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정치' 기지개, 국회 입성 싹 틔울까

남종영 2012. 01. 25
조회수 17761 추천수 0

원전 폐기, 4대강 복원 등 녹색의제로 기성 정치권 도전

녹색당 창당, 3% 득표 비례대표가 목표 

 

311행동서형원임순례하승수.jpg

녹색당 창당을 이끄는 하승수 변호사(왼쪽부터)와 영화감독 임순례씨, 서형원 과천시의회 의장이  최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신규 원전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 제공 
 

20일 아침 출근길의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의 최승국 전 사무처장이 시민들에게 부지런히 명함을 나눠주고 있다. 가슴에 두른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라는 띠가 아직 어색하다.

 

최 전 처장은 창립 때부터 녹색연합에서 20년을 일한 환경운동가 1세대로,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사무처장을 맡았다. 최 전 처장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녹색연합은 물론 다른 환경단체 활동가들도 그를 돕고 있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인 하승수 변호사는 이날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50일째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전북 부안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등 원전 문제와 관련한 소송을 도맡은 그는 요즈음 녹색당 창당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서울·경기·부산·충남·제주·대구 등 지역에서 발기인대회를 열고 당원을 모으고 있다.
 

  1.jpg

 

환경운동이 정치에 도전하고 있다. 4월11일 총선이 첫 시험대다. 정당에 들어가 환경을 기치로 한 정치블록을 형성하는 전략, 그리고 생태적 가치를 전면적으로 표방한 녹색당을 독자 창당하는 전략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뉜다.
 

이들 모두는 △원전 수명연장 금지와 점진적 폐기 △4대강 사업으로 파괴된 강 생태계 복원을 구체적인 공약으로 제시하는 한편, △분배 중심의 경제 △소수자 인권 보호 △풀뿌리 민주주의 등과 같은 탈성장 민주주의 의제를 전면에 내걸고 있다.

 

환경운동사를 연구하는 구도완 환경사회연구소장은 그 배경을 이렇게 분석한다.

 

환경운동이 조직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민사회와 친화적이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환경단체는 정부와 소통하며 이른바 ‘영향의 정치’를 구사했지요. 하지만 새만금 사업과 부안 방폐장 등의 문제를 민관이 함께 논의했음에도 결국 관료 중심으로 결론이 나면서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됐습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4대강 사업을 겪으면서 정부와 불통을 체감했고, 결국 정치권 안에 환경운동 출신이 들어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죠.”


정치블록론, 우선 야권통합 참여 전략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 직후 환경단체에서는 새로운 흐름이 움트기 시작했다. 환경운동연합·녹색연합·환경정의·생태지평연구소 등 국내 환경단체 전·현직 사무처장과 활동가들이 모여 ‘녹색정치포럼’을 결성한 것이다. 정기 세미나를 열어 ‘지난한 패배’를 승리로 돌리는 방법을 연구한 이들은 야권통합 과정에 참여해 국회 안에 녹색정치세력을 심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봤다. 이른바 ‘정치블록론’이다.
 

정치블록론에는 최승국 전 사무처장이 선두에 서 있다. 환경정의의 오성규 전 사무처장도 성미산공동체 등 대안운동이 활발한 서울 마포에서 출마를 검토 중이다. 최 전 처장은 “새로운 가치를 내건 정당의 출현보다 야권통합을 통한 정권교체가 국민들의 요구”라며 “녹색당이 장기적으로는 의미가 있지만 이번 선거에선 야권통합에 참여하는 게 전략적으로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2.jpg

 

반면 녹색당 창당 준비 세력은 ‘탈핵에 정치적 생명을 걸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녹색당 창당준비위원회의 사무책임자(사무총장) 하승수 변호사는 “민주통합당이 ‘원전 재검토’를 강령에 내걸었지만 당장 신규 원전 공사가 들어가는 상황에서 정치적 수사로밖엔 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녹색당 창당 시도는 지금까지 몇 차례 있었지만 그때마다 무위로 끝났다. 이번에도 과연 창당이 가능하겠느냐며 초기엔 회의적인 시각이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전국적인 입당 바람이 불면서 청신호가 켜졌다. 생명평화·생태적 대안운동을 벌였던 이들 외에 환경단체·생활협동조합 회원들이 속속 입당원서를 내면서, 정당법상 창당에 필요한 당원 5000명 가운데 이미 2200명을 모았다.

