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나무’ 은행나무의 장수 비결

조홍섭 2020. 01. 20
조회수 9176 추천수 1
나이 먹어도 노화현상 없어…20대 저항력 천살까지 유지

1629758 (1).jpg »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큰 것으로 알려진 경기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키 42m, 밑동 둘레 15m, 나이 1100살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제공.

은행나무는 2억년 전 쥐라기 공룡시대부터 지구에 분포해 온 ‘살아있는 화석’이다. 한때 지구 전역에 살았지만, 현재 중국 동부와 서남부에 극소수만 자생한다(사람이 인공증식한 가로수 은행나무는 다시 세계를 ‘정복’했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름답고 병충해와 오염에 강해서이지만, 무엇보다 끈질기게 삶을 이어나간 까닭은 장수하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에는 수백살이 넘는 은행나무가 즐비하고, 자생지인 중국 동부 저장성의 톈무 산에는 1000년이 넘는 거목이 17그루에 이른다. 은행나무가 장수하는 비결은 무얼까.

중국과 미국 연구자들은 15살에서 667살에 걸친 중국 은행나무를 대상으로 생리적 변화와 관다발 부름켜의 변화를 분자 차원에서 분석해 그 비밀의 일단을 밝혔다. 연구자들은 14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늙은 나무도 여전히 건강하고 성숙한 생태였으며 나무 전체에서 노화가 드러나지 않았다”며 “지속적인 성장과 노화 방지, 외부 스트레스에 대한 강력한 저항력 유지가 그 비결”이라고 밝혔다.

gi1.jpg » 벨기에 공원의 은행나무 고목. 나이가 들어도 노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장 폴 그랑몽,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노화는 동물에서 줄기세포의 활력이 떨어지는 형태로 나타난다. 식물에서 줄기세포에 해당하는 것은 분열조직이다. 나무는 나이를 먹어도 어느 한도 이상으로 키가 자라지 못한다. 나무 꼭대기의 분열조직이 한파나 번개, 폭풍에 손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껍질 밑에 관 형태로 자리 잡은 관다발의 분열조직은 끝까지 활동을 유지한다.

연구자들은 “은행나무도 나이가 들면서 관다발 세포층의 숫자는 점차 줄어든다”고 밝혔다. 세포분열이 느려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첫 200년 사이 나이테의 폭은 급격히 줄어든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그러나 이후 감소 추세는 완만해질 뿐 성장은 멈추지 않았다. 이는 600살이 되도록 나무의 밑동 면적이 줄지 않는 데서도 드러난다.

512 (3).jpg » 20살, 200살, 600살 은행나무의 나이에 따른 저항 능력(그래프 오른쪽 맨 위), 노화 증상(가운데), 성장률 변화. 나이가 들어도 저항능력, 성장능력이 줄지 않고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 것을 나타낸다. 왕 외 (2020) PNAS 제공.

연구자들이 20살, 200살, 600살짜리 은행나무를 비교한 결과 잎 면적, 광합성 효율, 씨앗의 발아율은 나이가 먹어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0살이 넘은 수나무는 여전히 활력이 있는 꽃가루를 생산했고, 비슷한 나이의 암나무도 다량의 은행을 해마다 열었다.

흥미로운 건, 나이 든 은행나무의 아르엔에이(RNA) 염기서열을 분석한 결과 노화 관련 유전자의 발현이 늘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세포분열의 속도가 느려질 뿐 은행나무는 사실상 늙지 않는다는 얘기다. 은행나무가 죽는 건 노화가 축적돼서가 아니라 병원체나 가뭄 같은 자연적 이유와 사람에 의한 개발 등 인위적 이유 때문이다.

또 은행나무는 늙어도 병균이나 기후변화 등 외부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저항력이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저항력을 유지할 이차 대사물질인 플라보노이드나 테르페노이드 등의 합성능력이 유지됐다. 20살 청년 은행나무나 1000살 고령 은행나무가 같은 수준의 저항력을 보유한다.

박미향.jpg » 공룡시대에 전성기를 맞은 은행나무는 북반구 전역에 분포했다. 인류가 출현하기 훨씬 전 이미 멸종위기를 맞은 이 화석 나무는 사람의 손길과 보살핌을 받아 다시 세계 전역에 분포하게 됐다. 박미향 기자

세계적 진화생물학자인 피터 크레인 박사는 한국 등에서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은행나무-시간이 망각한 나무’를 펴냈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5만년 전 인류가 처음 중국에 발을 디뎠을 때 은행나무는 이미 몇몇 피난처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멸종위기종이었다”며 “(과거처럼) 은행나무가 다시 세계 대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가로수가 된 것은 사람의 오랜 관심과 보살핌 덕분”이라고 말했다(▶관련 기사: 2억년 살아남은 은행나무의 비밀).

인용 저널: PNAS, DOI: 10.1073/pnas.1916548117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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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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