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초’ 이른 시한폭탄 석면, 광우병과 닮은꼴

조홍섭 2008.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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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독서] ‘침묵의 살인자, 석면’

 

‘기적의 화학물질’로 생활 곳곳 3천여 가지 쓰여
잠복기 10~40년 치명적…2030년까지 피해 속출

 

 

Untitled-6 copy 2.jpg1957년 경북 군위의 가난한 농민의 10남매 중 여덟째 딸로 태어난 박정희씨의 굴곡진 삶은 고도성장기 노동자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초등학교를 마친 박씨는 언니가 취직해 있던 부산 연산동의 제일화학에 공원으로 입사한다. 남동생과 두 자매는 공장에서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단칸방을 구해 자취를 했다. 곧이어 입사한 둘째 언니까지 세 자매가 한 회사에 다녔다. 1970년대에 흔히 있던 일이었다. 정말 열심히 일한 정희씨는 '자랑스런 근로자'로 신문에 미담기사로 소개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중동 건설현장에 나가 있던 총각 노동자들로부터 수십통의 펜팔 편지를 받기도 했다.

 

박씨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난 것은 제일화학이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석면방직업체였다는 데 있었다. 작업장에는 석면가루가 눈이 온 것처럼 하얗게 쌓였다. 그 속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석면이 암을 일으키는 해로운 물질이라는 교육은 전혀 받지 못했고 마스크는 형식적인 것이었다. 정희씨는 언니와 마찬가지로 요즘 석면폐로 고통 받고 있다.  다른 언니는 1987년 폐암으로 사망했다. 기침이 잦은 남동생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석면에 관한 종합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침묵의 살인자, 석면>(안종주 지음/한울 펴냄/1만7천원)에 나오는 이야기다. 환경단체, 노동단체, 보건의료단체, 전문가, 석면피해자 등이 모여 꾸린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대표 백도명 서울대 교수)가 지난 3일 출범한 것과 때를 맞춰 출간됐다.

 

untitled-9_copy.jpg필자는 보건학 박사로 <한겨레>에서 보건전문기자로 일했고, 일찍이 1988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석면의 위험성을 경고한 책 <석면공해: 조용한 시한폭탄>을 펴내기도 했다.

 

석면은 치명적이고 노출된 지 오랜 세월 뒤에 피해를 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광우병과 닮았다. 석면에 노출되면 악성중피종, 폐암, 석면폐 등에 걸린다. 악성중피종은 흉막이나 복막에 생기는 암으로, 평균 생존기간이 1년에 5년, 생존율이 10%가량에 지나지 않는 무서운 병이다. 하지만 잠복기가 10~40년으로 길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영문도 모른 채 고통스런 죽음을 맞고 있고, 당장의 편리함에 눈먼 소비는 세계적으로 줄지 않고 있다.

 

 

프레온, 디디티, 피시비 등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환경오염물질과 마찬가지로 석면도 처음엔 기적의 화학물질로 불렸다. 열과 추위에 잘 견디고, 전기를 통하지 않고, 화학적으로도 안정한 특성을 지녀 단열재, 절연재 등으로 널리 쓰였다. 석면을 이용한 제품은 천장재, 시멘트, 파이프, 브레이크 라이닝 등을 비롯해 소방수 보호복, 헤어드라이어, 토스터, 베이비파우더, 담배필터 등 3천~4천가지로 쓰였거나 쓰이고 있다.

 

앞에 든 박정희씨 사례는 '석면 시한폭탄'이 한국에서도 이제 터지기 시작했음을 가리킨다. 그 동안 우리는 많은 양의 석면을 써 왔고 이제 대가를 지불할 때가 온 것이다.

 

충남 홍성군 광천읍에는 일제 강점기 때 아시아 최대의 석면광산이 있었고 1980년대까지 채광이 계속됐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은 전국적으로 석면 슬레이트 소비를 폭발적으로 늘렸다. 선진국이 석면의 위험성이 드러나자 1980년대부터 소비를 급격히 줄이는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소비가 오히려 늘었다. 1994년에만도 8만5천t을 수입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백석면을 많이 수입하는 나라로 기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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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명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석면은 좀처럼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석면 사용량에 비례해 위험이 나타난다"며 "우리나라는 2030년께까지 피해가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석면의 피해는 석면공장이나 광산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에게서 가장 먼저 나타날 것이다. 그 공장이나 광산 주변 주민들은 아마도 다음 차례가 될 터이다. 거의 대부분의 건축물에 석면제품이 사용됐음에 비춰 재건축 현장 주변, 개보수가 잦은 지하철, 낡은 학교와 공공건물 등에서 석면에 노출된 일반인들도 석면피해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석면이 무서운 이유는 그 속에 든 미세한 섬유 때문이다. 스모그나 안개, 박테리아 정도밖에 안 돼 전자현미경으로나 보이는 석면섬유는 폐 깊숙이 침투한다. 우리 몸에서 이물질 제거 책임을 맡는 대식세포는 석면섬유를 감싸 효소로 공격하지만 분해는커녕 오히려 석면의 독성으로 죽어버린다. 방어기능을 잃은 우리 몸은 폐가 섬유화해 "고무공처럼 질기면서 조그마하게 쪼그라든 모습으로 바뀌는" 석면폐를 일으키거나 암을 발생시킨다.

 

untitled-12_copy.jpg미세한 석면섬유는 공기 속에 오랫동안 머문다. 이 책은 3m 높이의 천장에서 석면섬유가 떨어져 나왔다면 바닥까지 도달하는데, 길이가 5㎛(1㎛는 1백만분의 1m)인 섬유라면 4시간, 1㎛라면 80시간이 걸린다는 계산을 소개한다. 낡은 석면 건축자재로부터 떨어진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의 먼지가 오랫동안 방안을 떠다니는 섬뜩한 그림이 떠오른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정상인도 폐 속에는 약 20만개의 석면먼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악성중피종에 걸리려면 500만개는 흡입해야 한다"며 일반인의 지나친 공포를 경계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양의 석면도 인체에 악영향을 끼치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늦었지만 이제라도 최대한 대책을 세워나가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이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석면에 관한 더 상세한 내용은 한국석면추방네트워크 홈페이지(http://cafe.daum.net/asbestosfree)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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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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