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멸종 동굴곰, 불곰 유전자 속에 살아있어

조홍섭 2018. 08. 29
조회수 4453 추천수 1
현생 불곰 게놈에 동굴곰 유전자 0.9∼2.4% 포함 확인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처럼 불곰과 동굴곰도 교잡 

Lajos Berde-2.jpg » 현생 불곰의 모습. 이 곰의 유전체 속에는 멸종한 선사시대 동굴곰의 유전자가 일부 들어있음이 밝혀졌다. 라요스 베르데 제공.

구석기인들은 종종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러 들어온 거대한 곰을 만나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불곰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덩치가 큰놈은 몸무게가 600㎏에 이르는 빙하기 동물 동굴곰이다.

불곰과 가까운 친척인 이 동굴곰은 스페인에서 이란 북부까지 유럽에 널리 분포했지만 2만4000년 전 멸종했다. 매머드, 검치호랑이 등 플라이스토세 거대동물과 운명을 같이 했다. 그러나 이 선사시대 곰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동굴곰은, 적어도 유전자 형태로 불곰 속에 살아남았다.

b1.jpg » 동굴곰 유골의 대규모 유적. 동굴곰은 동면 중에 죽어 오랜 기간 사체가 쌓여 루마니아의 한 동굴에서는 140마리의 골격이 발견되기도 했다. 안드레이 포스모사누 제공.

악셀 바를로프 독일 포츠담대 박사과정생 등 국제 연구진은 28일 과학저널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에 실린 논문에서 멸종한 동굴곰과 불곰이 종의 차이를 넘어 교잡한 유전적 증거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7만1000∼3만4000년 전에 살았던 동굴곰 4마리의 게놈과 현생 불곰, 반달곰, 북극곰, 자이언트판다 등의 게놈(유전체)을 비교한 결과 조사한 모든 불곰의 게놈에 동굴곰의 디엔에이(DNA)가 0.9∼2.4% 포함돼 있음을 발견했다.

b2.jpg » 동굴곰의 두개골을 조사하는 연구자. 안드레이 포스모사누 제공.

연구자들은 “고인류의 사례를 빼고 빙하기에 멸종한 종의 디엔에이를 현생 종에서 확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아프리카인을 뺀 현생 인류의 게놈에서는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1.5∼4% 포함돼 있어, 두 인류 종의 교잡이 일어났음이 밝혀져 있다. 또 비슷한 시기에 시베리아에 살던 데니소바인의 유전자 일부도 티베트 등 아시아인의 게놈에 섞여 있다. 최근에는 네안데르탈인 여성과 데니소바인 남성 사이에서 태어난 딸의 유전체가 확인되기도 했다. 그러나 현생 인류와 멸종한 인류 사이의 유전적 거리는 동굴곰과 불곰 사이보다 훨씬 가깝다.

동굴곰은 주로 초식성이었으며, 동굴에서 다량의 뼈가 발굴되는 것에 비추어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다 그대로 죽는 개체가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함께 주 서식지인 동굴을 사람에 빼앗겨 멸종했다는 복합가설이 나온다.

b3.jpg » 멸종한 동굴곰의 두개골. 그러나 유전자의 일부는 아직 살아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은 “멸종은 흔히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교잡을 통해 멸종한 생물 종의 유전자 풀의 일부가 현생 종의 게놈 속에 수만 년 살아남을 수 있음을 이번 연구는 보여준다”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xel Barlow et al, Partial genomic survival of cave bears in living brown bears, Nature Ecology & Evolution, DOI: 10.1038/s41559-018-0654-8,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59-018-0654-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순한 청소동물’ 독수리는 왜 동료를 잡아먹었나‘순한 청소동물’ 독수리는 왜 동료를 잡아먹었나

    조홍섭 | 2018. 09. 20

    해남 금호호서 동종포식 장면 직접 목격, 환경생태학회 보고먹이 부족 추정되나 일반화는 곤란…먹이 주기 의존 대규모 월동 문제지난해 1월 17일 오후 3시께 강승구 국립생물자원관 박사는 전남 해남군 금호호 주변에서 겨울 철새를 조사하고 있었...

  • 근육 녹인 수분으로 알 낳는 건조지대 비단뱀근육 녹인 수분으로 알 낳는 건조지대 비단뱀

    조홍섭 | 2018. 09. 19

    새끼가 우기 태어나려면 건기 임신 불가피, 알 70%는 수분지방보다 근육에 수분 5배 포함…번식에 근육 분해 첫 사례. 자식 위해 모든 걸 다 하는 건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나 마찬가지다. 동물들은 자식이 최적 조건일 때 태어나도록 최악...

  • 뇌 없는 식물서 신경계 비슷한 방어 시스템 확인뇌 없는 식물서 신경계 비슷한 방어 시스템 확인

    조홍섭 | 2018. 09. 16

    동물 흔한 신경전달물질 글루타메이트가 칼슘이온 흐름 촉발초속 1밀리 속도로 신호 전달, 수분 뒤 먼 잎에 방어물질 생산식물은 다리가 없어 천적이 공격해도 도망칠 수 없다. 그러나 애벌레가 잎을 맛있게 물어뜯으면 곧 그 사실을 식물의 멀리...

  • 한·일 ‘벚꽃 원조’ 논란 끝? 제주 왕벚나무 ‘탄생의 비밀’ 확인한·일 ‘벚꽃 원조’ 논란 끝? 제주 왕벚나무 ‘탄생의 비밀’ 확인

    조홍섭 | 2018. 09. 14

    국립수목원 제주·일 왕벚나무 게놈 분석 결과 “유전적 교류 없었다”제주 왕벚나무는 올벚나무와 벚나무 1세대 잡종으로 탄생 확인프랑스인 신부 타케가 제주도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한 것은 일본강점기 직전인 1908년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1962년 식...

  • 7천m 심해 꼼치 건져 올렸더니 스르르 녹았다7천m 심해 꼼치 건져 올렸더니 스르르 녹았다

    조홍섭 | 2018. 09. 13

    700기압 초고압 흐늘흐늘한 몸 적응, 최상위 포식자로마리아나 이어 아타카마 해구 심해서도 물고기 확인영국 뉴캐슬대 등 국제 연구팀은 5년 전부터 새로 고안한 ‘심해 착륙선’ 시스템을 이용해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 밑 생물을 조사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