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범은 돌아왔지만…깊어지는 바이칼호의 고민

조홍섭 2017.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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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 현지 취재 ① 녹조 사태

세계에서 가장 깊고 부피가 크며 오랜 호수인 바이칼호는 세계 유일의 민물 물범 등 고유종 비율이 높아 1996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수질오염과 대규모 개발에 이어 관광 열풍으로 위기의 조짐을 보인다. 앞으로 기후변화는 또 다른 위협이다. 바이칼호는 다음 세기에도 ‘시베리아의 진주’ ‘성스런 바다’란 별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세계 담수량의 20%를 차지하는
길이 2000㎞ 가장 깊고 맑은 호수
3년 전부터 녹조와 생물 떼죽음
관광지 미처리 하수 방류가 주범
 
공장·생활 하수에 관광개발 겹쳐
관광객 연간 130만명…6년새 4배
‘생물다양성의 보고’ 위협 가시화


b3-3.jpg » 바이칼호 최대 관광명소인 올혼섬 부르한 바위 근처 해안에 녹조의 일종인 해캄이 바닥에 잔뜩 깔려 있다.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하수가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많을 때는 하루 한 사람이 물범을 300마리까지 잡기도 했어요. 이제는 잡지 않는데, 그래선지 요즘 물범이 부쩍 많이 눈에 띕니다.” 바이칼호 올혼섬 주민 블라디미르 키릴로프(52)는 한때 바이칼물범 사냥꾼이었지만 이제 모피보다 수입이 짭짤한 관광업에 종사한다. 그에게 물범은 모피보다 바이칼호의 때묻지 않은 자연의 상징으로 더 중요하다.
 
b3-1.jpg » 물범잡이 사냥꾼에서 관광업으로 직업을 바꾼 블라디미르 키릴로프(52)는 아직도 물범 사냥허가가 나오지만 사냥에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이르쿠츠크에서 관광객을 태운 차량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바이칼호 들머리인 리스트뱐카를 찾았다. 뱃전에서 물속을 내려다보자 마치 산골짜기 맑은 개울처럼 호수 바닥의 자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호수 안쪽으로 1분쯤 나아가자 물빛은 짙푸른 색으로 바뀌었다. 배의 수심계가 94m를 가리켰다. 서해바다 평균 수심의 두 배가 넘는다.
 
투명한 호수에서 호숫가로 눈을 돌리자 전형적인 관광지의 모습이 펼쳐졌다. 호수에 바짝 붙여서 지은 작은 칸막이의 간이식당이 줄지어 늘어섰고, 이 호수 고유종인 연어과 물고기 오물을 굽는 연기가 자욱했다. 그 앞에서 관광객을 태운 모터보트가 굉음을 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b1-1.jpg » 리스트뱐카의 호숫가는 관광객을 싣는 보트와 간이 음식점으로 북적였다.

b1-2.jpg » 관광객이 즐겨 먹는 바이칼호 산 오물과 골로먄카 등 고유종 물고기.

b1-3.jpg » 요금을 받고 바이칼물범의 박제와 함께 사진 촬영을 하도록 하는 매점.

17일 바이칼호 최대 관광지 올혼섬으로 향했다. 선착장에는 개별 관광객을 태운 승용차들이 바지선을 타기 위해 긴 행렬을 수백미터 이루고 있었다. “밤새 기다려 섬으로 들어가는 차들이 많다”고 한 관광안내인이 귀띔했다. “피크 때 올혼섬에 들어가는 차량만 하루 700대로, 한 시즌에 차량 4000대에 관광객 6만명이 온다”고 <모스크바 타임스>는 보도했다.

b3-2.jpg » 단체 관광객은 올혼 섬에 곧바로 갈 수 있지만 개인 승용차로 가려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한다. 바지선을 기다리는 자동차가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관광명소인 올혼섬 후지르 마을에는 타이가 침엽수림을 베어낸 초원지대에 급하게 지은 관광객용 숙박업소가 도로 등 기반시설도 없이 무질서하게 들어서 있었다. 숙박과 요식 업소에서 내보내는 그 많은 오·폐수와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할까. 현지 관광안내인은 관광객의 음식쓰레기를 모아 아무렇지도 않게 호숫가에 파묻고 있었다. 관광지의 화장실은 없거나, 있어도 사용료를 꽤 비싸게 받아 ‘자연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b3-4.jpg » 올혼섬 부르한 바위 근처에 들어선 관관용 숙박시설. 기반시설 없이 최근 밀려드는 중국 등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시설이 급증했다.

걱정은 사실로 드러났다. 샤먼바위로도 불리는 부르한 바위 건너편 호숫가에는 녹조가 번성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오염된 하천에서 보는 실처럼 가늘고 끈적끈적한 해캄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페스찬카 호숫가에서는 녹조가 다량 쌓여 악취를 풍기며 썪어가는 곳도 보였다. 
 
b4-5.jpg » 올혼섬 페스찬카의 호숫가에는 녹조가 쌓여 악취를 내며 썩어가고 있었다.

