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 없다면 두리안도 테킬라도 없다

조홍섭 2018. 04. 09
조회수 12114 추천수 1
척추동물도 꿀벌 못잖게 꽃가루받이 기여
박쥐, 도마뱀, 원숭이 차단하면 결실 63% 감소

Dennis Hansen.jpg » 꽃속에 머리를 들이밀고 꽃꿀을 핥는 도마뱀. 일부 섬에서 도마뱀은 주요한 수분 동물이다. 데니스 한센 제공.

식물의 꽃가루받이를 해 주는 꿀벌 등 곤충의 세계적인 감소가 주목받는다. 세계 곳곳에서 꿀벌 집단의 대규모 붕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다, 독일 보호구역에서는 지난 27년 동안 곤충의 양이 75%나 줄어든 사실이 밝혀져 ‘곤충 아마겟돈’이란 말도 나왔다. 그러나 꿀벌 등 곤충만 꽃에서 꽃가루를 나르는 건 아니다. 그리 알려지지는 않지만, 척추동물 가운데도 꽃가루받이에 크게 기여하는 동물이 적지 않다. 이들은 무관심 속에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파브리지아 라토 영국 사우샘프턴대 생물학자 등 연구자들은 과학저널 ‘생태학과 환경 최전선’ 최근호에 실린 리뷰 논문에서 “가루받이 척추동물이 사라질 때의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위험에 빠진 꽃을 찾는 척추동물 종에 대한 신속하고 효과적인 보전 대책이 꼭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PETRA WESTER.jpg » 남아프리카에서 생쥐의 일종이 야생 백합으로부터 꽃꿀을 빨고 있다. 포유동물이 꽃가루받이에서 하는 역할은 과소평가돼 왔다. 레트라 웨스터 제공.

눈길을 끄는 건, 연구자들이 검토한 126건의 실험 연구 결과다. 척추동물이 가루받이하지만 곤충도 그런 구실을 하는 식물을 대상으로 척추동물의 접근을 차단했더니 열매와 씨앗의 생산이 평균 63%나 떨어졌다. 특히 가루받이하는 박쥐의 영향이 커, 박쥐의 접근을 막은 결과 결실률이 83%나 줄었다. 세계적으로 박쥐가 꽃가루를 전달하는 식물은 ‘과일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동남아의 두리안을 포함해 528종에 이른다.

Kurt Stüber_Agave_tequilana0.jpg » 테킬라의 원료 식물인 용설란의 일종인 블루 아가베. 두 종의 박쥐만이 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다. 쿠르트 스튀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박쥐가 가루받이하는 식물은 유독 몇몇 종의 박쥐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예가 멕시코의 긴 코 박지 두 종으로 이 나라에서 유명한 독주인 테킬라를 만드는 용설란인 ‘블루 아가베’를 전적으로 수분한다. 블루 아가베는 밤에 꽃을 피우고 썩은 과일 향으로 박쥐를 유혹하는데, 꽃이 길고 좁아 긴 코 박쥐만이 꽃꿀을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이 박쥐는 현재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꽃가루받이 동물은 새로서 세계에서 920종 이상이 그 기능을 수행한다고 논문은 밝혔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식물 종의 5%가량이 번식에 새의 도움을 받는다. 섬에서 그 비율은 10%로 뛴다. 섬에서는 흥미롭게도 도마뱀도 꽃가루받이에 나서는데, 세계적으로 그런 종이 37종에 이른다.

v2.jpg » 꽃가루를 옮기는 가장 큰 척추동물인 마다가스카르 여우원숭이 일종. 찰스 하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v1.jpg » ‘여행자 나무’로 불리는 마다가스카르의 파초과 식물. 여우원숭이가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이다. 밀레이 벤셀,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식물 번식에 기여하는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마다가스카르에 서식하는 여우원숭이의 일종(학명 바레시아 바리에가타)이다. 이 원숭이는 ‘여행자 나무’로 불리는 파초 과의 큰 식물을 찾아 단단한 꽃을 비집어 열고 꽃꿀을 마신다. 꽃꿀은 이 원숭이에게 중요한 칼로리 원이며, 원숭이는 꽃을 손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꽃꿀을 섭취한 뒤 털에 꽃가루를 듬뿍 묻혀 나른다. 

연구자들은 열대 식물이 온대보다 척추동물에 의한 꽃가루받이에 더 많이 의존하며 앞에 든 동물 말고도 생쥐, 포섬, 다람쥐 등도 꽃가루받이를 한다고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abrizia Ratto et al, Global importance of vertebrate pollinators for plant reproductive success: a meta-analysis, Front Ecol Environ 2018; 16(2): 82–90, doi: 10.1002/fee.1763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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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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