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정복’한 닭, 어디서 어떻게 퍼졌나

조홍섭 2017. 01. 18
조회수 13018 추천수 0
야생닭 가축화 기원, 30년 논쟁

열대우림의 붉은야생닭이
야생 원조라는 데는 의문 여지 없어
 
다윈  “4천년 전 인더스 계곡이 기원
서아시아·중동 거쳐 8세기 유럽으로”
 
영·중 고생물학자 ‘북방 경로’ 주장
“동남아 가축 닭 중국 북부서 길러
무역로 비단길 따라 유럽으로 전파”
 
‘남방 가설’쪽 반격
“유적에서 나온 뼈 닭뼈인지 의문
중국 북부 기후도 닭치기에 부적합”
 
이후도 DNA 분석 등으로 티격태격
 
한반도 기록은 삼한시대부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거치며 사라져
 
가축유전자원센터 5개 품종 복원
지자체·민간 복원 포함하면 20여 종


 q0.jpg » 현재 기르는 모든 닭의 조상은 기본적으로 동남아와 인도에 걸친 열대우림에 사는 붉은야생닭(적색야계)을 개량한 것이다. 이 야생닭 수컷(위)은 볏이 크고 광택이 있는 화려한 깃털을 지녔으며 번식기에 큰 소리로 운다. 봄철에 알을 낳는 암컷 야생닭(아래)은 수수한 보호색을 띤다. 한반도에는 2천년 전 가축화한 닭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재래닭은 그들의 후손이다. 제이슨 톰슨, 위키미디어 코먼스(위), 제이 해리슨, 위키미디어 코먼스(아래) 제공

세계 인구 8억명이 굶주리고 있다. 그러나 닭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떼죽음할지언정 굶어 죽는 개체는 거의 없다. 세계에서 가축으로 기르는 닭은 210억 마리로 인류보다 3배나 많다. 우리나라에서 이번 조류인플루엔자 감염 사태로 17일까지 닭 2712만 마리가 도살 처분됐지만 국내에서 기르는 닭만도 1억5천만 마리에 이른다. 개체 수로만 보면, 닭은 지구에서 가장 성공한 척추동물의 하나다. 닭고기와 달걀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단백질원 중 하나이고, 대량생산되기 이전에도 종교, 의식, 문화에 중요한 동물이었다. 그렇다면 닭은 어떤 경로로 세계를 ‘정복’하게 됐을까.

q1.jpg » 지난해 12월 13일 오전 ‘국내 1호’ 동물복지농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한 농장에서 살처분이 끝난 텅 빈 계사에 살처분을 피해 숨어 있던 닭 한마리가 계사 안에서 먹을 것을 찾아 두리번거리다 물을 마시고 있다. 바닥에는 닭의 털과 깨진 달걀 등이 널려 있다. 음성군은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지역 반경 3킬로미터 안 위험 지역이라고 판단해 이 농장 닭 3만여마리를 살처분했다. 음성/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닭의 야생 원종은 붉은야생닭(적색야계)이다. 붉은야생닭은 인도 동부, 중국 남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열대우림에 서식한다. 큰 볏과 광택 있는 화려한 모습의 수컷은 번식기에 ‘꼬끼오’ 하고 울어 짝을 찾고 봄에 산란하는 암컷은 환경 속에 녹아드는 수수한 빛깔이고 볏도 작다. 가축 닭은 붉은야생닭을 기본으로 하고 다리 피부의 노란색을 물려준 인도 남부의 잿빛야생닭 등 다른 야생닭에서 기원했다. 닭이 선호하는 홰(횃대)에 오르기, 외진 둥지에 알 낳기, 모래목욕하기 등은 아직 남은 야생닭의 흔적이다.

q2.jpg »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 도리의 ‘바보숲 명상농원’에서 자연농법으로 토종닭을 기르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닭이 열대 정글의 야생닭에서 기원했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언제 어디서 가축화가 이뤄졌는지는 30년째 학계의 뜨거운 논란거리다. 찰스 다윈은 일찍이 닭이 4천년 전 인더스 계곡에서 붉은야생닭으로부터 기원했다고 설명했다. 인도에서 가축화한 닭을 서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페니키아인이 기원전 8세기에 유럽으로 전파했다는 가설이 오랫동안 지배적이었다.
 
