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구를 쓰레기 행성으로 만드는가

권혜선 2018. 05. 18
조회수 1984 추천수 1

영화로 환경 읽기 28 '월-E'

쉽고 편리함이 지배하는 세계와 퇴행한 유아 인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과학기술의 모습은 무엇인가


03097064_P_0.JPG » 많이 만들고 쉽게 버리는 소비문화의 종말은 지구 자체를 쓰레기로 만들 것이다. 쓰레기 청소 로봇 월-E.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이브를 외치던 순정파 로맨티스트 로봇 월-E(Wall-E)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월-E는 ’Waste Allocation Load Lifter Earth‘로, 이름 그대로 쓰레기를 모으고 치우는 일을 하는 로봇이다. 


지구에 홀로 남아 묵묵히 성실하게 쓰레기를 치우던 월-E는 어느 날 하늘에서 내려온 새하얀 로봇 이브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지구에서 무엇인가를 찾던 이브는 월-E가 보여준 식물을 가지고 우주로 돌아간다. 이브를 쫓아 거대한 우주선 엑시엄(Axiom)에 도착한 월-E는 이브와 함께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이미지1.jpg » 영화 '월-E'의 포스터.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애니메이션 ‘월-E’는 대사가 거의 없음에도 단순한 로봇 사운드와 몸짓 등을 통해 내용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또 사랑스럽고 유머러스한 캐릭터들이 종횡무진인 가운데 소비 지상주의, 과학 만능주의, 쓰레기, 비만, 향수, 기독교적 세계관 등 꽤 방대한 내용을 재치 있게 풀어내고 있다. 영화는 지구와 엑시엄이라는 서로 대비되는 두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공간 1: 지구


부서진 건물, 낡은 자동차, 버려진 온갖 물건으로 뒤덮인 지구는 거대한 모래 폭풍이 부는 죽음의 행성이 되었다. 디스토피아 미래를 그린 여느 영화와 마찬가지로 ‘월-E’의 지구는 삭막하고 황폐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다른 영화들과 달리 ‘월-E’의 지구에는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간은 없다. 


대신 지구에 남은 것은 거대한 쓰레기를 치우는 작은 로봇 월-E와 한 마리의 바퀴벌레이다. 월-E는 매일 홀로 쓰레기를 치운다. 수백 년 동안 월-E가 정리해 치운 쓰레기는 초고층 빌딩보다 높다. 


월-E는 쓰레기를 치우다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은 다시 사용하고, 마음에 드는 물건은 집으로 가져간다. 어느 날 버려진 냉장고에서 작은 식물을 발견한 월-E는 집에 가져가 소중히 보살핀다. 월-E는 홀로 지구에 남아 지구를 보살피고 회복시키는 작은 존재로 표현된다.


이미지2.jpg » 월-E는 지구에 홀로 남아 매일 묵묵히 쓰레기를 치운다.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지구에 버려진 모든 것-각종 생활용품, 쇼핑몰, 주유소, 월-E, 심지어 돈까지도-에는 온통 붉은색의 ‘BnL’로고가 붙어 있다. BnL은 ‘Buy and Large’의 약자로, 말 그대로 소비지상주의를 의미한다. 영화에서 BnL은 초국적 거대 기업으로 보인다. 


하지만 BnL은 화폐도 발행하며 BnL의 시이오가 미국의 대통령과 비슷한 모습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BnL은 기업을 넘어선 하나의 세상으로 보인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이다. 그리고 소비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쓰레기로 인해 지구가 망가졌다. 


모든 것이 버려지고 쓰레기가 된 지구에서 여전히 BnL의 광고판은 더 많이 소비해 더 풍족하고 편하게 살라고 부추긴다. 소비는 지구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구가 쓰레기로 가득 차자 BnL은 쓰레기를 다 치울 동안 우주에서 쾌적하게 지내라고 광고한다. 사람들은 사용하고 버린 다른 쓰레기와 마찬가지로 지구를 쉽게 버리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우주로 떠난다. 


