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불리 피 빤 모기가 귀신같이 도망치는 비결

조홍섭 2017. 10. 22
조회수 7394 추천수 1
다리 힘 아닌 초당 600번 날갯짓으로 날아올라
긴 다리로 충격 완화, 포유류 감지 한도의 4분의 1

m1_mosquito_takeoff_bloodfed_Florian Muijres, Wageningen University..jpg » 말라리아 모기가 빠른 날갯짓과 긴 다리를 이용해 숙주가 눈치채지 못하게 날아오르는 모습. 플로리안 뮈즈레스, 와게닝언대

모기는 냄새와 색깔 등 여러 가지 단서를 바탕으로 먼 거리에서도 적당한 상대를 찾아낸 다음 2개의 초소형 펌프를 이용해 자신의 체중 1∼2배에 이르는 피를 1∼2초 안에 흡수한다(■ 관련 기사: 모기가 당신을 찾는 방법…처음엔 코 다음엔 눈, '최고 위험 동물' 모기, 왜 내 피만 좋아할까). 그러나 피를 빨아 뚱뚱해진 몸으로 어떻게 들키지 않고 날아가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네덜란드와 미국 연구자들은 말라리아모기를 대상으로 초당 12만5000 프레임을 찍는 초고속 카메라 3대를 이용해 모기가 숙주의 피부로부터 도망치는 비결을 조사했다. 그 결과 흡혈로 체중이 2배로 불어난 몸집인데도, 모기는 포유류의 민감한 피부로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약한 힘만을 미치고 날아갔다. 강력한 날갯짓과 긴 다리가 그 원동력으로 밝혀졌다.
 
대부분의 곤충은 이륙할 때 강력한 다리 힘을 이용한다. 파리는 위협을 느끼면 먼저 다리로 바닥을 박차 몸을 공중으로 내던진 뒤 미친 듯이 날갯짓을 해 도망친다. 전투기 비행사의 비상탈출 같은 이 과정에서 파리는 종종 비행 통제력을 잃기도 한다.
 
그렇다면 파리와 체중이 비슷한 모기는 어떨까. “모기는 이륙을 대부분 날개 힘으로 하고 다리로는 아주, 아주 조금만 밀어내는데, 아마 전혀 쓰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연구에 참여한 소피아 창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대학원생은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공동연구자들이 피 공급장치를 제공해 주기 전까지 자신의 팔뚝을 모기에 내주며 실험을 진행했다고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m2_cdc_Anopheles_stephensi.jpg » 말라리아 모기가 피를 빠는 모습. 은밀하게 접근해 도망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질병통제본부(CDC), 위키미디어 코먼스

조사 결과 모기는 날아오르기 직전 0.03초 동안 초속 600번의 빠른 속도로 날갯짓했다. 이륙에 필요한 양력의 61%를 날개가 냈다. 이륙하는 동안 모기는 긴 다리를 천천히 펼쳐 피부를 누르는 힘을 분산시켰다. 
 
체중만큼 피를 빤 모기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이륙속도가 18%나 느려진다. 자칫 알을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혈액을 어렵게 확보하고도 마지막 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 있다. 느려진 속도를 벌충하기 위해 발로 박차는 힘을 늘리면 숙주가 감지할 위험도 커진다. 은밀성이냐 속도냐의 갈림길에서, 모기는 강력한 날갯짓과 긴 다리라는 제3의 해법을 찾은 것이다. 
 
연구자들의 실험에서 초파리는 이륙할 때 포유류의 피부 감지 한계보다 2배 이상의 힘을 미쳤지만(그래서 이륙 순간 눈치채고 손바닥으로 때릴 수 있지만) 모기는 한계의 3∼4분의 1에 그쳤다(배부른 모기가 문 자리를 박차고 날아가는 순간은 보기 힘들다).
 
 

측정 결과 모기의 이륙속도는 같은 체중의 초파리와 비슷했다. 속도 손실 없이 은밀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창은 “이런 능력은 모기에게 특별한 것이지만 다른 흡혈 곤충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숙주로부터 피를 빤 뒤 슬그머니 도망치는 능력은 다른 흡혈 곤충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연구자들은 모기가 어떻게 피부에 눈치채지 못하게 내려앉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실험생물학’ 19일 치에 실렸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 T. Muijres et al, Escaping blood-fed malaria mosquitoes minimize tactile detection without compromising on take-off speed,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2017) 220, 3751-3762 doi:10.1242/jeb.163402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쓰레기 소각장 돼 버린 희귀새 탐조 명소 어청도쓰레기 소각장 돼 버린 희귀새 탐조 명소 어청도

    윤순영 | 2018. 06. 22

    정부가 추천한 ‘3대 탐조 생태여행지’, 온종일 쓰레기 태우는 연기로 가득쓰레기 방치·소각 일상화, 군부대도 불법소각에 가담…섬 쓰레기 대책 필요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 어청도는 군산시에서 72㎞ 떨어진 고군산군도의 가장 외딴 섬이다. ...

  • 잘 날지도 못하는 새끼를 어미 새가 내쫓는 이유잘 날지도 못하는 새끼를 어미 새가 내쫓는 이유

    조홍섭 | 2018. 06. 21

    날개 미발달 체중 지탱 못해도 어미가 먹이로 이소 유도둥지에서 몽땅 포식자에 먹히는 것보다 이른 이소가 나아 부지런히 먹이를 먹여 새끼 새가 자라 어느덧 둥지를 떠날(이소) 때가 왔다. 어미는 둥지를 떠나려 하지 않는 새끼 새를 먹이...

  • 거미 장거리 비행 비결은 산들바람 소용돌이 타기거미 장거리 비행 비결은 산들바람 소용돌이 타기

    조홍섭 | 2018. 06. 19

    수백킬로 바다도 건너는 뛰어난 이동능력, 비결은 공기역학 이용미풍이 일으킨 소용돌이 타고 상승 뒤 나노섬유 거미줄로 '비행선'해저화산 폭발로 대양에 새로 생긴 섬에서 처음 발견되는 생물은 십중팔구 거미이다. 거미는 수백㎞ 거리와 4500m 상...

  • 고려인삼의 힘, 빙하기 견디며 DNA 2배 된 덕분고려인삼의 힘, 빙하기 견디며 DNA 2배 된 덕분

    오철우 | 2018. 06. 18

    유전체로 본 인삼 생태와 기원음지 성장하며 월동…생육 독특약리작용 물질 만들어 뿌리 저장36억 염기쌍에 유전자 5만9천종고려인삼, 원산종보다 게놈 2배빙하기 때 ‘종 합성’으로 불어나덕분에 추위 강한 생명력 확보100만년 전 북미대륙으로 퍼져...

  • 달팽이 속살만 빼먹는 뱀 아세요?달팽이 속살만 빼먹는 뱀 아세요?

    조홍섭 | 2018. 06. 18

    아래턱 밀어넣고 굽은 이로 살 물어 끄집어 내4종은 멸종 위기…신종 명명권 경매해 보호기금남아메리카 열대림에는 달팽이를 전문으로 잡아먹는 나무 뱀이 산다. 달팽이는 부드러운 속살을 단단한 껍질로 보호하지만, 이를 돌파할 수 있다면 먹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