 게놈 분석 통해 복잡한 양상 확인
 q7.jpg 그러나 영국과 중국의 고생물학자는 1988년 방대한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닭은 북쪽으로 갔나”라는 논문을 <고고학 저널>에 발표해 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여기서 연구자들은 동남아에서 가축화한 닭을 중국 북부에서 대규모로 기른 뒤 주변 지역으로 퍼뜨렸다는 ‘북방 경로 가설’을 주장했다. 논문은 “기원전 6천년께 중국에서 확립된 닭은 나중에 한반도를 거쳐 기원전 300~기원후 300년 무렵 일본으로 전파됐다. 인도에서의 가축화는 기원전 2000년께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적었다. 연구자들은 또 닭의 확산 경로도 남쪽이 아닌 중앙아시아의 무역로인 비단길을 따라 유럽으로 전파됐다고 주장했다.
 닭의 유전자를 분석해 닭의 분포와 확산에 관한 훨씬 해상도 높은 연구가 이어지면서 이제까지 알던 것보다 닭의 가축화가 훨씬 복잡한 양상을 띠었음도 분명해졌다. 2013년 먀오융왕 중국 윈난대 생물학자 등 중국 연구자들은 세계의 닭과 야생닭의 미토콘드리아 게놈을 자세히 분석해 과학저널 <유전>에 발표했는데, 닭의 가축화가 남아시아, 중국 남서부, 동남아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일어났음을 밝혔다.
 그러나 북방가설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증거인 뼈가 과연 닭 뼈인지 야생조류 뼈인지 의심스럽고 당시의 기후가 닭을 치기엔 적합지 않았다는 반론이 쏟아졌다. 비판에 두들겨 맞던 북방가설을 살려준 것은 2014년 권위 있는 미국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샹하이 중국농업대 연구자 등 중국 학자들이 주도한 논문이었다. 이들은 허베이성 난좡터우 유적지 등에서 발굴된 ‘닭 뼈’ 39개에서 디엔에이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중국 북부에서 약 1만년 전 닭의 가축화가 이뤄졌다는 결론을 얻었다. 연구자들은 당시 북중국은 돼지와 개를 가축화한 곳인데다 기장 농사도 지어 닭을 가축으로 기르는 ‘복합영농’ 조건이 갖춰졌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북중국이 남아시아, 동남아와 함께 닭 가축화의 기원지이지만 확산은 독립적으로 이뤄졌다고 보았다.
 
 “큰 강들 건너 이동 불가능” 논문도
인도 서부에서 중국 남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지에 분포하는 붉은야생닭은 열대우림 숲속에 살며 좀처럼 먼거리를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닭의 가축화가 황하 유역에서 기원했다는 북방가설은 최근 맹렬한 반격을 받고 있다. 에다 마사키 일본 홋카이도대 고고학자 등 일본과 중국 연구자들은 지난해 <고고학 저널>에 실린 논문에서 중국 신석기와 청동기 유적에서 다량 쏟아져 나온 닭 뼈는 형태적으로 꿩 뼈이며 심지어 개 뼈까지 들어 있는데 종 식별을 잘못한 ‘오동정’이었다고 통렬하게 비판했다. 고대 유전자 분석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q5.jpg » 야생닭에서 멀리 변화했지만 아직 옛 형질은 남아 있는 재래닭. 위키미디어 코먼스

 열대우림에 적응해 진화한 붉은야생닭이 중국 북부에서 살 수 있냐는 의문은 북방가설의 최대 취약점이다. 가설 주창자들은 홀로세 들어 기후가 온난해 유적지에서 열대 식물과 동물의 화석이 함께 출토된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한 연구가 축적돼 홀로세 고기후의 양상이 드러나자 비판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요리스 페터스 독일 뮌헨대 동물학자 등은 <제4기학 리뷰> 최근호에서 “홀로세 중반 온난기에도 차고 건조한 날씨가 교대로 나타나 열대 야생닭은 살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글에 사는 야생닭은 이동능력이 매우 떨어진다. 논문은 강폭이 600m 정도인 타이 메콩강을 야생닭이 건너려 높은 나무에서 활공을 시도했지만 상당수가 익사하고 말았다는 1921년 보고도 소개했다. 이렇게 볼 때 “동남아에서 중국 대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강들을 건너 중국 북부까지 야생닭이 이동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논문은 밝혔다.
 연구자들은 닭과 농업의 결합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렇게 효과적인 복합영농이 5천년 뒤에야 인근 한반도로 전파됐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북방가설 쪽의 뚜렷한 반론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과학은 그렇게 발전한다.
 
 “종자 개발 국가사업 상업화 치중”
 한반도에서 닭을 길렀다는 기록은 청동기 시대인 삼한시대부터 나타난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한반도의 특산물을 열거하면서 “꼬리가 5척이나 되는 닭이 있다”고 했고 <삼국지> 동이전에도 비슷한 언급이 있다.(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천마총에서 발굴된 단지에는 달걀 수십 개가 들어 있었고 신라의 여러 고분에서 닭 뼈가 나오기도 했다.

q6.jpg »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한 양계장의 닭. 이천/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정부가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낸 동물유전자원 국가보고서를 보면, 닭은 약 2천년 전 동남아로부터 또는 중국 남부나 북부를 거쳐 전파되었다. 이런 추정은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학교 전북대 동물생명공학과 교수 등이 과학저널 <플로스원>에 실은 논문에서 재래닭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해독한 결과 중국 이외의 경로를 포함한 다양한 모계 기원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났다. 일본의 재래닭에 대한 유전자 연구에서도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도입됐음이 입증됐다.
 그러나 이런 오랜 기원을 지닌 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사라졌고 이후 신품종으로 대체됐다. 1990년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재래닭 복원이 이뤄졌다. 연성흠 국립축산과학원 가축유전자원센터 소장은 “깃털 색깔을 기준으로 적갈색, 황갈색, 회색, 흑색 등 5가지 품종을 복원해 혈통을 유지하고 있다”며 “각 지자체와 민간이 복원한 것까지 포함하면 긴꼬리닭 등 모두 20여 품종에 이른다”고 말했다.

q3.jpg » 하림 닭 공장. 정용일 기자

 닭은 정부가 2012년부터 10년 동안 4911억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종자 개발 국가사업인 ‘골든 시드 프로젝트’에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가 지나치게 실용화·상업화에 치중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학교 교수는 “진화와 분류 등 기초연구도 필요한데 연구자와 당국의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예컨대, 기원을 알아야 예상되는 질병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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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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