바이칼호는 최근 심상치 않은 환경변화를 보이고 있다. 올레크 티모시킨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호소학연구소 박사 등 국제적인 바이칼호 전문가들은 이 호수에서 점차 심각해지고 있는 환경문제를 지난해 국제학술지 <거대호수 연구저널>에 발표했다. 바이칼호의 위기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2013년 호수 연안에 녹조인 해캄이 대번성했는데, 연구자들은 “녹조가 없는 연안을 꼽는 편이 더 쉬울 정도”라고 밝혔다. 파도가 치는 해안에는 죽은 녹조가 무더기로 쌓여 썩어갔다. 다슬기 등 복족류 수천마리가 떼죽음해 빈 껍데기가 해안에 밀려오기도 했다.

b4-7.jpg » 바이칼 고유종인 해면(손가락 모습)을 녹조가 담요처럼 뒤덮은 모습. 티모시킨 외(2016)

b4-6.jpg » 바이칼호 북서쪽 해안에서 2014년 5월 발견된 대규모 복족류 떼죽음 모습. 티모시킨 외(2016)

논문은 “이런(녹조와 떼죽음) 사태가 어떤 규모로, 어떤 원인에서, 어떤 과정으로 일어났는지에 과학계는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히면서도 “바이칼호 환경에는 특별한 변화가 없다”는 러시아 정부의 공식 방침은 “잘못됐다”고 분명히 지적했다. 유엔환경계획(UNEP)의 지난해 보고서 ‘바이칼호 생태계 자연자원의 통합관리’를 보면, 녹조 사태의 유력한 원인은 소련 시절 건설한 연안 하수처리시설이 제대로 하수를 처리하지 못하는데다 최근 관광지에서 유입되는 대량의 미처리 오수와 하수일 가능성이 크다. 바이칼호 유역의 관광객 수는 2009년 30만명에서 2015년 130만명으로 급증했다. 이 가운데 외국 관광객은 10만명 정도로 중국, 독일, 몽골, 한국 순으로 많다.
 
b0.jpg » 부분적인 수질오염과 생태계 파괴의 조짐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바이칼호는 아직도 맑고 푸르다. 문제는 이런 조짐이 더 큰 재앙의 시작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녹조 사태로 바이칼호가 망가진 건 아니다. 아직도 호수의 투명한 물은 광대한 야생의 숲으로 둘러싸여 밝게 빛나고 있다. 2000㎞에 이르는 호수 연안의 70%는 배를 타야만 갈 수 있을 정도로 접근이 힘들다. 그러나 얼지 않은 세계 담수의 20%를 담고 있는 거대한 용량의 바이칼호지만 계속된 오염과 교란을 흡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1966년 당시 소련이 호수 남단에 지은 대규모 펄프공장은 2013년에야 환경적 이유가 아닌 경영난으로 폐쇄됐다. 호수 유입 수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셀렝게강은 몽골의 주요 도시를 흐르면서 미처리 하수를 실어나른다. 지구 온난화로 잦아진 산불로 녹조를 일으킬 영양물질은 더욱 많이 흘러들고 있다. 이 모든 악조건에 관광 개발이 추가된다.

sb10.jpg » 바이칼호 유입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셀렝가 강 하구. 몽골 주요 도시를 관통해 다량의 미처리 하수를 포함한다. 또 대규모 수력발전소 건설계획이 잇따라 바이칼호 수위변와 그로 인한 생태계 교란이 우려된다. 미항공우주국(NASA)

티모시킨 박사는 “바이칼의 비극은 고위 당국자들이 바이칼호는 절대 오염되지 않는다는 헛된 믿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라며 “불행하게도 우리는 수많은 다른 나라에서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바이칼호(러시아 이르쿠츠크)/글·사진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10조원대 투자…대규모 관광시설 개발 바람
 
b1.jpg » 바이칼호의 담수와 관광자원을 활용하려는 대규모 개발이 줄을 잇는다.

바이칼호의 맑은 물을 파이프라인을 통해 1000㎞ 떨어진 중국 북서부 건조지대로 수입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지난 3월 중국 간쑤성 란저우시가 물 부족을 극복할 장기계획의 하나로 제시한 사업이지만, 거대 토목사업이 흔한 중국에서도 논란을 부르며 흐지부지됐다. 
 
그러나 구체적인 바이칼호 개발계획도 적지 않다. 러시아 정부는 2007년 바이칼호 지역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경제특구로 지정했다. 최근 중국 관광객이 몰려들자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해 러시아 관광회사 그랜드 바이칼은 중국 기업과 바이칼 경제특구에 110억달러(약 12조2천억원)를 투자하는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대규모 펄프공장이 있던 바이칼스크에 대규모 관광시설을 세운다는 내용이다. 양해각서는 이 사업의 목적을 “현대적인 관광시설과 기반시설을 갖춘 고급 관광지를 만들어 관광객을 대규모로 유치”해 “바이칼 지역을 세계 규모의 관광 지대로 만드는 것”이라고 <모스크바 타임스>는 보도했다.
 
한편 몽골은 석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바이칼호의 주요 수원인 셀렝게강 상류에 수력발전 댐 8개를 건설할 계획이다. 러시아는 이미 1955년 바이칼호의 유일한 유출구인 안가라강에 댐을 건설해 바이칼호 수위를 1m 높여서 생태계 교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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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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