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사라지면 생태계도 무너진다

조홍섭 2018. 07.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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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고래 등 대형동물처럼 사람도 생태계 ‘쐐기돌’
장소 기반한 수렵·채취 사회, 생물 다양성 높이는 기능

l1.jpg » 수렵·채취로 살아가는 남아프리카 산족이 불을 피우는 모습. 이들이 생태계에서 하는 기능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덩치가 큰 동물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다른 동물과 식물에 영향을 끼친다. 어떤 동물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기능이 아주 중요해 쐐기돌 구실을 하기도 한다. 아치의 꼭대기 돌처럼 그 동물이 사라지면 생태계가 무너져내린다. 코끼리는 그런 예로, 수많은 식물의 씨앗을 비료와 함께 멀리 퍼뜨리고, 큰 나무를 넘어뜨려 초원을 유지하고 나무에 모인 미네랄을 땅으로 돌린다. 큰 포유류는 씨앗을 퍼뜨리는 기능을 해 우리나라에서도 반달가슴곰은 씨앗 퍼뜨리는 '숲의 농부', 산양은 헛개나무 '자궁'으로 불린다(▶관련 기사: 변비 일으키는 열매, 씨앗 멀리 보내려는 전략). 고래, 바닷새, 연어 등은 바다에서 육지로 양분을 옮기는 주요 통로인데, 이들이 사라지면서 지구 차원의 생태계 영양순환에 문제가 생겼다(▶관련 기사: 거대동물 배설물 사라지자, 지구 영양균형 흔들).

사람은 포유류 가운데 큰 축에 든다.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수렵·채취 사회는 인류 역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인류가 유목과 소규모 농경을 시작한 것은 1만년 전이었고, 산업화 사회는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일이었다. 지난 수십만 년 동안 인류가 수렵·채취 사회를 영위하면서 자연과 밀접하게 맺어 온 관계는 대부분 사라졌다. 코끼리와 고래가 사라지면 생태계가 삐걱거리는데 사람이 해온 기능이 없어지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l2.jpg » 19세기 화가가 그린 오스트레일리아 수렵·채취인 캠프의 모습. 인류 역사의 90% 이상은 이런 형태의 삶을 꾸려 왔다. 스키너 프라우트,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잃어버린 사람의 생태적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레베카 버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인류학자와 데일 니모 오스트레일리아 찰스 스터트대 생태학자는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6월호에 실린 의견 논문에서 이런 주장을 폈다.

이들은 “한 장소에 터 잡은 인간사회가 사라진다는 것은 생물 종의 멸종이나 마찬가지”라며, 아직 남아있는 수렵·채취 사회의 기능을 재평가할 뿐 아니라 나아가 생태계 복원에서 인류의 역할을 모색할 때도 생태계에서 인간이 해 온 구실을 빠뜨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연구자들은 “산업사회와 후기산업사회가 환경과의 상호관계는 대규모 벌채,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며 “그러나 도시-산업사회가 빚는 생태 재앙을 그대로 원주민 삶에도 적용해 대형동물의 멸종이나 서식지 파괴로 손쉽게 연결짓는다”고 주장했다.

l0.jpg » 수렵·채취 사회가 주변 생태계와 맺는 상호관계. 레베카 버드 외 (2018) ‘네이처 생태 및 진화’ 제공.

연구자들은 사람이 생태계와 맺는 긴밀한 관계를 오스트레일리아 서부 사막에 사는 토착 원주민의 사례로 설명했다. 원주민은 캠프를 친 곳에서 중요한 식량인 가지 속의 열매를 다듬고 쓴맛이 나는 씨앗을 버리는데, 이런 행동이 이 식물의 장거리 확산을 돕는다. 반대로 원주민이 사라지면 이 식물은 퍼지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l3.jpg » 호주 서부 사막 원주민이 캠프장에서 가지속 과일을 다듬고 있다. 캠프장에 버려진 이 과일의 씨앗은 원주민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된다. 레베카 버드 외 (2018) ‘네이처 생태 및 진화’ 제공.

원주민들은 또 겨울철 왕도마뱀을 사냥하기 위해 들판에 불을 지른다. 이 불은 식물 다양성을 높인다. 만일 이런 수렵·채취인의 불 지르기가 사라진다면 대형 초식동물이 사라진 것처럼 식물 생태계가 영향을 받는다. 또 원주민들이 덩이줄기나 뿌리를 캐 식량으로 삼기 위해 땅을 파는 행위는 토양을 뒤섞고 식물의 교체를 부추긴다. 이처럼 부분적인 교란이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사례는 아마존 강 유역에서 원주민의 화전 경작이 커피와 소 방목지로 바뀌면서 생물 다양성이 급격히 줄어든 데서도 확인된다.

l4.jpg » 야생으로 풀려난 고양이를 사냥해 가는 호주 서부 원주민. 이런 사냥은 토착 동물에 위협이 되는 외래동물을 제거하는 기능을 한다. 레베카 버드 외 (2018) ‘네이처 생태 및 진화’ 제공.

원주민의 사냥도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사람이 초식동물을 사냥하면서 ‘공포의 경관’이 조성되고, 초식동물의 활동이 억제되면서 식물에 대한 압력도 줄어든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늑대를 복원했더니 사슴의 활동이 위축돼 강변의 버드나무가 잘 자랐고, 그 결과 강물의 범람을 줄어들고 기후변화 억제에 기여했다는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연구자들은 “생태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하는 동물을 재자연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런데도 사람이 생태계에서 해 온 오랜 진화 역사에 눈감는 것은 놀랍다”며 “장소에 기반을 둔 (원주민) 사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산업화한 농업, 벌채, 도시화가 벌어진다면 원주민 사회가 사라지면서 어떤 생태적 결과가 빚어지는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Rebecca Bliege Bird and Dale Nimmo, Restore the lost ecological functions of people, Nature Ecology and Evolution, https://doi.org/10.1038/s41559-018-0576-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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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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