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깔려도 끄떡없는 ‘철갑 딱정벌레'의 비밀

조홍섭 2020. 11. 09
조회수 4345 추천수 0
표본 만들 때 핀 휘어 드릴로…겉날개 봉합선 맞물림 구조가 하중 분산

be1.jpg » 길이 2㎝의 악마의 철갑 딱정벌레(Phloeodes diabolicus)는 날지 못하는 대신 철갑을 떠올리게 하는 강력한 장갑을 둘렀다. 그러나 겉날개에는 어떤 금속성분도 들어있지 않다. 데이비드 키사일러스 제공.

북미 서부 참나무숲에서 균류를 먹고 사는 투박한 딱정벌레에 ‘악마의 철갑 딱정벌레’란 이름이 붙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날지 못하는 이 딱정벌레는 장갑차처럼 단단한 키틴질 껍질로 자신을 지킨다. 

천적에 들키면 돌멩이 흉내를 내며 죽은 척하는데 새가 부리를 쪼는 것은 물론 사람이 밟거나 심지어 자동차가 바퀴로 깔고 지나가도 끄떡없다. 초기에 이 딱정벌레를 채집한 곤충학자가 핀을 꽂으려다 핀이 휘는 바람에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날개가 없는 대신 날개덮개를 강화하는 쪽으로 진화한 이 딱정벌레가 어떻게 엄청난 외력에도 잘 견디는지 밝혀졌다. 제수스 리베라 미국 캘리포니아대 재료공학자 등은 22일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이런 강인함은 두 개의 철갑 같은 겉날개 사이의 봉합선이 맞물리는 독특한 방식 때문”이라고 밝혔다.

be2.jpg » 딱정벌레의 단층촬영 모습. 두 겉날개의 봉합선이 그림 조각 맞추기 형태로 맞물려 있다. 데이비드 키사일러스 제공.

연구에 참여한 파블로 자바티에리 미국 퍼듀대 토목공학 교수는 “봉합선은 마치 그림 조각 맞추기처럼 복잡하게 맞물리는 형태여서 등의 겉날개부터 배의 키틴질 껍데기까지 다양한 외부골격과 연결돼 하중 에너지를 분산한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또 봉합선은 여러 개의 얇은 층으로 이뤄져 외부에서 힘을 가해도 부드럽게 층이 변형될 뿐 외골격이 일시에 무너지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딱정벌레가 견디는 최대 하중은 체중의 3만9000배인 150뉴턴으로 측정됐다. 비포장도로에서 타이어의 하중이 100뉴턴임에 비춰 자동차가 깔고 지나가도 끄떡없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악마 철갑 딱정벌레는 7∼8년을 산다. 몇 주일 동안을 사는 다른 딱정벌레에 견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철갑구조를 갖추는 데 큰 투자를 한 셈이다.

연구자들은 이번 연구결과가 항공기 가스터빈 같은 강하면서도 유연한 물성이 필요한 재료 개발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했다. 항공기 가스터빈에는 금속과 복합물질을 기계적 잠금장치로 연결하는데 이 장치가 스트레스를 가해 금이 가거나 부식하는 문제가 제기돼 왔다.

연구자들은 실제로 잠금장치 대신 금속과 복합물질을 철갑 딱정벌레의 봉합선처럼 연결했더니 기존의 장치보다 더 강인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용 논문: Nature, DOI: 10.1038/s41586-020-2813-8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기꺼이 비행을 포기한 새들에게 인류는 재앙이었다기꺼이 비행을 포기한 새들에게 인류는 재앙이었다

    조홍섭 | 2020. 12. 03

    인류가 날지 못하는 새 166종 멸종시켜…천적 없는 대양 섬 뛰어난 적응이 비극 불러멸종의 상징인 도도는 인도양 모리셔스 섬에 살던 대형 비둘기였다. 1000년 전 멸종한 마다가스카르 섬의 코끼리새는 몸무게 500㎏에 알 무게만 10㎏인 인간이 ...

  • 새들도 하는 민주주의…우두머리 독재 다수결로 누른다새들도 하는 민주주의…우두머리 독재 다수결로 누른다

    조홍섭 | 2020. 12. 02

    아프리카 호로새 지배층이 먹이 독차지하면 다수가 이동해 굴복시켜동물은 강자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산다고 흔히 알고 있지만 최근 일부 야생동물에서 일종의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 원리가 관철되는 사례가 활발히 연구되고 ...

  • 코끼리의 하루 물 소모량 욕조 2개, 기후변화 취약코끼리의 하루 물 소모량 욕조 2개, 기후변화 취약

    조홍섭 | 2020. 11. 30

    여름엔 하루 400∼500ℓ 체온 냉각 등에 써…주 서식지 건조·온난화 가속건조한 사바나에 사는 아프리카코끼리가 더운 날 하루에 잃는 물의 양은 몸 수분함량의 10%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욕조 2개를 가득 채울 분량으로 육상 동물에서...

  • 야생 호랑이도 백신이 필요해, 개홍역 유일 대책야생 호랑이도 백신이 필요해, 개홍역 유일 대책

    조홍섭 | 2020. 11. 27

    개보다 너구리 등 야생동물이 바이러스 ‘저수지’…정기 포획 조사 때 접종하면 효과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 한국호랑이)의 주요 멸종위협으로 떠오른 개홍역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서는 개가 아닌 야생 호랑이에게 직접 백신을 접종하는 대책이 ...

  • 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2천년 채취한 진귀 한약재, ‘칙칙한’ 애들만 살아남아

    조홍섭 | 2020. 11. 26

    티베트 고산식물 천패모, 채집 심한 곳일수록 눈에 안 띄는 위장 색 진화사람의 자연 이용은 진화의 방향도 바꾼다. 큰 개체 위주로 남획하자 참조기는 살아남기 위해 점점 잘아지고 상아 채취가 계속되자 상아가 없는 코끼리가 늘어난 것은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