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코원숭이 커다란 코는 분쟁 막는 ‘평화의 코’?

조홍섭 2018. 02. 26
조회수 11485 추천수 0
코 클수록 힘세고 생식능력 뛰어나
다른 수컷과 평화적 분쟁 해결 신호

n1.jpg » 보르네오섬의 긴코원숭이 수컷. 긴 코는 강한 힘과 생식능력과 상관관계가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쓰다 잇키 제공

동남아의 보르네오섬에는 오랑우탄과 함께 특이하게 생긴 긴코원숭이가 산다. 수컷의 코는 길게 늘어져 입 아래까지 늘어지기도 한다. 긴코원숭이는 어떻게 이렇게 긴 코를 지니게 됐을까.

수컷의 과장된 형질을 진화론에서는 성 선택의 결과로 설명하곤 한다. 이를테면 공작 수컷의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크고 화려한 깃털은 그만큼 크고 건강한 개체라는 신호여서 암컷이 짝짓기 상대로 선호한 결과이다. 깃털이 클수록 더 많은 자손을 남긴다. 그러나 실제로 야생 상태에서 성 선택이 어떤 결과를 빚는지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 등 국제연구진은 긴코원숭이를 대상으로 수컷의 긴 코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조사했다.

n2.jpg » 긴코원숭이는 덩치가 큰 수컷 한 마리와 여러 암컷으로 이뤄진 집단을 이뤄 생활한다. 암컷은 코가 상대적으로 작다. 마쓰다 잇키 제공
 
긴코원숭이는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과 함께 일부다처제 집단(하렘)을 이룬다. 어린 수컷은 총각 집단을 이뤄 호시탐탐 하렘을 차지하려 노린다. 밤이 되면 잠자리에 여러 무리가 몰려든다. 암컷은 종종 하렘을 떠나 다른 집단으로 달아난다. 이래저래 수컷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성 선택 압력이 매우 강한 조건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원숭이 수컷 사이에선 큰 싸움이 드물다. 그 이유도 큰 코와 관련이 있었다.

연구자들은 야생 긴코원숭이 18마리의 코 길이, 체중, 고환 부피 등을 측정했다. 그랬더니 코가 클수록 체중이 무겁고 고환도 컸다. 다시 말해 수컷의 큰 코는 힘(체중)이 세고 생식능력(고환)도 뛰어나다는 광고판 구실을 한다. 이런 시각적 신호는 암컷에게만 효과적인 것이 아니다.

n3.jpg » 수컷 긴코원숭이의 큰 코는 불필요한 수컷 사이의 갈등을 막아주는 구실도 한다. 마쓰다 잇키 제공
 
총각 집단 긴코원숭이의 코 크기는 하렘을 차지한 수컷보다 현저히 작았다. 따라서 암컷들을 차지하고 싶은 수컷은 그 무리의 수컷과 부상을 무릅쓴 무리한 싸움을 벌이기 전에 코의 크기를 비교하는 편이 낫다. 연구자들은 “긴코원숭이가 수컷 사이에 직접적인 싸움이 없이 분쟁을 해결하는 데는 큰 코가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큰 코가 평화를 부른다.

연구자들은 또 코의 길이가 울음소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조사했다. 긴코원숭이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해안과 강변의 열대우림을 멀리 떠나지 않는다. 울창한 숲에서는 시각 신호보다 청각 신호가 잘 전달된다. 조사 결과 코가 길수록 공명이 잘 일어나 암컷을 유인하는 긴 콧소리를 내는 데 유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n4.jpg » 어린 긴코원숭이. 긴코원숭이는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며 물가를 떠나지 않는 세계적 멸종위기종이다. 마쓰다 잇키 제공

결국 큰 코는 이 원숭이가 암컷의 인기를 끌고 경쟁 상대인 다른 수컷에게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는 시청각 신호라는 사실이 이번 연구로 드러났다. 긴코원숭이는 보르네오 고유종으로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몸집이 크며 체중은 30㎏에 이른다. 코의 길이는 최고 10㎝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멸종위기’ 등급에 등재된 종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Koda et al. Nasalization by Nasalis larvatus: Larger noses audiovisually advertise conspecifics in proboscis monkeys, Sci. Adv. 2018;4: eaaq0250, DOI: 10.1126/sciadv.aaq0250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요즘 같은 기후변화가 사상 최악 멸종사태 불렀다

    조홍섭 | 2018. 12. 07

    수온 10도 상승, 신진대사 빨라지는데 산소농도는 낮아져 떼죽음적도보다 고위도 지역 멸종률 커…현재 지구온난화와 같은 메커니즘적도 바다의 수온이 10도나 높아졌다. 바닷속의 산소농도는 80%나 줄었다. 삼엽충 등 바다 생물들은 숨을 헐떡이며 ...

  • 쥐라기 어룡, 온혈동물로 위장 색 띠었다쥐라기 어룡, 온혈동물로 위장 색 띠었다

    조홍섭 | 2018. 12. 06

    피부 화석 정밀분석 결과 지방층·색소 분자 확인깊고 찬물서 사냥, 태생…피부는 고래처럼 매끈원시 포유류 일부는 육지를 버리고 바다로 가 돌고래로 진화했다. 포유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파충류의 조상 중 일부가 바...

  • 물고기는 왜 낚시를 못 피하나, 구석기 때부터 쭉물고기는 왜 낚시를 못 피하나, 구석기 때부터 쭉

    조홍섭 | 2018. 12. 04

    낚시·그물·함정 등 어구는 감지·인식·학습 불허하는 ‘슈퍼 포식자’진화시킨 포식자 회피법 무력화…“물고기가 회피·학습하는 어업 필요”인류는 구석기 시대부터 물고기를 주요 식량으로 삼았다. 수 오코너 오스트레일리아 고고학자 등은 2011년 동남...

  • 젖 먹여 새끼 키우는 거미가 발견됐다젖 먹여 새끼 키우는 거미가 발견됐다

    조홍섭 | 2018. 12. 03

    중국서 포유동물 비견되는 깡충거미 육아 행동 발견젖에 우유보다 단백질 4배…수유가 생존율 높여‘포유류’는 새끼가 자라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젖을 먹여 기르는 동물을 가리킨다. 특히 사람처럼 오래 사는 사회성 포유류는 이런 육아 ...

  • 혹등고래 거대한 입을 함정으로, 새 사냥법 확산혹등고래 거대한 입을 함정으로, 새 사냥법 확산

    조홍섭 | 2018. 11. 30

    물새에 쫓긴 물고기떼 입속을 피난처로 착각캐나다 밴쿠버 집단서 4년 새 20여 마리가 학습혹등고래는 길고 독창적인 노래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행동으로 유명한 수염고래이지만, 사냥 방법 또한 다양하고 독창적이다. 여러 마리가 바닷속에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