바뀌었지만, 임시로 불시에 열리는 시장이라 적당한 곳에 통로를 마주하고 봇짐을 푼다.

 

대전 인근의 시골에서 열차를 이용해 물건을 팔러 나온 할머니들이 봇짐을 풀자, 그 속에는 마 말고도 자두도 있고, 큰 매실도 있고, 참깨도 있고, 메주콩도 나오고, 또 참죽나물도 한 단 나왔다. 

 

05.jpg » 자리 경쟁이 치열한 반짝 시장.

 

그런데 이것들을 되도록 빨리 팔아치우는 것이 관건이다. 늦게까지 갖고 있다간, 임시로 앉은 자리라 경찰에게 곧 쫓겨날 수 있다. 오랜 역사가 있는 역전시장의 정겨운 문화가 공유되면 좋겠지만, 대전시에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와 대전역 철도 중앙시장 상인들이 반대하는 이유 등으로 역전파출소에서 9시만 되면 단속을 하기 때문이다. 

 

06.jpg » 대전역 광장 새벽 반짝 시장.

 

8시께 매우 분주하던 시장은 30여분이 지나자 어느 정도 고요를 찾았다. 이쯤 되면 더 있을 사람과 집에 갈 사람으로 나뉜다. 더 있을 사람은 이 자리에서 큰길 건너 중앙시장으로 비집고 들어가야 하고, 집으로 갈 사람들은 옥천 가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열차는 오후 1시에나 있어서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집에 가면 할 일이 태산이고, 또 이내 들어가 할아버지 점심도 차려야 하므로 마냥 앉아있을 수 없다.

 

지탄리 사람들은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 너무 멀어 불편하지만, 다시 개통시켜 준 것 만이라도 고마울 따름이다. 갖고 온 물건을 좀 아쉬운 가격이라도 팔아치우는 게 낫고, 내 물건을 좀 더 받고 누군가가 소매로 팔기라도 한다면 그로도 만족하는 것 같았으니, 참 마음 씀이 여유롭다. 

 

07.jpg » 500원에 싸웠다 웃었다 하는 시장.

 

할머니들 하루 벌이가 고작 많아야 3만∼4만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까는 서로 웃던 분들끼리 오백 원, 천원에 싸움도 하고 언성도 높인다. 이렇게 싼 가격으로 흥정만 하고는 비싸다고 안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참 의아할 정도다. 마 한 개가 마트에서 8000원 하는데, 마 한단 1만원이 비싸다고 하니, 새벽시장이니까 으레 싸다고 생각하고 더 깎는 것 같다.

 

철없는 백구 새끼들은 고개 내밀고 세상 구경하는데, 할 일 많아 새벽시장 짬 내 나온 할아버지 마음은 시간이 금이자 만감이 교차하는 모양이다.

 

08.jpg » 새벽열차 타고 강아지 팔러온 할아버지

 

한 쪽에 열무를 갖고 나온 할머니를 보고서 우리 할머니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여름 방학 때 할머니 댁에 가면 맞바람이 마당 안으로 들어오는 솟을대문 그늘에 멍석을 깔아놓고 열무를 묶었다.

 

짚으로 한 단씩 묶은 열무를 커다란 광주리에 나란히 둘러 담아 대전역 앞에 나가 팔았다. 하루는 할머니 따라 같이 버스 타고 나갔다가 옆에 앉아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할머니는 풀빵과 냉 주스를 사줬지만, 사람들 발길이 붐비는 곳에 앉아있으려니 심란해 미칠 지경이었다. 할머니는 그렇게 번 종이 돈 몇 장을 내 손에 쥐여주기도 했고, 당시 중고등학교 다니던 우리 고모와 삼촌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던 것 같다.

 

09.jpg » 열무를 단으로 묶어 나온 어르신.

 

새벽 열차에서 내 옆자리 앉았던 할머니가 다른 건 다 팔았는데 끝내 참깨를 못 팔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처음에는 8000원을 받으려 했지만, 자꾸 가격이 내려가더니 나중에는 5000원까지 내려갔다.

 

옆자리에서 다른 것을 팔던 어르신들이 국산 좋은 참깨 안 사면 후회한다고 호객하며 동지애를 발휘했다. 손님들은 자꾸 깎으려만 들지 사길 망설인다. 

 

결국 할머니는 “안 팔면 안 팔았지, 더 이상은 못혀” 하며 얼굴이 어두워진다. “할머니 제가 6000원에 갖고 갈 게요.” 결국 참깨는 내 배낭으로 들어갔고, 할머니는 옥천 가는 시내버스를 타려고 서둘러 달려갔다. 

 

그러다 이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대전역에 줄지어 선 택시기사를 상대로 냉커피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냉커피 한 컵 사주고 싶다며 그쪽으로 오라는 손짓이었다. 

“저는 됐어요. 할머니” 했더니 “아냐 사주고 싶어서 그려”라는 답이 돌아온다. 할머니는 500원을 커피 아줌마에게 쥐여주고는 “아가씨에게 주라”며 바삐 걸어갔다.

 

아줌마인 내가 할머니 눈에는 아가씨로 보였나 보다. 할머니가 사준 커피 한잔을 아침도 안 먹은 빈 속에 넣으면서 이렇게 달고 구수한 모닝커피를 또 마셔볼 수 있을까 싶었다. 

 

가슴이 따뜻한 이야기는 금강 변에 아주 많지만, 끊임없이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할 이야기이기도 하다. 할머니가 농사 지은 참깨는 새벽시장에서 내 배낭가방에 들어왔고, 그 참깨를 모두 먹을 때까지 지탄역 할머니 이야기는 계속되었던 것 같다.

 

최수경/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 소장,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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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경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 소장, 이학박사
10년 넘게 시민들과 함께 `비단물결 금강천리 트레킹'을 운영하고 있는 환경교육자이자 생태해설가. 대전충남녹색연합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이메일 : tnrud49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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