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버리고 태양 선택한 미국 새크라멘토를 가다

이유진 2011. 09. 05
조회수 19844 추천수 0

① 란초 세코 핵발전소 폐쇄의 숨은 주역, 동포 언론인 이경원

건설비 부풀리기 등 세금 낭비 폭로, 주민투표로 핵 포기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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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가동 15년만인 1989년 조기 폐쇄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란초 세코 핵발전소, 새크라멘토 시내에서 3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들판에 두 개의 냉각탑이 황량하게 서있다. 


주변에는 낡은 건물들이 보이고 인적이 끊긴 정문은 굳게 닫혀있다. 덩그렇게 시설만 보고 가는 건 아닐까 할 때 마침 차가 한 대 나온다. 핵발전소를 관리하고 있는 새크라멘토 공영 전력공사(SMUD: Sacramento Municipal Utility District, 이하 전력공사로 줄임) 직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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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9년 해체와 정화작업을 완료했지만 여전히 모니터링과 시설운영을 위해 12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고 했다. 1991년 당시 해체비용으로 2억 8100만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했지만 전력공사가 지금까지 쏟아 부은 돈은 모두 5억 3500만 달러(5681억 원에 해당)이다. 


약 1만 8000톤에 달하는 강철, 콘크리트, 전선, 배관 폐기물을 유타주에 있는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으로 보냈는데, 문제는 사용후핵연료였다. 


미국에도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없어 사용후핵연료 493개 다발을 발전소 내에 건식저장하고 있는데, 방사능 수치를 모니터링하면서 24시간 감시체계를 갖추고 있다. 혹시 모를 사고나 범죄이용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인데, 전력공사는 연간 600만 달러(약 63억원)를 관리비용에 쏟아 붓고 있다.

 

전력공사는 핵발전소 폐로 후 부지 옆에 3.9메가와트 용량의 태양광 발전단지를 건설했다. 2002년에는 50만킬로와트 용량의 천연가스발전소도 신설했다. 이곳에서는 한 눈에 폐쇄된 원자력발전소, 가스발전소, 태양광발전소가 다 보인다. 시민 힘으로 핵을 버리고 태양을 선택한 역사적인 현장 앞에 서 보니 가슴이 뛴다. 


란초 세코 핵발전소는 1989년 6월 6일 주민투표에서 53.4%가 핵발전소 폐쇄에 동의해, 바로 다음날 폐쇄가 선언되었다. 핵발전소 조기 폐쇄에 따른 손실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킬로와트시(kWh)당 1센트씩 전기요금을 더 내서 충당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놀랍게도 새크라멘토 시민들의 핵에너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데에는 1970년대 당시 미국 서부에서 가장 오랜 유력 일간지 <새크라멘토 유니언>에서 탐사보도팀장으로 일하던 한국인 이경원 기자의 역할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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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란초 세코 핵발전소 가동 시작 직후, 이경원 기자는 발전소 간부들이 자재를 빼돌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는다. 이후 1975년부터 '다시 가 본 란초 세코(Rancho Seco Revisited)'를 시작으로 20여 차례에 걸쳐 전력공사의 부정부패와, 발전소를 설계하고 건설한 벡텔의 건설비 부풀리기에 대한 고발기사를  실었다. 


핵발전소 건설비가 1억 9,300만 달러에서 3억 7,300만 달러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벡텔은 엄청난 이익을 챙겼고, 전력공사는 이를 방관하거나 묵인해 주었던 것이다.


세금이 터무니없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에 시민들은 분노했고 독점적인 핵산업계의 폐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보도 이후 벡텔과 전력공사가 세운 2차 핵발전소 계획도 백지화됐다. 계획대로였다면 10억 달러가 투입됐을 공사였다. 


<코리아타운 데일리> 신문은 이 사건을 "거대 기업 벡텔과 거대한 관료조직을 펜 한 자루가 이겼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경원 기자는 란초 세코 핵발전소 보도로 1976년 소비자운동가 랄프 네이더가 창립하고 영화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명예 의장으로 있던 비영리 환경소비자단체 웨스턴 블럭(Western Bloc)이 주는 특별상을 받았다. <새크라멘토 유니언> 편집국장 켄 하베이는 이경원씨의 기사가 란초 세코 발전소를 폐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이후 1979년 3월 2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스리마일 섬에 발생한 핵발전소 사고로 주민 10만 명이 피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란초 세코 핵발전소에 대한 주민들 걱정이 크던 중, 1985년 12월부터 제어계통 설계 결함 때문에 27개월이나 운영을 정지하게 되었다.


수리비용으로 3억 달러(3,186억원)를 쏟아 붇던 상태에서 1986년 체르노빌 핵사고가 발생했다. 주민들이 나서서 주민투표를 발의했고, 결국 핵발전소는 주민들의 힘으로 폐쇄하게 되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전력공사가 새크라멘토시와 시민들이 출자해서 운영하는 시영회사이기 때문었다. 전력공사는 시민들이 선출한 전력과 경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주요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시민들 의사가 전력회사 경영에 반영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는 총 104개의 핵발전소가 있고, 그 중 절반이 30년 이상 된 노후발전소로 관리와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더욱이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 이후 핵발전소 안전이 우려가 되는 상황에서 자연재해까지 발생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미국 동부에서 발생한 규모 5.8~5.9의 지진으로 노스 애너 핵발전소 핵폐기물 저장 용기가 움직여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미국 내 핵발전소에 대한 안전규제 강화 여부가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새크라멘토 시민들의 란초 세코 핵발전소 폐쇄는 지금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이경원 기자는 누구인가


1970년대 살인누명 동포 이철수 무죄 석방 끌어낸 미국 최초의 아시아계 탐사보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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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이주민 가운데 최초로 미국 주류 언론에서 활약한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이다. 1950년대 미국에 이민한이경원(83) 기자는 언론사에 입사한 뒤 석탄노동자의 건강피해와 민권운동 등 사회정의에 관련한 보도를 이어갔다. 특히 1970년대<새크라멘토 유니온> 기자시절 샌프라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억울한 누명을 쓴 한인 이철수씨 사건을 끈질기게 파헤쳐 전국적인 관심사로 만들고 결국 이씨의 무죄 석방을 이끌어 냈다. 워싱턴의 언론인 명예의 전당인 '뉴지엄'에 20세기를 빛낸 '언론인 500인' 가운데 유일한 동양인으로 등재되어 있다.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이경원 리더십센터를 운영하면서 청소년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으며, 미주동포후원재단이 2006년 첫 '자랑스런 한국인' 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이유진/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녹색연합 녹색에너지디자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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