이미지3.jpg » 사람이 없는 지구에서 ‘BnL’은 여전히 더 많이 소비하라고 광고한다. 광고판 뒤로 월-E가 쌓은 쓰레기 빌딩이 보인다.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공간 2 : 엑시엄


우주로 나간 사람들은 엑시엄이라는 거대한 우주선에서 생활한다. 엑시엄은 BnL이 만들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거대한 인공 공간으로, 황량하고 망가진 지구와 달리 최첨단 과학기술로 무장된 화려한 공간이다. 엑시엄의 모든 것은 자동화되어 있으며,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시스템화되어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엑시엄에서 필요한 모든 일은 로봇이 한다.


이 인공적인 공간은 시간마저 인공적이다. 늦잠을 잔 엑시엄의 선장이 허겁지겁 일어나 버튼을 누르면 엑시엄의 하늘에 뜬 인공 태양이 다시 돌아가 아침이 된다. 사실 아침이건 오후건 사람들에게 의미는 없다. 그들에게는 시간에 맞춰 해야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4.jpg » BnL이 만든 거대한 인공의 공간 엑시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더 많이 소비하라는 광고판이다.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엑시엄이라는 인공적인 공간과 시간에서 사람들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1인용 의자에 앉아 온종일 눈앞의 화면만을 쳐다보며 떠다닌다. 특별한 목적지도 없다. 이들은 걷지도 손을 움직이지도 않으며, 바로 옆 사람과의 대화도 눈앞의 화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한다. 데이트는 가상현실로 즐기고, 테니스는 로봇이 대신 쳐준다. 


지구를 떠나 엑시엄에서 생활한 지 700년을 넘기며 사람들의 체형이 유아와 같이 변했다. 척추는 약해졌고 몸은 비대해졌다. 의자에서 떨어지면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짧고 굵은 팔다리를 버둥거린다. 음식물은 씹지 않고 유아처럼 빨대로 섭취한다.   


이미지5.jpg » 엑시엄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앉아 화면을 쳐다보며 빨대로 음식물을 섭취하고 있다.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두 시간과 공간


우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영화는 지구와 엑시엄을 통해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사는 것은 곧 다른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처럼 환경에 적응해 생물이 변화하는 것을 흔히 진화라고 한다. 그리고 진화에는 발전이라는 개념이 내재하여 있다. 


하지만 엑시엄 사람들을 보면 인간이 진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물론 진화는 부분적으로 퇴화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하지만 엑시엄 사람들의 육체는 유아와 같이 퇴행했다. 생각과 정신도 육체와 같이 단순해 보인다. 


대신 과학기술과 인공지능 로봇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모든 것을 알아서 판단하고 처리하며, 인간이자 우주선 선장의 명령에 맞서 대항할 정도로 말이다. 엑시엄에서 진화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이미지6.PNG » 엑시엄 역대 선장의 초상화를 보면 사람들의 체형 변화 과정을 볼 수 있다.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편리함의 기술, 그리고 인간


다행히 우리는 엑시엄이 아닌 지구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지구는 아직 푸르다.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생명은 부지런히 피고 진다. 하지만 쓰레기도 매일 부지런히 버려진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은 1996년 18만 573톤에서 2016년 42만 9139톤으로 20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우리나라 한 사람은 1년 동안 367kg의 생활폐기물을 버리고, 미국인 한 사람이 1년 동안 버리는 쓰레기는 약 735kg이다(국가주요지표 통계 자료 : ‘일평균 폐기물 발생량(1996-2016)’, ‘OECD 주요국의 일평균 생활폐기물 발생량(1995-2015)).

  

p1 (1).jpg » 타이의 관광지 피피섬 바다의 플라스틱 오염 모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쓰레기는 분해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매일 새롭게 많이 버려지는 쓰레기는 어딘가 계속 누적될 수밖에 없다. 이 쓰레기는 어디에 쌓이고 있을까? 힘이 세고 돈이 많은 나라는 힘이 약하고 가난한 나라에 쓰레기를 수출한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하고 나쁜 수출이 아닐 수 없다. 