 

하 변호사는 “최근에는 하루에 100명씩 입당하고 있어 2월 말까지 5000명을 돌파하는 데 문제 없을 것”이라며 “부산에서 출마하는 구자상 전 부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를 비롯해 지역별로 논의해 지역구 후보를 내는 한편 득표율 3%를 넘어 비례대표 의원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녹색정치가 늦은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녹색정치가 표방하는 탈물질적인 가치가 여전히 우리 사회 주변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개발보다는 보전을, 경제성장보다는 삶의 질을, 안보보다는 표현의 자유를 원하는 가치가 아직 주류로 떠오르지 않은 것이다.

 

구도완 소장은 “경제성장은 계속 이뤄져야 하고 국가는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한국 사회에선 강고하다”며 “삶의 질로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 적다는 점에서 특히 녹색당의 대중화 여건은 무르익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녹색정치의 두 경로를 걷는 이들은 높은 파도를 넘어야 한다. 정치블록론은 개발주의에 묶인 보수정당에서 녹색진지를 구축해야 하고, 녹색당은 기존 진보정당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녹색의제를 대중화시키는 끈기가 요구된다.

 

명호 생태지평 사무처장은 “민주당은 4대강 등 환경 이슈를 정치적 사안으로 활용했지 자기 의제로 삼지는 않았다”며 “새로 생긴 민주통합당이 명실상부한 야권통합 정당으로 모습을 갖추려면 녹색정치세력을 비례대표나 전략공천으로 안배하는 등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독일 녹색당 성장의 역사

원전 폐기정책 이끌어내, 재생에너지 시대로 전환

 

800px-Anti-AKW-Demo-Berlin001.jpg

▲지난 2010년 베를린에서 반핵 시위를 벌이는 독일 녹색당원들. 사진=위키미디어 커먼스.

 

독일 녹색당은 전세계 녹색당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1980년 창당한 이래 1998년부터 2005년까지 독일연방정부의 집권 여당이었으며, 탈핵 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독일 여러 지역에서 녹색정치의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그 토대는 핵발전소가 만들어줬다. 독일 정부는 70년대 초반부터 공격적인 핵발전소 확대정책을 추진했다.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계획 발표와 부지 선정으로 지역주민들은 자치조직을 만들어 반대투쟁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생태연구소’ 같은 독립적인 연구기관을 만들어 지역주민을 지원했다. 정치의 중요성을 깨달은 주민들은 반핵 대표자를 지방의회에 진출시키기 위해 선거를 활용했다.

 

1970년대 후반 서독 전역에서 ‘환경보호 녹색’ 후보, ‘핵발전소 사양합니다’ 후보, ‘무지개’ 후보 등 서로 다른 이름의 자생적인 반핵 후보가 지방선거에 나섰다. 이들은 79년 유럽의회 선거를 대비하기 위해 ‘녹색당’이라는 이름으로 전국 단위의 단일 대오를 구성했고, 이 여세를 몰아 마침내 1980년 1월 칼스루헤에서 생태·사회·기초민주주의·비폭력을 이념으로 ‘녹색당’을 창당했다.
 

창당 뒤 처음 맞이한 그해 10월 선거에서는 전국 지지율 1.5%로 5% 진입 장벽에 막혀 원내 진출이 무산됐다. 그러나 그 다음 1983년 선거에서는 5.6%를 얻어 27명이 최초로 연방의회에 진출하는 쾌거를 거둔다. 1998년 선거에서 6.7%를 득표해 47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함과 동시에 사회민주당과 연합정부 구성에 성공함으로써 독일 역사상 최초의 ‘반핵정부’가 출현하게 된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집권’ 녹색당 내부에서는 소위 ‘이상파’와 ‘현실파’ 간의 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1년 연정 파트너인 사민당은 녹색당에 아프가니스탄 파병 동의를 요청했다. 현실파이며 친미 성향인 당시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를 중심으로 다수가 파병에 동의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이에 반대하는 당원들이 녹색당을 떠났다.

