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인플루엔자 공포, ‘스페인독감’의 전조인가

조홍섭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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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독서] <조류독감>

 

조류인플루엔자가 초래할 악몽
환경·사회·경제적 뿌리 분석

 

book.jpg2004년 8월 타이 북부의 반 스리솜분이란 작은 마을에서 닭이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육계와 투계 모두 주민들의 중요한 현금소득원이었다. 닭과 늘 함께 지내던 열한 살짜리 소녀 사군탈라가 복통과 열병에 쓰러졌다. 피를 토하며 폐렴 말기 증상을 보인 그는 어머니 프라니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병원은 ‘뎅기열’로 사인을 진단했다. 장례식 뒤 프라니도 근육통과 피로를 호소했지만 병원은 슬픔과 탈진 때문이라고 위로했다. 프라니는 두 주일 뒤 사망했다.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 H5N1이 처음으로 인간 대 인간 감염을 일으킨 것이다. 1997년 이 바이러스가 홍콩의 농장과 가금류 시장에서 대량 발병한 지 7년만의 일이다.

 

진보적 역사학자이자 환경주의자인 마이크 데이비스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2005년 펴낸 책 <조류독감>(돌베개 2008, 정병선 옮김)은 이 에피소드로부터 이야기를 풀어간다.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이란 이 책의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와 함께 새들의 병이 인류에게 재앙을 불러올 세계적 질병으로 전환된 사회경제적, 환경적 배경에 주목한다.

 

손 잘 씻고 잘 익혀 먹으면 그만?

 

우리나라에 조류인플루엔자(AI)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03년, 2006년에 이어 세번째다. 이 질병은 자칫 떼죽음하는 닭과 오리, 곤란에 처한 사육농가, 그리고 살처분과 통제에 급급한 방역당국의 문제로 국한시켜 받아들이기 쉽다. 물론 정부 당국은 안전하게 요리하면 닭과 오리는 안전하다고 누누이 강조해 시민들을 안심시키려든다. 아직 인명 피해는 없으니까 외출한 뒤 손을 잘 씻고 닭고기를 잘 익혀 먹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그러나 이 문제를 가장 잘 아는 보건전문가들은 조류인플루엔자를 아주 심각한 눈으로 본다. 세계보건기구 홈페이지의 ‘조류인플루엔자 대역병 경보 단계(http://www.who.int/csr/disease/avian_influenza/phase/en/)를 보면, 지구에는 현재 6단계 중 3단계의 경보가 내려져 있다. 이 단계는 “새로운 바이러스 유형이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고 있지만 아직 사람들 사이에서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확산되지 않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 대 인간의 전염이 증가하는 4단계와 그 양상이 현저해지는 5단계를 거쳐 6단계는 대유행병 상태로 돌입한다. 그러니까 인류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임박한 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세계보건기구는 과장하고 있나

 

일반인과 전문가 사이의 이런 인식 차이는 왜 발생할까. 데이비스의 문제제기도 이 지점에 서 있다.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1997년 최초의 홍콩 발병사태 이후 줄곧 바이러스 대참사에 대해 경고해왔다. 거의 10년이 지났지만 죽은 사람은 100명이 안 되고, 대유행병은 여전히 예언으로만 나타날 따름이다. 그러는 동안 에이즈와 말라리아, 설사병으로 죽은 사람만 수천만 명에 이른다. 세계보건기구가 H5N1의 위협을 과장한 것은 아닌가?”(201쪽)

 

이런 의문이 전혀 잘못된 것임을 최근의 연구결과와 분석을 통해 증명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그는 조류인플루엔자 위기의 핵심을 “지구적 규모의 농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적 조건에 확고하게 적응한 치명적인 변종 독감이 새로운 유전자를 찾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세계화, 산업형 축산, 습지 파괴, 제3세계 도시화와 대규모 슬럼이 합작이 돼 인플루엔자의 비정상적 변이를 일으킬 것이란 얘기다.