육지에 사는 인간은 바다에 쓰레기를 흘려버린다. 이로 인해 바다에는 거대한 플라스틱 섬이 만들어졌고, 물고기와 바닷새의 위장은 플라스틱 조각으로 가득 찼다. 물고기와 바닷새는 배가 가득 찼지만 결국 굶어 죽는다. 매우 위험하고 반감기까지 긴 핵폐기물은 땅속에 묻고 발언권이 없는 미래 세대에게 처분 부담을 넘긴다. 


pl4.jpg » 하와이 제도의 산 산호초에서 죽은 채 발견된 바닷새 앨버트로스 한 마리의 위장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조각. 뉴질랜드 더니든 왕립 앨버트로스 센터에 전시된 것이다. 케이트 휴슨 제공.


많은 사람은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면 쓰레기를 비롯한 여러 환경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월-E’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과학기술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이 단지 편리함과 풍족함의 감각적 욕망 위에서 끝없이 소비하기 위한 것이라면, 쓰레기를 치우는 과학기술의 결과물 역시 결국은 쓰레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소비와 쓰레기의 연속선 위 어딘가 위치한 유한한 지구도 결국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아마 지구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지구는 생각보다 거대하고 무자비하다. 하지만 그 전에 사람이 먼저 무너질 수도 있다. 속도의 철학자 폴 비릴리오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일상생활의 속도가 질주하게 되면 먼저 공간이 무너지고, 그다음은 시간이 무너진다고 하였다. 그리고 시·공간의 소멸과 함께 결국 인간의 존재마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엑시엄은 첨단 과학의 힘으로 시간과 공간의 의미가 없어진 세상이며, 이곳의 인간은 유아와 같은 모습을 가진 겔(gel) 형 인간으로 퇴행하였다(김은주·김재웅 (2010). 애니메이션 <월-E>에 나타난 시공간 분석-폴 비릴리오의 질주학을 중심으로. 디지털디자인학연구, 10(2).).


엑시엄은 비릴리오가 주목한 속도가 질주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곳의 빠른 속도는 ‘쉽고 편리함’의 가치가 지배하고 있다. 이브가 가져온 식물을 살리기 위해 지구로 돌아가려는 선장을 로봇 파일럿이 막아선 이유 역시 우주에 남는 것이 지구로 돌아가 쓰레기를 치우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지구에 남아 쓰레기를 치우던 BnL의 CEO는 “지구의 쓰레기를 치우는 것보다 우주에 남기가 더 쉽다“며 로봇 파일럿에게 우주에 남으라는 비밀 명령을 내린다.) 


선장은 로봇 파일럿과 힘겹게 싸우며 “나는 생존하고 싶지 않아. 나는 살고 싶어!”라고 외쳤다. 우리가 삶의 편리, 좀 더 노골적으로 생존의 편리만을 추구하게 되면 우리는 결국 생존만 하게 될 수 있다고 ‘월-E’는 이야기한다. 


이미지8.jpg »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로봇 파일럿과 싸우는 선장 : 의자에 앉아만 있던 선장이 스스로 일어섰다. 한국 소니픽쳐스 제공.


영화는 지구를 보살펴야 한다는 교훈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끝난다. 선장은 이브가 가져온 식물이 죽어가는 것을 보자 식물을 살리기 위해 지구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식물을 보살피고 살리는 것이 자신도 함께 사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선장과 엑시엄 사람들은 월-E와 이브, 몇몇 로봇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지구로 돌아온다. 이들은 끝도 모르고 질주하던 편리함의 공간에서 다시 생명의 공간인 지구로 내려온다.


‘월-E’의 엔딩과 같이 발달한 과학기술로 나와 상대방을, 다른 생명을, 지구를 보살피고 함께 산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을 보살핌이 정답이라고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물론 보살핌은 정답이라고 할 만큼 무척 훌륭한 가치이다.) 


다만 질문하고 싶다. 우리의 과학기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내 삶은 무엇으로 채워지고 있는가? 미래의 우리는 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권혜선/ 환경과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 돌마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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