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도 죽은 동료 슬퍼할까?

조홍섭 2017. 12. 14
조회수 13672 추천수 0
페커리 ‘애도’ 추정 행동 첫 관찰…코로 비비고, 일으켜 세우며 떠나지 않아
두 마리는 곁에서 자고 코요테 쫓아내기도, 애도나 슬픔 때문인지는 아직 몰라

p1.jpg » 죽은 페커리의 냄새를 맡고 코로 비비는 행동을 하는 동료 페커리.

미국 애리조나주 교외에 사는 8살 난 단테 드 코르트는 지난 1월 동네 산에서 놀다 목도리페커리 한 마리가 병에 들었는지 너무 늙었는지 남다르게 행동하는 걸 눈치챘다. 페커리는 아메리카에 널리 분포하는 멧돼지와 먼 친척뻘인 사회성 동물이다. 

1월8일 단테는 이 페커리가 죽어 있는 걸 발견했다. 그 옆에는 페커리 두 마리가 자고 있었고 멀찍이 떨어진 곳에 두 마리가 더 있었다. 개가 짖자 무리는 흩어졌지만 몇 분 뒤 사체 곁으로 돌아왔다. 10일 그는 할아버지로부터 선물로 받은 동작 감지 비디오카메라를 사체 옆에 설치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학교 과학전에 출품할 생각이었다.

딸이 이 학교에 다니던 마리아나 알트리히터 프레스콧대 생물학자는 페커리의 세계적 전문가였다. 단테가 출품한 비디오를 보고 깜짝 놀랐다. 코끼리나 침팬지, 돌고래 등에서나 보던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듯한 행동이 비디오에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알트리히터는 과학저널 ‘동물행동학’ 최근호에 실린 단테를 제1저자로 한 논문에서 목도리페커리가 동료의 죽음을 대하는 특별한 행동을 보고했다.

p2.jpg » 페커리는 주로 밤에 두 마리가 죽은 동료 곁에 찾아왔다.

죽은 페커리는 다 자란 암컷이었다. 사람들이 사체를 발견한 첫날 산 위로 50m쯤 옮겼지만, 무리는 계속 찾아왔다. 장소가 아니라 사체가 관심거리란 뜻이다. 페커리들은 주로 밤에 찾아와 여러 시간 동안 머물다 갔다. 옆에서 자거나 먹이를 찾았다. 

무엇보다 사체를 코로 비비고, 슬쩍 물고, 냄새를 맡고, 지켜보고, 코를 밑에 넣어 들어 올리려 시도하는 등 독특한 행동을 했다. 연구자들은 죽은 동료의 몸을 만지고 일으키려는 행동은 코끼리와, 밀고 물고 흔드는 행동은 죽은 새끼에 대한 침팬지의 행동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p3.jpg » 페커리 2마리가 죽은 동료(앞쪽) 곁에서 잠자고 있다.

관찰 열흘째인 1월18일 사체 냄새를 맡고 코요테 4마리가 왔다. 곁에 있던 페커리는 수가 많은 코요테를 쫓아냈다. 그러나 결국 그날 코요테는 사체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페커리는 사체를 찾아오지 않았다. 

p4.jpg » 청소동물이 코요테가 사체에 다가오자 페커리가 이들을 쫓아냈지만 결국은 물러났다.

사체 곁에 주로 찾아오는 개체는 2마리였고 홀로 오기도 했다. 이들은 곁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이 페커리는 죽은 암컷과 무슨 관계일까. 연구자들은 “가장 자주 찾아온 페커리가 죽은 암컷과 유전적으로 무관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밝혔다. 코끼리의 사례에서도 사체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는 개체는 무리 일반이지 혈족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페커리의 이런 행동은 죽은 동료에 대한 슬픔을 담은 애도 행동일까. 코끼리, 영장류, 돌고래, 까마귀 등 조류 일부에서 보이는 비슷한 행동도 마찬가지이지만, 연구자들은 “슬픔이나 애도 행동인지를 판단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저 우연히 벌어진 행동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감정이 관여된 행동인지는 모르겠다는 것이다.

1280px-Collared_peccary02_-_melbourne_zoo.jpg » 아메리카 열대 지방에 주로 서식하는 목도리페커리. 멧돼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아주 먼 친척일 뿐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페커리는 북아메리카 남부에서 남아메리카 아르헨티나까지 분포하는 돼지아목에 속하는 동물로 길이 1∼1.5m, 무게 16∼27㎏이다. 5∼50마리가 무리 생활을 하며 긴밀한 사회생활을 한다. 흰입페커리의 경우 한 마리가 사냥당하면 무리가 달아나지 않고 죽은 동료 곁에 머물려 해 무리 전체가 사냥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de Kort D, Altrichter M, Cortez S, Camino M. Collared peccary (Pecari tajacu) behavioral reactions toward a dead member of the herd. Ethology. 2017;00:1–4. https://doi.org/10.1111/eth.12709

글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 단테 드 코르트 외 (2017) ‘동물행동학’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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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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