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컷 농게가 원하는 건 섹스 아닌 보호

조홍섭 2016.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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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짓기 의사 없는 암컷도 준비된 암컷과 똑같이 수컷 선보는 행동

포식자 공격 땐 직전 방문 수컷 굴로 ‘직선 도피’…안전 위한 속임수


2Fiddler crab 1_cropped_0.jpg »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갯벌에 사는 흰발농게의 아종인 바나나농게 수컷. 큰 집세발로 암컷을 유혹한다. Patricia Backwell, ANU


서해나 남해 갯벌에서 가장 독특하게 생긴 게는 농게이다. 수컷의 한쪽 집게는 몸집만큼 커 비정상으로 보일 정도다.


수컷의 커다란 집게는 유용한 쓸모가 있다. 바로 암컷을 유혹하는 것이다. 짝짓기 상대를 고르는 암컷에게 수컷의 집게는 클수록, 빠르게 휘두를수록, 그리고 다른 수컷보다 앞장서 집게 춤을 출수록 매력이 있다.


암컷 농게는 이런 채점 기준을 가지고 갯벌에서 큰 집게를 휘두르며 짝짓기 군무를 펼치는 수컷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꼼꼼하게 짝을 고른다. 물론 집게만 훌륭해서는 안 되고 굴이 짝짓기와 대피에 적합해야 한다. 


이처럼 암컷 농게가 수컷의 굴을 찾아다니면서 퇴짜를 놓거나 수락을 해 굴 안을 방문하는 행동은 이제까지 널리 받아들여지던 농게의 짝짓기 행동이었다.


3Patricia Backwell, ANU.jpg » 농게 암컷은 수컷의 집게발이 클수록, 빨리 휘두를수록, 앞장설수록 더 매력적이라고 본다. Patricia Backwell, ANU


그런데 이런 핵심 가설을 뒤집는 연구가 나왔다. 패트리샤 백웰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 교수 등 연구자들은 31일 치 과학저널 <왕립학회 공개 과학>에 실린 논문에서 암컷 농게는 짝짓기뿐 아니라 피난처를 찾기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한다는 가설을 제기했다. 


백웰 교수는 “암컷 농게가 수컷 굴을 잇달아 방문하고 퇴짜를 놓는 행동을 이제까지는 늘 암컷의 까다로운 선택으로 해석했지만, 이번 연구는 눈에 보인다고 실제로 다 그런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농게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인도-태평양, 서아프리카, 서대서양, 동태평양 등의 갯벌, 홍수림, 염습지 등에 널리 분포하며 이곳 생태계의 건강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 농게의 번식행동을 잘 이해하는 것은 이 생태계 보전에 꼭 필요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 다윈 갯벌에 서식하는 바나나농게(Uca mjoebergi)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 농게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흰발농게의 아종이다. 


2014_101.jpg »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흰발농게. 농게의 집게발이 붉은빛인데 비해 흰색이다. 국립생물자원관


농게에게 가장 중요한 자산은 집게로 판 굴이다. 굴 끄트머리는 물과 닿아있어 탈수와 열 충격을 막아주고 새 등 포식자가 덮쳤을 때나 밀물 때 대피처가 된다. 무엇보다 이곳은 암컷을 불러들여 알을 낳는 번식지이다.


수컷은 굴로부터 지름 10㎝ 범위를 영역으로 삼아 먹이를 먹고 다른 수컷의 침입을 막는다. 만일 암컷의 선택을 받으면 구멍 속에서 짝짓기하고 곁에서 1~4일 동안 지켜 알이 암컷의 배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린다. 이어 구멍을 봉쇄하고 16~20일 지나면 암컷 배에 매달린 알주머니에서 유생이 깨어나와 밀려온 조류를 타고 흘러간다.


문제는 암컷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암컷이 나타나면 수컷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커다란 집게발을 힘차게 휘두르며 짝짓기 춤을 춘다. 


