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땅에서의 죽음’ 로드킬 첫 영화화

조홍섭 2008. 10. 23
조회수 24540 추천수 0

황윤 감독의 생태다큐 <어느 날 그 길에서> 상영
전파발신기 추적 압권…카메라 동물 눈높이 맞춰

 

 

s1.jpg

지리산을 에워싼 88 고속도로, 섬진강변 도로, 국도 19호선 산업도로의 로드킬(야생동물 교통사고) 조사에 나선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최태영 연구원은 애초 로드킬이 잦은 특정한 도로구간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2년반 동안 5769건의 사고지점을 점으로 표시해 나가다 보니 지도에는 어느새 도로의 온전한 모양이 그려졌다. 야생동물에게 ‘길 위의 죽음’은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상이었다.

 

로드킬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가 나왔다. 황윤 감독의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가 오는 27일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5개 예술영화전용관에서 동시 개봉된다. 생태 다큐멘터리가 개봉관에서 상영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5개 도시 예술영화전용관 동시 개봉…생명보험 들고 찍어

 

영화는 도로변을 헤매는 대책 없이 느린 토종거북 남생이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자동차의 속도는 야생동물이 감당하기엔 너무 빠르다. 두꺼비 ‘섬(蟾)’ 자를 쓸 만큼 두꺼비가 많은 섬진강 강변도로는 번식기 두꺼비들의 공동묘지다. 조사단은 10m 거리에서 납작하게 깔려 껍질만 남은 두꺼비 70마리를 확인하기도 했다. 이 길에는 “당신은 지금 가장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습니다”란 지자체의 안내팻말이 붙어 있다.

 

영화는 화면을 멀리서 잡는 등 끔찍한 장면을 피하려 애쓰지만, 태아를 쏟아내고 죽은 고라니, 내장이 튀어나온 채 몸을 뒤틀고 입을 벌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유혈목이(꽃뱀)의 모습마저 없애지는 못한다.

 

동물 다큐를 찍는 황 감독의 눈은 철저하게 동물과 같은 높이에 서 있다. 두꺼비는 까마득한 4차선 도로를 전력을 다해 기어가다 굉음을 내며 달려드는 화물차 바퀴 사이에서 기겁을 해 움츠러들기를 반복한다.

 

왜 밀렵은 우리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는데 훨씬 많은 동물들을 죽이는 로드킬은 그렇지 않을까. 그것은 자동차를 탄 자와 길에서 걷는 자의 차이일 것이다. 연구자와 영화 촬영자가 작업에 나서기 전 가장 먼저 한 일은 생명보험에 드는 일이었다. 이 영화는 철저히 걷는 자들의 시선으로 도로를 본다.

 

s2.jpg

 

동물 관점에서 본 동물원 이야기 <작별>도 함께 개봉

 

도로는 야생동물에게 죽음의 유혹이기도 하다. 수많은 곤충이 자동차에 부닥쳐 죽어가고, 이를 먹으려고 또는 새로 생긴 로드킬 희생자를 먹이 삼아 새와 포유류들이 몰려든다.

 

도로 주변에 서식하는 너구리에 전파발신기를 붙여 추적한 결과는 놀랍다. 마치 고무줄놀이를 하듯 너구리는 도로를 넘나든다. 로드킬연구팀의 최천권 연구원은 “이곳은 애초에 동물들 땅이에요. 우리 땅이 아니에요”라고 설명한다.

 

한 살난 삵 ‘팔팔이’의 이야기는 극적이다. 팔팔이는 88고속도로 전북 남원 지역에서 자동차에 치여 의식불명에 빠진 뒤 전남 구례의 구조센터로 실려갔다. 가까스로 회복돼 전파발신장치를 찬 채 방사된 이 삵은 한 달만에 30㎞ 떨어진 고속도로변 ‘고향’으로 찾아갔다. 12번이나 위험한 도로를 건너 돌아간 그 곳에서 팔팔이는 나흘만에 또 다른 ‘로드킬’ 희생자가 됐다. 설 연휴 때 일어난 일이다.

 

s3.jpg

 

이 영화는 도로건설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제기라고 할 만하다. 생태통로 등 성급한 대안을 내놓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황 감독은 “도로를 전속력으로 달려 인간이 다다르게 될 곳은 어디일까”라고 묻고 있다.

 

이 영화와 함께 동물의 관점에서 본 동물원 이야기를 다룬 황 감독의 다른 영화 <작별>도 함께 개봉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태그 :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시베리아서 낙동강까지, 열목어 대이동의 비밀

    조홍섭 | 2017. 04. 10

    빙하기 시베리아서 남하, 아무르강 거쳐 2만년 전 한반도로최남단 서식지 낙동강 상류에 고유 집단 잔존 가능성 커북극해서 놀던 ‘시베리아 연어’한강과 낙동강 최상류 찬 개울에는 커다란 육식성 민물고기가 산다. 한여름에도 손이 저릴 만큼 차...

  • 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브렉시트, 기후변화 대응에 불똥 튀나?

    조홍섭 | 2016. 07. 01

    파리협정 이행 갈길 먼데, '기후 리더' 영국 빠진 유럽연합 동력 상실 우려기록적 가뭄→시리아 난민사태→브렉시트→기후대응 약화 악순환되나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가 어떤 역사적 의미를 갖는지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공통적인 견...

  • 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화학물질 참사 막으려면, 틀린 경보가 묵살보다 낫다

    조홍섭 | 2016. 06. 03

    `가정 독물'인 살생물질 관리에 특별한 대책 필요…디디티 교훈 잊지 말아야과학적 불확실성 있어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 예상되면 조기경보 들어야  아침에 쓴 샴프나 손에 든 휴대전화, 금세 썩지 않는 나무의자에는 모두 화학물질이 들어있다....

  • 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차로 치고 새끼 유괴하고…고라니의 잔인한 봄

    조홍섭 | 2016. 05. 06

    IUCN 취약종 지정, 체계적 조사 없이 우리는 매년 15만마리 죽여세계서 중국과 한국이 자생지, 중국은 멸종위기에 복원 움직임  야생동물을 맞히는 퀴즈. 수컷의 입에는 기다란 송곳니가 삐져나와 “흡혈귀 사슴”이란 별명이 붙어 있다. 가장 원...

  • 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똑똑한 식물…때맞춰 꽃피우고 기억하고 속이고

    조홍섭 | 2016. 04. 08

    중추신경계 없지만 잎, 줄기, 뿌리가 네트워크로 연결돼 고등기능 수행 미모사는 30일 뒤까지 기억…공동체 이뤄 햇빛 못 받는 나무에 양분 나누기도     봄은 밀려드는 꽃 물결과 함께 온다. 기후변화로 개나리 물결이 지나기도 전에 벚꽃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