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릿대 뒤덮인 한라산…먹성 좋은 말이 구해주려나

조홍섭 2017. 07. 02
조회수 8840 추천수 0
고산지대 방목 금지 뒤 급속 번식
기후변화까지 겹치며 침입종 등극
털진달래, 시로미 등 희귀종 ‘고사’
말 풀어놓자 하루 25㎏ 먹어치워
생물다양성 회복 위해 방목 검토


b0.jpg » 한라산 만세동산의 실험구에서 말 10마리를 제주조릿대 뗏장에 풀어놓아 먹도록 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1980년대까지 이곳은 말을 방목하던 곳이었다.

5월18일 한라산 정상의 암봉이 올려다보이는 해발 1700m 장구목에 올랐다. 아고산지대의 봄을 알리는 분홍빛 털진달래가 아니라 제주조릿대가 맞이했다. 

한달 뒤인 6월11일에도 마찬가지였다. 털진달래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산철쭉이 산을 붉게 물들일 때였다. 한라산이 조릿대로 몸살을 앓는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 전문가들과 현장을 돌아보면서 그 실태와 대책을 알아봤다.
 
b1.jpg » 한라산 윗세오름 주변 아고산지대가 섬처럼 떠있는 구상나무를 빼고는 거의 완전히 조릿대에 묻혔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소장 현진오)는 지난해부터 장구목 일대에 1㏊ 면적의 실험구를 만들어 조릿대를 직접 베어내는 실험을 하고 있다. 조릿대를 들어내자 아고산 생태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마치 구상나무 고사목 지대처럼 키 작은 털진달래가 앙상하게 말라죽은 가지만 남은 채 곳곳에 서 있었다. 죽지 않은 털진달래 한 그루가 묘지의 헌화처럼 꽃을 피우고 있었다.

b2.jpg » 조릿대 관리 국제심포지엄 참가자들이 장구목에 설치된 인위적인 조릿대 제거 실험장을 둘러보고 있다. 털진달래가 거의 대부분이 고사 직전 상태이다.

김현철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박사는 “털진달래가 많아 ‘진달래밭’으로 불리던 곳이었는데 밑동만 일부 살아있을 뿐 거의 고사했다”며 “산철쭉도 세력을 잃었지만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털진달래는 조릿대의 그늘을 견디지 못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라산 아고산대는 희귀식물의 보고다. 남한에서 한라산 고산지대에만 자라는 북방계 상록떨기나무인 시로미는 조릿대 바다에서 간신히 바위 주변을 붙들고 살아남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올봄 늦추위와 봄가뭄이 심해 이 지역 시로미의 절반 이상이 고사했다. 

b3.jpg » 남한에선 한라산에만 분포하는 희귀 고산식물인 시로미가 조릿대에 밀려 바위틈에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 노랗게 고사한 부분도 보인다.

흰그늘용담, 설앵초, 구름미나리아재비 같은 희귀식물은 조릿대가 없는 곳에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었고 손바닥난초, 닻꽃, 한라송이풀 같은 희귀종은 아예 자취를 감췄다. 현원학 제주생태교육연구소 소장은 “어렸을 때 만세동산 부근에 구름미나리아재비가 노랗게 피면 마치 유채꽃밭 같았는데 다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b7.jpg » 조릿대에 밀려나는 고산식물인 설앵초.

b8.jpg » 보기 힘들어진 나도제비란.

조릿대는 계곡 바닥과 바위 주변을 빼고는 산 전체에 빽빽하게 들어찼다. 이 연구소의 조사 결과 해발 1400m 이상 지역의 88.3%를 제주조릿대가 차지했다. 

b6.jpg » 윗새오름 전망대 근처에서 조릿대가 물밀듯이 분포지를 확장시키는 모습이 선명하다.