1Female fiddler crab_cropped_Andrea Westmoreland on Flickr.jpg » 암컷 바나나농게. 안전한 대피 굴을 확보하기 위해 짝짓기 상대를 찾아나선 것처럼 거짓 행동을 하곤 한는 것으로 밝혀졌다. Andrea Westmoreland, Flickr


암컷은 수컷의 춤을 감상하면서 최고 1시간까지 이 굴 저 굴을 옮겨 다니며 때로는 구멍 속까지 따라 들어가기도 한다. 암컷이 이렇게 선 보는 상대는 13마리에 이른다.


연구자들은 꼭 짝짓기할 준비가 된 암컷만 이런 행동을 할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춤파리의 일종은 배를 부풀려 알 낳을 준비가 된 것처럼 속여 수컷으로부터 결혼 선물을 받아낸다. 


농게 암컷도 이런 속임수를 쓸 가능성은 없을까. 연구자들은 짝짓기할 때가 돼 갯벌을 돌아다니며 수컷을 고르는 농게 암컷(떠돌이 암컷)과, 이미 짝짓기를 마치고 자기 굴속에 들어가 있는 암컷 농게(정착 암컷) 등 두 무리를 포획해 갯벌에 풀어놓은 뒤 행동에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봤다. 


먼저, 이들 두 무리가 수컷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 일종의 로봇 수컷을 활용했다. 기존 이론대로라면 짝짓기 준비가 된 떠돌이 암컷이 정착 암컷보다 수컷의 형질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했지만 결과는 두 집단이 같았다. 크고 빠른 집게발과 앞장서는 수컷을 선호하는 점에서 두 무리에 차이가 없었다. 


정착 암컷들은 떠돌이 암컷과 마찬가지로 마치 짝짓기를 하려는 것처럼 수컷들의 집을 차례로 돌며 선을 보았다. 왜 정착 암컷들은 짝짓기할 뜻이 별로 없는데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탐색 활동을 한 것일까.


연구자들은 그 이유는 굴에서 찾았다. 정착 암컷들은 포식자와 건조, 밀물, 열 충격으로부터 피할 중요한 자원인 굴을 확보하기 위해 짝짓기에 나선 것처럼 떠돌이 암컷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가설이다.


연구자들은 그 근거로 암컷 농게의 대피방법을 들었다. 포식자가 나타났을 때 암컷은 늘 직전에 방문했던 굴로 도망쳤다. 자기 굴이 없는 암컷이 급할 때 남의 굴을 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짝짓기 상대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암컷은 한 수컷의 굴에서 다른 수컷의 굴로 돌아다니면서도 늘 몸의 긴 쪽은 마지막 방문 굴 쪽을 향해 여차하면 직선으로 도피할 준비를 했다. 농게는 자신의 걸음 수로 거리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이런 재빠른 도피에 도움이 된다. 암컷은 늘 최단거리 도피 경로를 담은 지도를 머리에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4농게_자료사진.jpg » 커다란 집게발을 휘두르며 암컷의 눈길을 끌려고 애쓰는 농게 수컷. 한겨레 자료사진.


그렇다면 수컷 농게는 이런 암컷의 속임수에 왜 뻔히 당하고만 있을까. 연구자들은 속는 편이 진짜 짝짓기에 나선 암컷을 고르는 것보다 득일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조사 결과 떠돌이 암컷의 78%가 알을 낳았고 정착 암컷은 42%가 알을 낳았다. 수컷으로선 양쪽을 다 받는 것이 합리적이다.


연구자들은 비슷한 사례로 아메리카 열대지방에 서식하는 거미(Paratrechalea ornata)를 들었다. 이 거미 암컷은 결혼 선물을 주는 수컷과만 짝짓기를 하는데, 수컷이 주는 선물의 70%는 먹이가 아니라 곤충과 식물 조각을 거미줄로 감싼 짝퉁이다. 암컷은 선물이 진짜인지 가리려 하지 않는데,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는 수컷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so M, Curran E, Backwell PRY. 2016 Not what it looks like: mate-searching behaviour, mate preferences and clutch production inwandering and

territory-holding female fiddler crabs. R. Soc. open sci. 3: 160339.

http://dx.doi.org/10.1098/rsos.16033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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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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