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닥치는 어린 죽음, 동물구조센터의 ‘잔인한 봄’

이준석 2018.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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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쩍새, 수리부엉이, 삵, 고라니…여름 전쟁터 앞둔 폭풍 전야
충돌, 둥지 파괴, 납치 등 어린 생명의 고통과 죽음 몰려들어

r2.JPG » 4월은 야생동물에게도 잔인한 철이다. 번식기여서 새끼가 늘어나고 구조되는 개체도 많고 짧은 생을 마감하는 동물도 많다. ‘솥 적다’고 한 번도 울어보지 못한 채 건물에 충돌해 죽은 어린 소쩍새.

꽃샘추위가 지나고 벚나무는 꽃잎을 떨어뜨려 푸릇한 요즘 새들은 저마다 둥지를 짓느라 분주하고, 여름 철새는 하나둘 돌아와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4월은 여름이라는 폭풍의 전야로 구조센터는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름은 야생동물의 번식기여서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그만큼 많은 동물이 구조되고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한 어린 동물 또한 넘쳐나 구조센터로서는 정신없는 폭풍 같은 시기이다. 

4월 중순인 지금 멧비둘기와 수리부엉이 새끼, 여름 철새인 소쩍새가 벌써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이미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머지않아 더 많은 동물이 밀려들 것이다.

r5.JPG » 어린 수리부엉이가 구조됐다. 구조센터의 여름은 벌써 시작됐다.

생태계의 시간은 여간해서 크게 뒤틀리지 않는데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이 아닌 구조센터에서도 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3월 말 가장 먼저 번식을 시작하는 수리부엉이와 연 2~3회 번식하는 어린 멧비둘기가 구조되면서 여름이 다가옴을 알린다. 

r15-1.jpg » 구조돼 치료를 받고 자연으로 돌아간 어린 멧비둘기.

그 뒤를 이어 4월이면 까치와 올빼미 등의 새끼와 번식을 위해 돌아온 제비, 소쩍새, 솔부엉이 등의 여름 철새가 구조된다. 포유류 중에선 어린 삵이 가장 먼저 구조 혹은 납치되기 시작한다. 

5월이면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다. 위에 언급한 동물들과 함께 더 많은 어린 새가 구조되는데 참새목에 속한 참새, 박새, 딱새 등의 유조는 한두 마리가 아닌 둥지째 구조되고, 흰뺨검둥오리, 원앙의 유조도 수 십 마리가 한 번에 구조되기도 한다. 포유류는 삵과 함께 너구리가 구조되기 시작한다. 

r7.JPG » 구조된 원앙 새끼들.

6월은 여름의 절정으로 여름 철새의 유조와 어린 고라니, 수달까지 구조되며 일 년 중 가장 많은 동물이 구조되는 시기다. 작년의 경우, 6월 한 달 동안 구조된 야생동물은 277마리이며, 4월부터 8월까지 700여 마리가 구조됐다. 다친 야생동물의 수만 봐도 여름이 폭풍이라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숫자로는 이렇게 덤덤하게 얘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숫자는 여름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 생태계의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생태계의 시간에 발맞추는 야생동물의 삶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700여 마리의 동물이 구조됐는데, 숫자 하나마다 한 마리의 삶과 고통이 녹아있다. 그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단순히 700이라는 숫자에 가두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r6-1.jpg » 구조된 꺼병이(꿩 새끼).

최근 구조된 수리부엉이 유조는 차량과 충돌하면서 양쪽 날개가 모두 부러져 안락사시켜야 했고, 건물에 충돌한 소쩍새는 폐사했다. 이 시기에 구조되는 암컷 고라니는 태아를 지닌 상태로 숨이 끊어진다. 벌써 많은 생명이 죽어 나가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곧 어린 포유류들이 납치당해 어미와 생이별할 것이다. 둥지 밖으로 나서보지도 못한 어린 새들은 나무가 베어져 둥지째로 추락하거나, 인간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로 둥지가 허물어지고 길바닥에 버려진 채 구조될 것이다. 죽은 어미 곁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어린 오리들이 구조될 것이며, 먼 길을 날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사고를 당한 여름 철새들이 구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처절한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r-1-2.jpg » 차량 충돌로 다리가 골절돼 수술을 기다리는 고라니, 엑스선 사진에서 3마리의 태아를 볼 수 있다.

생명이 싹트는 계절이지만 세상에 나오자마자 빛을 잃는 동물이 많다. 늘 죽음을 곁에 두는 곳이기에 익숙할 법도 하지만, 갑작스레 닥쳐오는 수백 마리의 죽음과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어린 생명의 죽음, 잠깐의 방심과 작은 실수도 용납지 않고 매정하게 떠나버리는 생명을 보면서 자신의 노력에 대한 의구심과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다. 폭풍을 만나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다.

r11-1.jpg » 하나둘 떠나는 어린 생명을 지켜보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가뜩이나 순탄치 못한 야생동물의 삶은 인간으로 인해 더욱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짧지만 생기 넘치고 역동적인 야생의 삶을 보노라면 별것 아닌 작은 행동에도 감동을 하게 된다. 그들이 그러한 삶을 잃고 모든 걸 체념한 눈을 할 때, 우리 손으로 그 삶을 다시 한 번 되돌려 줄 수 있다는 생각에 정신을 다잡고 나선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올여름도 그들과 삶과 죽음을 함께할 것이다. 한 생명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으로 여름을 보내야겠다.

글·사진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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