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450㎏ 먹는 코끼리, 기후변화 줄이는 ‘착한 식성’

조홍섭 2019. 07. 19
조회수 7674 추천수 0
콩고분지 둥근귀코끼리, 작은 나무 먹어치워 크고 조밀한 나무 늘려

f1.jpg » 서아프리카 콩고분지에 서식하는 둥근귀코끼리. 열대우림에 적응해 코끼리 가운데 덩치가 가장 작지만, 키 2.4∼3m, 무게 2∼4t으로 많은 양의 식물을 먹는다. 토마스 브로이어,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적도 아프리카 서부에 있는 콩고분지는 지구에서 두 번째로 큰 훼손되지 않은 열대우림이 보존된 곳이다. 이곳에는 사바나에 사는 아프리카코끼리와 종이 다른 둥근귀코끼리가 산다.

지름 30㎝ 이하면 어떤 나무도 쓰러뜨리는 이 코끼리는, 나뭇잎과 껍질은 물론 씨와 열매 등을 하루 450㎏까지 닥치는 대로 먹는 대식가다. 그러나 이런 식습관이 열대림을 망가뜨리기는커녕 숲을 지탱하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이 코끼리의 똥 무더기 하나에서 식물 96종의 씨앗 1000여 개가 발견되기도 했다. 식물의 씨앗을 먼 거리로 옮겨 ‘비료’와 함께 살포하는가 하면, 나무에 고정된 무기물 등 중요한 영양분을 토양으로 되돌려 주어 ‘숲의 거대 정원사’란 별명을 얻었다.

둥근귀코끼리의 식성이 초래하는 또 다른 효과가 발견됐다. 이 코끼리가 숲을 교란한 덕분에 지상의 생물량(바이오매스)이 늘어났고, 그 결과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숲이 더 많이 저장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f2.jpg » 둥근귀코끼리는 키 작은 나무를 키 큰 나무로, 빨리 자라는 나무를 느리고 단단하게 자라는 나무로 숲의 구조를 바꾸어 결과적으로 지상에 더 많은 양의 탄소를 보관하는 구실을 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파비오 베르자기 이탈리아 투시아대 생물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과학저널 ‘네이처 지구과학’ 15일 치에 실린 논문에서 모델링과 현지 조사를 통해 이런 결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베르자기는 “코끼리가 작은 나무를 먹어치운 결과 더 적은 수의 나무가 더 크게 자라고, 목재가 단단한 수종으로 숲이 바뀌어 나가게 된다”고 ‘네이처 리서치’의 연구 후기에서 설명했다.

그는 이런 변화를 기후와 토양이 비슷하지만, 형태는 전혀 다른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열대림과 비교했다. 아마존에는 콩고보다 더 작은 나무가 더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그는 이런 차이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는 1만년 전 거대 초식동물이 모두 멸종했지만, 아프리카에는 코끼리가 살아남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코끼리가 작은 나무들을 없애자 키 큰 나무 밑에 그늘과 수분 부족에 잘 견디는 나무들이 하층 숲을 형성했는데, 이들은 목질이 더 촘촘하고 단단해 같은 크기의 숲이라도 더 많은 탄소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f3.jpg » 콩고분지 열대림의 모습. 키 큰 나무 밑에 빛과 물 부족에 잘 견디는 느리게 자라는 나무들이 하층 식생을 이뤄 작은 나무가 빽빽한 아마존과 대조를 이룬다. 아벨 카바나 ,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연구자들이 실제로 코끼리가 있는 곳과 없는 곳의 나무를 비교해 보니, 코끼리가 있는 곳의 나무 밀도가 ㎥당 75g 더 크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열대림 1㎢에 코끼리가 0.5∼1마리만 있어도 지상의 숲에 보관할 수 있는 탄소량은 ㏊당 26∼60t에 이른다고 연구자들은 계산했다.

반대로 이 코끼리가 멸종한다면, 열대림의 목재 속에 보관되던 탄소가 대기 중 이산화탄소로 돌아가 기후변화를 악화하게 된다. 한반도보다 10배가량 넓은 중앙아프리카의 둥근귀코끼리는 한때 수백만 마리가 살았지만 현재 약 10만 마리만 남아 있으며, 밀렵과 서식지 파괴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취약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둥근귀코끼리가 콩고분지에서 지상에 추가로 저장한 탄소량을 30억t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사상 최고였던 세계의 탄소 배출량 371억t의 8%에 해당하는 양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Fabio Berzaghi et al, Carbon stocks in central African forests enhanced by elephant disturbance, Nature Geoscience (2019) DOI: 10.1038/s41561-019-0395-6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남극 폭군’ 얼룩무늬물범은 왜 협동 사냥에 나섰나‘남극 폭군’ 얼룩무늬물범은 왜 협동 사냥에 나섰나

    조홍섭 | 2019. 08. 16

    먹이도, 경쟁자도 많을 때 서로 돕는 게 이득…평소와 달리 공존 추구 남극의 ‘순둥이’ 웨델물범이 펭귄을 사냥하는 모습이 최근 화제가 됐지만, 이번에는 남극의 ‘폭군’으로 알려진 얼룩무늬물범(표범물범)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사냥하고 먹이를 나...

  • ‘검은 날개’의 비밀…비행 효율 높여 준다‘검은 날개’의 비밀…비행 효율 높여 준다

    조홍섭 | 2019. 08. 14

    햇볕에 데워져 온도 9도 높아…흰 날개 끝 검은 무늬도 양력 높여멀리 나는 큰 새의 날개는 일반적으로 날개 윗면이 검거나, 적어도 가장자리는 검다. 날개의 검은색과 비행은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날개를 편 폭이 3.5m로 세계에서 가장 큰 새...

  • 새에게 사진가는 접근하는 ‘포식자’새에게 사진가는 접근하는 ‘포식자’

    조홍섭 | 2019. 08. 12

    걸어오는 사람보다 웅크리고 살금살금 다가오는 사진가 더 경계 밝혀져누구보다 새를 사랑하는 새 사진가는 드물고 멋진 새를 촬영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조심스러운 발걸음이 새들에게는 조용히 접근하는 포...

  • 왕도마뱀은 왜 독이빨로 서로 싸워도 무사할까왕도마뱀은 왜 독이빨로 서로 싸워도 무사할까

    조홍섭 | 2019. 08. 09

    인도네시아 코모도왕도마뱀 게놈 해독…혈액 응고 조절 등 진화코모도왕도마뱀은 여러모로 특별한 동물이다. 길이 3m 무게 100㎏까지 자라는 세계 최대 도마뱀으로, 사슴과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를 사냥하고 사람 습격도 마다치 않는다.후각 기능이 ...

  •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둥치의 생존 비결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둥치의 생존 비결

    조홍섭 | 2019. 07. 29

    밤 동안 남는 물과 양분 나눠줘…“숲은 초유기체”“이상하다, 잎사귀 하나 없는 나무둥치가 살아있네?”시배스천 루징거 뉴질랜드 오클랜드공대 교수(생태학)는 서오클랜드를 하이킹하다 이상한 카우리나무 둥치와 맞닥뜨렸다. 무언가의 이유로 나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