 

창당 이래 내세운 비폭력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문제가 녹색당을 도왔다. 2002년 여름 전 유럽을 강타한 폭염과 드레스덴 지역의 대홍수는 환경파괴의 위험성을 다시금 일깨웠고, 녹색당은 그해 선거에서 8.6%를 득표해 사민당과 재집권에 성공했다.
 

2009년 선거에서 승리한 메르켈 총리의 기독민주당은 핵발전소 수명을 평균 12년 연장하는 정책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주말마다 거리로 나왔고, 녹색당 지지율은 다시 상승하기 시작해 2010년 말 20%를 넘어섰다. 여기에 후쿠시마 핵 재앙까지 더해져, 지난해 3월 말 치러진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 역사상 최초로 녹색당 주지사가 선출됐다.

 

계속해서 상승하던 녹색당의 인기는 메르켈 총리의 2022년 핵폐기 결정에 녹색당이 동의하면서 사그라졌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만 하더라도 다음 선거에서 녹색당이 총리를 배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으나, 메르켈의 재빠른 수습 이후 녹색당은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독일 역사에서 녹색당이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에너지정책의 일대 전환이다. 2000년 재생가능에너지법 제정, 2002년 원자력법 개정을 통해 원자력과 화석에너지에 기반했던 그간의 에너지 시스템의 중심을 재생에너지로 이동시킨 것이다.
 

메르켈 총리가 선언한 2022년 핵폐기의 모태는 다름 아닌 녹색당의 2002년 원자력법 개정이며, 재생에너지법 시행으로 전력의 20%를 재생에너지로 얻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23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만들어졌다.

 

염광희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연구원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수중 ‘밑밥 캠’ 1만5천대 깔았는데 “상어가 안보인다”수중 ‘밑밥 캠’ 1만5천대 깔았는데 “상어가 안보인다”

    조홍섭 | 2020. 08. 03

    세계 58개국 대규모 조사, 19%서 암초상어 관찰 못 해 산호초에서 평생 살거나 주기적으로 들르는 암초상어는 지역주민의 소중한 식량자원일 뿐 아니라 다이버의 볼거리, 산호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로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태...

  • 바다거북은 엉성한 ‘내비' 의존해 대양섬 찾는다바다거북은 엉성한 ‘내비' 의존해 대양섬 찾는다

    조홍섭 | 2020. 07. 30

    “여기가 아닌가 벼”…때론 수백㎞ 지나쳤다 방향 돌리기도 아무런 지형지물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바다거북이 어떻게 자신이 태어난 해변과 종종 수천㎞ 떨어진 먹이터를 이동하는지는 찰스 다윈 이래 오랜 수수께끼였다. 위성추적장치를 이용한 연구 ...

  • 파리지옥 풀은 어떻게 파리를 알아볼까파리지옥 풀은 어떻게 파리를 알아볼까

    조홍섭 | 2020. 07. 27

    30초 안 감각털 2번 건드리면 ‘철컥’…1번 만에 닫히는 예외 밝혀져 찰스 다윈은 파리지옥을 “세계에서 가장 놀라운 식물”이라고 했다. 세계에 분포하는 식충식물 600여 종 대부분이 먹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수동적 방식인데 파리지옥은 유일하게 ...

  • 날개 치지 않고 5시간, 콘도르의 고효율 비행날개 치지 않고 5시간, 콘도르의 고효율 비행

    조홍섭 | 2020. 07. 23

    전체 비행시간의 1%만 날개 ‘퍼덕’…상승기류 타고 비상·활공 독수리나 솔개 같은 맹금류는 상승기류를 탄 채 날개 한 번 퍼덕이지 않고 멋지게 비행한다. 그렇다면 날개를 펴면 길이 3m에 몸무게 15㎏으로 나는 새 가운데 가장 큰 안데스콘도르...

  • 사람도 ‘귀 쫑긋’ 개·고양이와 마찬가지사람도 ‘귀 쫑긋’ 개·고양이와 마찬가지

    조홍섭 | 2020. 07. 17

    귀 근육 신경반응과 미미한 움직임 확인…새로운 보청기에 응용 가능 개나 고양이가 무엇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려면 귀가 어느 쪽을 향하는지 보면 된다. 낯설거나 큰 소리, 중요한 소리가 들리면 동물의 귀는 저절로 그리로 향하고 쫑긋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