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연못 밑 붕어는 술에 기대어 생존한다

조홍섭 2017. 08. 17
조회수 15973 추천수 0

산소 없어도 4~5달 버텨, 치명적인 젖산 대신 알코올 생성 대사 작동

술 빚는 효모 비슷한 효소, 붕어의 혈중농도는 면허 정지 수준인 0.05%


03100750_R_0.jpg »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붕어의 비밀이 또 하나 발견됐다. 무산소에서 살아남는 능력이다.한강물환경연구소


연못이 꽁꽁 얼고 위에 눈이 쌓이면 연못 바닥까지 빛이 들어가지 못한다. 조류가 광합성을 하지 못하면서 물속의 산소는 고갈된다. 붕어나 가까운 친척인 금붕어는 이런 혹독한 환경에서도 잘 살아남는다. 그 비결은 뭘까.

 

척추동물은 산소가 없으면 몇 분 지나지 않아 죽는다. 뇌 등 핵심 장기에 산소를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산소 상태에서 붕어와 금붕어는 간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는다.

 

문제는 분해 산물로 생기는 젖산은 독성이 커 몸에 축적되면 생존이 어렵다는 점이다. 1980년 금붕어를 이용한 실험에서 금붕어가 젖산 대신 알코올을 만듦으로써 이런 위험을 회피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rain_17365_12019_ed.jpg »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담수어인 붕어. 강인한 생명력이 잇따라 밝혀지고 있다. 조홍섭 기자


노르웨이와 영국 연구자들은 붕어가 무산소 상태에서 술 빚는 효모와 비슷한 기능을 하는 효소를 만들어 생존할 수 있으며, 그 기원은 800만년 전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중복’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연구결과는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츠> 11일 치에 실렸다.

 

연구에 참여한 마이클 베렌브링크 영국 리버풀대 진화생리학자는 “북유럽 서식지에서 붕어는 얼음에 덮인 연못의 산소가 없는 물속에서 여러 달 동안 살아남는다”며 “이때 붕어의 혈중알코올농도는 100㎖당 50㎎(0.05%에 해당)이 넘는데, 사람이라면 면허정지 처분을 받는 수준이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붕어는 대사 산물인 알코올을 아가미를 통해 배출한다. 연구자들은 “붕어가 무산소 상태에서 4∼5달을 생존하지만 죽는 건 산소부족이 아니라 간에 축적된 에너지가 고갈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03347998_R_0.jpg » 어느 개울의 붕어는 크기와 모양이 모조리 비슷한 경우가 많다. 새 서식지를 개척한 암컷이 처녀생식으로 자신의 복제품을 퍼뜨리기 때문이다. 김봉규 기자


이런 대사가 가능한 이유는 붕어가 ‘피루베이트 디카르복실라아제’라는 새로운 효소를 진화시켰기 때문이다. 붕어의 조상은 우연히 유전자 중복을 일으켰고, 여기서 확보한 여벌의 유전자가 무산소 상태 때 알코올 대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주 저자인 캐서린 페이거니스 박사는 “이번 연구는 그때까지 생물이 살기 힘든 환경에 적응해 생물이 진화하는 데 유전자 중복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보여준다”며 “붕어는 알코올 생산 능력 덕분에 혹독한 환경에 살아남은 유일한 물고기가 됐고, 그럼으로써 경쟁과 포식자를 회피할 수 있었다”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이 연구에 대해 이완옥 국립수산과학원 중앙내수면연구소 박사는 "겨울철 붕어가 저수지 깊은 곳에서 집단으로 월동하는데 이런 비밀이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라며 “다른 어류 종에서도 이런 능력이 있는지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붕어는 이런 무산소 환경 생존능력 말고도 외딴 곳에 진출해 짝을 만나지 못할 경우에는 처녀생식과 성 전환으로 번식을 이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관련 기사: 붕어와 톱상어, 처녀생식으로 살아남기)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athrine E. Fagernes et al, Extreme anoxia tolerance in crucian carp and goldfish through neofunctionalization of duplicated genes creating a new ethanolproducing

pyruvate decarboxylase pathway, Scientific Reports 7: 7884, DOI:10.1038/s41598-017-07385-4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황새 무리 비행, 선두가 가장 편하다황새 무리 비행, 선두가 가장 편하다

    조홍섭 | 2018. 05. 25

    상승기류 오래 타고 날갯짓 적어 멀리까지 이동첫 몇 분 비행이 선두 결정…27마리 무선추적 결과장거리 이동하는 철새는 얼마나 에너지가 적게 드는 비행을 하는지가 생사를 가른다. 쐐기꼴 대열에서 바람을 가르며 나는 선두는 뒤따르는 새보다 ...

  • 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하마 배설물은 강 생태계에 보물일까 재앙일까

    조홍섭 | 2018. 05. 21

    물고기 주요 먹이지만 건기 오염 축적되만 ‘오염 폭탄’자연스런 현상이었지만 인위적 요인 겹치면 회복 불능몸무게가 1t이 넘어 아프리카에서 코끼리, 코뿔소와 함께 가장 큰 초식동물인 하마는 밤 동안 초원지대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50㎏에 이르...

  • 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바퀴벌레 무서워? 당신 몸속에 ‘곤충 먹는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18. 05. 18

    곤충 키틴질 겉껍질 분해 효소 유전자 4종 보유공룡시대 곤충 먹던 흔적, 모든 포유류에 남아곤충은 기후변화와 인구증가에 대응할 수 있는 유력한 미래 식량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실 사람의 곤충 먹기는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어서 이미 세...

  • ‘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침팬지 침대’는 사람 것보다 깨끗해~

    조홍섭 | 2018. 05. 17

    매일 나무 위에 새로 짓는 둥지, 세균·벌레 축적 안 돼사람 집은 외부 생태계 차단…침대 세균 35%가 몸에서 비롯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등 영장류는 공통으로 매일 잠자리를 새로 만든다.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엮어 받침을 만든 뒤 ...

  • 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백두산호랑이 주 먹이는 멧돼지, 겨울엔 절반 차지

    조홍섭 | 2018. 05. 16

    한국표범은 주로 사슴 사냥…두만강 건너 중국 동북부 조사 결과멧돼지와 사슴 주 먹이지만 호랑이는 반달곰, 표범은 수달도 사냥 한 세기 전만 해도 한반도 전역과 중국 동북부, 러시아 연해주에 걸쳐 3000마리 이상이 살았던 아무르호랑이(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