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은 포식자보다 등산객이 더 무섭다

조홍섭 2019.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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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등산로 첫 무인카메라 조사

밤·낮 없는 등산객, 서식지 교란에 사람 지나간 뒤 하루만에 나오기도

 

b1.jpg » 초식동물은 육식동물보다 더 사람의 교란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노루(사진)는 그런 대표적인 동물이다. 게티이미지뱅크 

 

백두대간 등산로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하면 어떤 동물이 찍힐까. 가장 많이 등장한 동물은 당연히 야생동물보다 3배 많은 등산객이었다. 뒤이어 낮에는 청설모, 담비, 족제비, 다람쥐가, 밤에는 고라니, 너구리, 노루, 멧토끼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덕유산 국립공원과 지리산 국립공원 사이의 백두대간인 육십령∼덕치 52㎞ 구간 12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1년 동안 운영한 결과 야생 포유류 12종이 확인됐다. 이들은 밤·낮 없이 찾아오는 등산객에 의한 교란을 받았지만 고라니·노루 등 초식동물이 훨씬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우리나라에서 등산객이 야생동물에 끼친 영향을 무인카메라로 조사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청설모와 담비는 ‘아침형’

 

이화진 제주대 과학교육학부 박사과정생 등 연구자들은 '아시아·태평양 생물다양성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모두 1216장이 찍힌 야생 포유류 가운데 고라니는 5마리에 1마리꼴로 가장 흔했고, 이어 너구리, 청설모, 멧돼지, 노루 순으로 10% 이상의 높은 출현율을 기록했다.

 
b2.jpg » 활동성이 뛰어난 담비는 낮과 밤에 모두 눈에 띄었다. 이화진 제공. 

b3.jpg » 오소리. 이화진 제공.


교신저자인 오홍식 제주대 교수는 “고라니는 물가 습지에서 흔히 관찰되지만 높은 산 정상까지 다양한 환경에 서식한다”며 “고라니를 비롯해 너구리, 멧돼지, 노루도 산림 저지대에서 고지대까지 널리 분포하고 개체 수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멸종위기종인 담비도 오소리와 비슷한 7.5%의 비교적 높은 출현율을 보였다. 오 교수는 “담비가 많이 찍힌 건 뜻밖”이라며 “활동적이어서 매우 활발하게 먹이를 찾아다니는 담비의 행동이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멸종위기종인 삵은 3.9%였다.

 

눈길을 끄는 종은 멧토끼로 족제비와 비슷한 2.4%의 출현율을 나타냈다. 오 교수는 “멧토끼는 과거 아주 흔했지만 숲이 우거지면서 천적이 늘어나는 등의 이유로 전반적으로 크게 줄어 보기 힘들어진 동물”이라며 “새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할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생동물은 사람의 출현을 미리 눈치채고 자리를 비킨다. 직접 관찰보다 무인카메라를 이용한 야생동물 조사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또 능선은 등산로로 많이 이용하지만, 야생동물도 편한 길을 마다치 않는다.

 

b4.jpg » 낮에 나타난 족제비. 이화진 제공.

이번 조사에서는 동물마다 활동하는 시간대가 제각각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오전 7∼9시 사이에 많이 출몰하는 ‘아침형 야생동물’은 다람쥐, 청설모, 담비, 족제비 등이었다. 야행성 동물은 오소리, 멧돼지, 멧토끼, 삵, 너구리, 노루, 고라니 등 대부분 포식자를 피하는 초식동물이었다.

 

등산객의 11% 불법 야간산행

 

그러나 초식동물이 피하는 건 포식동물만이 아니다. 등산객은 야생동물의 출현에 악영향을 끼쳤다. 등산객이 찍힌 모습은 야생동물의 3배 가까운 3248장이었는데, 놀랍게도 11%는 밤에 찍혔다. 오 교수는 “백두대간 핵심구역에서 야간산행은 불법인데도 그런 행태가 만연하고 있다”며 “등산은 야생동물이 원서식지를 회피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며, 특히 야간산행으로 인한 헤드 랜턴은 빛에 민감한 포식동물의 활동범위를 축소한다”고 말했다.

 

b5.jpg » 랜턴을 달고 불법 야간산행을 하는 등산객. 이화진 제공. 

사람의 방해가 어떤 야생동물에게 특별히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도 이번 연구의 주요한 목적이었다. 연구자들은 사람이 지나간 뒤 얼마나 시간이 지난 뒤 동물이 다시 출현하는지 조사했다. 동물마다 차이가 컸다. 사람이 간 지 6분 만에 나타난 다람쥐가 있는가 하면, 노루는 열흘이 넘는 271시간 뒤에 나타나기도 했다.

 

이화진 씨는 “노루와 고라니 등 초식동물은 훨씬 더 민감해 사람이 지난 뒤 대개 하루가 지난 뒤 다시 나오고, 포식자인 담비, 삵 등은 18시간 정도 격차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종이 등산객에 더 민감한지 등은 앞으로 데이터가 더 쌓여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b6.jpg » 등산로에 야생동물 출현을 관찰하기 위한 무인 카메라를 설치하는 연구팀. 야생동물도 가기 편한 등산로를 즐겨 이용한다. 이화진 제공.


일반적으로 야생동물이 등산로에 출현하는 빈도는 저물녘인 저녁 7∼8시께가 가장 높아, 등산객이 자주 다니는 오전 10시∼오후 4시와는 차이가 있었다. 이씨는 “사람과 야생동물이 등산로를 이용하는 시간대가 다른 데다 야생동물이 먼저 알고 회피하기 때문에 등산객이 야생동물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다”며 “등산객이 오기 직전 노루와 고라니가 후다닥 달아나는 모습이 찍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담비는 호기심이 많아, 사람이 지나가고 얼마 뒤 뒤따라 지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이번 조사에서는 새들도 다수 찍혔다. 김우열 국립생태원 박사는 “팔색조, 흰배멧새, 양진이, 진홍가슴, 힝둥새 등 16종을 확인했다”며 “무인카메라가 일반적으로 관찰이 힘든 숲 속 새 조사에 유용했다”고 '한국조류학회지'에 보고했다.

 

핵심 생태 축, 보호대책 마련해야

 

연구에 참여한 박진영 국립생태원 보호지역연구팀장은 “이번에 조사된 야생 포유류 12종은 비무장지대와 인근 민통선에 확인된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백두대간은 구간이 넓은 데다 등산객이 많이 늘어 국립공원보다 관리가 어려운 형편”이라고 말했다.

 

b7.jpg » 백두대간은 한반도 생물다양성의 보고이다. 지리산 능선의 모습. 한겨레 자료 사진. 

백두대간에는 한반도 식물의 3분의 1인 1500종을 비롯해 포유류의 29%(36종), 조류의 26%(135종), 양서·파충류의 60%(32종)가 분포한다. 경상대 생명과학부 정명기 교수 등은 지난해 과학저널 '유전학 최전선'에 실린 논문에서 “백두대간은 빙하기에 남하한 유존종의 피난처이자 생물 다양성의 핫스폿으로 보존이 꼭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홍식 교수도 “백두대간은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의 핵심적인 생태 축”이라며 “자연휴식년제나 특별보호구를 설치하는 보전 대책과 함께 불법행위 금지와 훼손방지 등 일반인을 위한 홍보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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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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