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쭉한 붕어, 넓적한 붕어-포식자가 정한다

조홍섭 2019.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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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못하게 체고 키워…만성 스트레스로 면역 저하 부담

c1.jpg » 포식자가 곁에 있으면 유럽붕어(오른쪽)는 그렇지 않은 곳의 붕어보다 몸의 세로 높이(체고)가 커져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려 한다. 여커 빈터스터러 제공.

붕어는 호수와 저수지에 널리 분포하지만, 지역에 따라 형태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암컷 혼자서도 ‘붕어빵’처럼 새끼를 복제하는 독특한 처녀생식의 영향도 있지만(▶관련 기사: 붕어와 톱상어, 처녀생식으로 살아남기), 포식자가 곁에 있느냐 여부도 길쭉한 붕어냐 넓적한 붕어냐를 결정한다.

포식 물고기의 존재가 붕어의 몸매를 결정한다는 유명한 연구는 스웨덴 남부에서 이뤄졌다. 유럽과 러시아에 널리 분포하는 유럽붕어(한국 등 동아시아 붕어와는 같은 속의 사촌뻘)와 포식어인 강창꼬치고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였다.

연못을 둘로 나누어 한쪽에는 붕어와 창꼬치고기를 함께 넣고, 다른 쪽에는 붕어만 넣은 뒤 석 달 뒤 형태 변화를 조사했다. 당연히 창꼬치고기와 있게 된 붕어는 굵은 개체를 빼고 대부분 잡아먹혔다.

살아남은 붕어의 형태는 놀랍게 달라져 있었다. 포식자 없는 연못 붕어에 견줘 몸의 길이는 짧지만 몸의 세로 폭(체고)은 커져 더 넓적한 형태를 띠었다.

크리스터 브뢴마크 스웨덴 룬드대 생태학자 등 이 대학 연구자들은 1992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붕어는 포식자에 먹히지 않기 위해 자원의 많은 부분을 체고를 높이는 데 들였다”며 “포식자의 존재가 먹이동물의 표현형 변화를 부르는 사례가 척추동물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밝혔다.

c2.jpg » 유럽붕어의 포식자인 강창꼬치고기. 수초에 숨어 붕어의 몸 가운데를 문 뒤 머리부터 삼킨다. 체고가 큰 붕어는 이 과정에서 도망칠 확률이 높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창꼬치고기는 수초에 숨어 접근하는 붕어를 가까운 거리에서 습격한다. 몸 중간을 문 뒤 먹이를 돌려 머리부터 삼킨다. 애초 포식자의 목구멍보다 체고가 높은 붕어는 공격대상에서 제외되지만, 미처 그런 높이까지 자라지 못한 붕어도 삼키기까지 처리 시간이 오래 걸려 도망칠 확률이 높아진다.

룬드대 연구진은 후속연구에서 붕어는 창꼬치고기의 냄새를 맡기만 해도 체형 변화를 일으키며, 포식자는 같은 크기의 붕어라도 체고가 낮은 쪽을 선호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c3.jpg » 유럽붕어와 같은 속의 사촌관계인 토종 붕어. 포식자 큰입배스와 함께 있으면 먹히지 않으려고 생장이 빨라져 몸이 비대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강물환경연구소 제공.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됐다. 장민호 공주대 생물교육과 교수 등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붕어와 비슷한 서식지에서 포식자로 군림하는 큰입배스가 붕어 집단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한국환경생물학회지’ 2013년 겨울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영남지역의 배스가 있는 호수 3곳과 없는 호수 3곳의 붕어를 비교했다. 배스가 없는 호수에는 1년생 이하의 붕어가 많은 정상적인 양상을 나타냈지만, 포식자가 있는 곳에서는 1년생보다 길이 16∼18㎝인 2년생 붕어 비율이 더 높았다. 다시 말해, 배스가 서식하는 호수의 붕어가 씨알이 굵었다.

흥미로운 건, 배스가 있는 곳의 붕어는 길이에 견줘 비대하다는 사실이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을 “배스의 포식에 직접 영향을 받는 호수의 붕어가 생존을 위해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 전략을 사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c4.jpg » 큰입배스는 창꼬치고기처럼 붕어의 체형 변화를 초래한다. 경남 창녕 우포늪에서 토종 물고기를 미처 삼키지 못하고 붙잡힌 큰입배스. 한겨레 자료 사진

붕어가 체고를 높이거나 비대하게 해 포식자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면 왜 처음부터 이런 형질을 타고난 붕어가 진화하지 않은 걸까. 브뢴마크 교수 등 룬드대 연구진은 이런 의문에서 출발해 8달 동안의 실험연구에 돌입했다. 포식자 없는 수조의 붕어와 아크릴 격리판 너머로 창꼬치고기의 냄새가 스며들고 모습이 보이는 수조의 붕어를 비교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포식자의 흔적을 느끼는 붕어는 넓적한 형태로 바뀌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일어났다. 공포에 사로잡힌 붕어에게서 면역력이 약해졌다.

‘동물 생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포식자로부터 피하기 위해 몸의 형태를 바꾼 붕어는 면역 시스템이 약화해 바이러스나 세균에 감염돼 병에 걸릴 위험이 커졌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붕어가 변화된 형태로 진화하지 않고, 필요할 때만 그런 형질이 발현되도록 융통성을 간직한 이유는 면역력 약화라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논문은 “포식자와 기생충·병원체에 모두 대처해야 한다면,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없다”고 적었다. 주 저자인 여커 빈터스터러 룬드대 박사과정생은 “포식자가 주변에 있다는 만성적 스트레스가 면역체계를 손상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Vinterstare J, Hegemann A, Nilsson PA, Hulthén K, Brönmark C. Defence versus defence: Are crucian carp trading off immune function against predator-induced morphology? J Anim Ecol. 2019;00:1–12. https ://doi.org/10.1111/1365-2656.1304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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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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