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나비가 7천만년 먼저 진화했다

조홍섭 2018. 01. 11
조회수 7871 추천수 1
2억년 전 가장 오랜 나방 비늘화석 발견
수분 섭취 위해 이미 긴 대롱 입 지녀

l1.jpg » 꽃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2억년 전 나비목 곤충의 비늘 화석을 찍은 전자현미경 사진. 바스 반 데 스쿠트부루헤 제공.
 
나비와 꽃은 서로를 돕는 대표적인 공생 생물이다. 나비는 꽃가루를 옮겨 식물의 번식을 돕고 대신 영양가 풍부한 꽃꿀을 먹는다. 나비와 나방은 꽃꿀을 효과적으로 빨기 위해 대롱 모양의 긴 대롱을 진화시켰다.

이런 상식을 뒤집는 발견이 이뤄졌다. 반 엘디지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원생(연구 당시)은 독일에서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지층에서 꽃가루 화석을 찾고 있었다. 땅속에서 확보한 퇴적암을 분쇄해 산에 녹인 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작업을 하던 중 낯선 물체를 발견했다. 원시 나방의 비늘이었다.

나비목(나방과 나비)은 매우 인기 있는 연구분야이지만 진화 역사는 베일에 가려있다. 화석이 드물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정설은 최초의 꽃이 피는 식물이 등장한 1억3000만년 전 최초의 나비목이 갈라져 나왔다는 것이다.

l2.jpg » 화석으로 발견된 원시 나방과 같은 무리에 속하는 대롱 입이 있는 현생 나방의 표본. 호세인 라자에이 제공.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나방 화석은 그보다 7000만년 전인 2억년 전의 퇴적층에서 나왔다. 발견한 비늘 화석은 70개였는데, 이 가운데 20개는 속이 빈 형태였다. 비늘이 다양한 것은 여러 종의 나비목 곤충에서 떨어진 비늘이 낮은 곳에 쓸려 들어 쌓였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2억년 전에 이미 다양한 나비목 곤충이 있었다는 것이다.

현생 나비목과 대조해 보면 긴 대롱 입을 지닌 나비목에서 모두 비늘의 중앙이 비어있다.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가장 오랜 나비목 곤충은 긴 대롱을 둘둘 만 형태의 입을 가졌을 것으로 보았다.

l3.jpg » 대롱 입을 지닌 현생 나방의 대롱과 거기 달린 비늘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호세인 라자에이 제공.
 
l4.jpg » 2억년 전 원시 나방의 비늘 화석. 위 사진의 비늘 형태와 유사하다. 티모 반 엘디지크 제공.

그렇다면 꽃꿀도 아직 없을 때 대롱 입은 왜 진화했을까. 연구자들은 “덥고 건조하던 시기에 효율적으로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 대롱 형태의 입이 진화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이후 원시 나비는 소나무 같은 겉씨식물이 공기 중의 꽃가루를 붙잡으려고 분비하는 당분 방울을 섭취했고, 백악기에 꽃이 피는 식물이 등장하자 꽃꿀을 빠는 본격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했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imo J. B. van Eldijk et al, A Triassic-Jurassic window into the evolution of Lepidoptera, Sci. Adv. 2018;4: e170156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작은 거인’ 새우 떼가 바다 뒤섞어 생태계 살려‘작은 거인’ 새우 떼가 바다 뒤섞어 생태계 살려

    조홍섭 | 2018. 04. 20

    깊은 바다 양분 끌어올려, 바람·조류와 함께 바다생태계 유지밤에 표면 상승 때 강력한 하방 제트류와 주변 소용돌이 생겨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대양은 사막과 같다. 유기물이 모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아 영양 부족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도 대양...

  • ‘초록 머리칼’ 거북은 생식기로 숨 쉰다‘초록 머리칼’ 거북은 생식기로 숨 쉰다

    조홍섭 | 2018. 04. 18

    총배설강에 아가미 기능, 3일까지 잠수호주 마리강 서식, 지구 136마리 생존오스트레일리아 동북부 퀸즐랜드 마리 강의 여울에는 특별한 거북이 산다. 길이 32∼42㎝의 제법 큰 이 민물 거북은 강변에 둥지를 틀고 급류가 흐르는 강에서 주로 사냥...

  • 북극서 빙하 밑 소금호수 발견, 외계 생명 찾기 단서북극서 빙하 밑 소금호수 발견, 외계 생명 찾기 단서

    조홍섭 | 2018. 04. 13

    얼음 밑 740m, 바닷물 5배 짠 물, 천지 크기12만년 고립돼 독특한 미생물 진화했을 듯빙하가 수백∼수천m 두께로 덮인 차고 캄캄한 얼음 밑에도 호수가 있다. 남극에선 빙상 밑에서 보스토크호를 비롯해 400여개의 얼음 밑 호수가 발견됐고(▶남극 ...

  • 플라스틱 먹고 죽은 고래…뱃속에 쓰레기 29㎏ 있었다플라스틱 먹고 죽은 고래…뱃속에 쓰레기 29㎏ 있었다

    조홍섭 | 2018. 04. 13

    스페인서 2월 발견 부검 결과 “플라스틱이 사인”비닐봉지, 로프, 그물이 장관 막아 복막염 유발“죽은 고래의 경고를 들으세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무슨 일을 일으키는지 가까이 와서 보세요.”필리핀 환경단체인 그린피스 필리핀은 세계 고...

  • 급류에서 개구리가 살아남는 법, 빨판과 초음파급류에서 개구리가 살아남는 법, 빨판과 초음파

    조홍섭 | 2018. 04. 10

    급류에 휩쓸리지 않으려 올챙이 배에 빨판 진화보르네오 급류 개구리는 소음 이기려 초음파로 울어공룡시대부터 지구에 살아온 개구리는 현재 4800여 종이 다양한 환경에 적응해 살아간다. 오랜 진화의 역사를 간직한 만큼 생존을 위한 기기묘묘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