지상에는 1㎡당 1000개가 넘는 줄기가 빽빽하게 돋아 있고, 지하에는 수평으로 뿌리줄기가 서로 얽혀 매트를 형성한다. 한라산은 말 그대로 두툼한 ‘조릿대 담요’로 덮여 질식하고 있었다.

b4.jpg » 제주조릿대는 지하 1m까지 뿌리를 내리고 동시에 수평으로 뿌리줄기를 내어 서로 얽혀 매트를 형성해 다른 식물이 자리잡을 공간을 주지 않는다.
 
한라산이 원래의 경관과 생물다양성을 회복하려면 조릿대가 폭발적으로 증식한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5월17일에는 제주시에서 ‘조릿대의 확산과 관리 방안’을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중·일 전문가들은 동아시아 고유종인 조릿대가 기후변화와 대나무 이용 방식의 변화 때문에 침입종으로 변신하고 있다며 과학적인 연구를 통한 관리가 시급하다는 데 입을 모았다. 
 
언론에선 ‘점령’ ‘감염’ ‘퇴치’ 등의 표현으로 적대감을 표시하기도 하지만 제주조릿대는 외래종이 아니라 세계에서 제주에만 있는 고유종이다. 한라산 최초 등반기를 남긴 조선 선조 때 문인 백호(白湖) 임제(林悌, 1549~87)는 <남명소승(南溟小乘)에서 “작은 대와 누런 띠들이 그 위를 덮고 있어 말의 통행이 심히 어려웠다”고 적어, 이미 400여년 전부터 조릿대가 번성했음을 알 수 있다.

b5.jpg » 제주조릿대는 외래종이 아니라 세계에서 제주에만 있는 고유종이다.
 
조릿대 확산 문제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겪었다. 구도 가쿠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일본 최대 국립공원인 다이세쓰산에서 조릿대는 전체 면적의 60%, 산림의 90%를 덮고 있다”며 “지구온난화로 조릿대가 고산 초원에 침입하면 증산작용으로 토양이 건조해져 분포지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라산 고산지대를 둘러본 뒤 “일본 다이세쓰산과 상황이 전혀 달라 놀랐다.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조릿대를 제거한 뒤 식생을 복원하는 것이 과제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해마다 조릿대의 지상부를 베어내고 6년에 한 번 뿌리까지 제거하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b9.jpg » 1988년 고산지대 말 방목 금지가 조릿대 번성의 직접 원인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제주도는 5년간 장기연구를 할 예정이다.
 
제주도가 기대하는 관리 방안은 말 방목이다. 제주도 고산지대의 ‘상산 방목’이 금지된 1988년 이후 조릿대가 급속히 번성했고, 말이 이 지역 포유류 가운데 유일하게 조릿대를 즐겨 먹는다는 데서 착안했다. 지난해 말 4마리를 약 두 달 동안 만세동산(해발 1580m) 실험구에 풀어놓은 결과 하루에 체중의 7%인 약 25㎏의 조릿대를 먹었다. 
 
올해 만세동산에는 말 10마리가 실험구에서 조릿대를 먹고 있다. 조릿대는 단백질 함량이 높고 소화도 잘돼 말이 선호한다. 그러나 조릿대보다 먹기 좋은 다른 식물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말은 조릿대보다 목초로 쓰이는 김의털을 더 좋아한다. 또 나무 아랫부분을 갉아먹어 고사시키기도 한다.

b5-1.jpg » 햇빛을 가리던 조릿대가 사라지자 돋아난 호장근. 조릿대 제거가 생물다양성을 늘린다는 사실은 1년 간의 실험에서 분명해졌다.
 
제주도로부터 지난해부터 2020년까지 조릿대 관리 방안 연구용역을 맡고 있는 현진오 동북아생물다양성연구소 소장은 “1차 연구 결과 조릿대를 제거했을 때 식물종이 확연히 느는 것을 확인했다”며 “생물다양성 핫스폿인 아고산 초지를 대상으로 인위적인 조릿대 제거 작업을 하는 한편, 조릿대 순 군락지를 대상으로 울타리를 친 상태에서 말을 방목하는 방안 등을 집중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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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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