 

관개농업을 위해 댐을 짓고 습지를 개발하면서 철새들은 관개수로와 농지로 모여들 수밖에 없다. 이곳에 방목되는 오리 등은 야생조류의 배설물에 들어 있는 바이러스와 빈번하게 접촉하게 된다. 게다가 가축을 공장식으로 밀집 사육하면서 바이러스의 병독성은 더욱 강화된다. 북미, 브라질, 서유럽, 동남아에 “바이러스에 공급되는 식량-가금류, 돼지, 인간-이 극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동남아에서 조류인플루엔자는 이제 풍토병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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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구 20명에 1명꼴로 죽은 스페인 독감

 

전염병학자들의 악몽은 1918~1919년 전세계에 유행했던 것과 같은 대유행병(일명 ‘스페인독감’)이 나타나는 것이다. 당시 세계적으로 약 5천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고 1억명이 죽었다는 추산도 있다. 그렇다면 당시 세계 인구 20명에 한 명꼴로 희생된 셈이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760만명이 감염돼 14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최근 <중앙일보> 칼럼에서 밝혔다. 사망자는 가장 생산적인 연령층인 20~40대의 집중됐고, 그 바람에 곳곳에서 사회가 휘청거렸다.

 

1918년의 대유행병은 되풀이될 것인가. 데이비스는 미 육군 병리학연구소의 연구결과를 빌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이 연구소는 알래스카 동토에 묻혀있던 1918년 희생자의 주검에서 바이러스를 채취해 유전체를 판독해 냈다. 분석 결과 돼지나 사람의 몸속에서 조류인플루엔자의 유전자가 재배열해 치명적 돌연변이를 일으켰다는 이제까지의 생각이 잘못임이 드러났다. 조류인플루엔자는 독자적인 점진적 진화를 통해 폭발적 감염성을 획득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H5N1 바이러스도 굳이 인간 바이러스와 유전자를 섞을 필요가 없이 손쉽게 인체 감염성을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음 경로는 애완동물?

 

이 책에서 데이비스는 “H5N1이 우리가 기르는 애완동물을 경유해 인간에게 침투하는 새로운 경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가까운 과거에 감염된 가금류와 접촉한 적이 없는데도 가족 내부에 감염자들이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병든 새를 잡아먹은 고양이를 통해 사람이 조류인플루엔자에 감염될 수 있다. 그는 책을 이렇게 맺는다.

 

“우리는  H5N1의 피할 수 없는 도래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연못에서 헤엄치는 오리와 이웃집 고양이를 불안하게 바라보면서 말이다. 따라서 사라져가는 습지와 공장에서 생산되는 닭과 심각한 빈곤이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존재의 안전과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조류인플루엔자’인가 ‘조류독감’인가

 

vi.jpg1997년 홍콩에서 가금류 떼죽음 사태 이후 정부의 공식문서와 언론은 ‘조류독감’이란 용어를 썼다. 그러다가 양계업계가 소비감소로 타격을 입자 농림부는 2005년 용어를 ‘조류인플루엔자’로 써 달라고 언론사에 요청했다. 양계업계는 언론사별로 ‘조류독감’과 ‘조류인플루엔자’ 사용빈도 통계를 내, 이를 바탕으로 ‘조류독감’이란 용어를 많이 쓰는 매체에겐 ‘구독거부 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을 가했다. ‘조류독감’이 사람의 독감을 연상시켜 사람에게 옮는 병이라는 잘못된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조류독감’이란 말은 곧 사라졌고, <한겨레>를 포함해 모든 매체가 조류인플루엔자 또는 영어 앞글자를 따 ‘AI’로 표기하기 시작했다.

 

국어대사전을 보면, ‘독감’은 지독한 감기 또는 의학적으로 유행성 감기를 가리킨다. ‘인플루엔자’도 유행성 감기를 뜻한다. 둘은 사실상 같은 말이다. 외국 언론에선 주로 ‘bird flu’ 또는 ‘avian influenza’를 쓴다. 그러나 우리처럼 ‘AI’로 줄여 쓰는 곳은 없다. 한글에 영어 알파벳을 섞어 쓰는 것은 한글 어법에도 맞지 않는다.

 

결국 ‘조류인플루엔자’란 용어는 바른 용례를 위해서도 글자수를 줄이기 위해서도 아닌 ‘불안’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도입됐음이 분명해진다. 그런데 ‘조류독감’ 대신 ‘조류인플루엔자’로 부르면 불안이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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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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