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흐르는 바다, 신두리

조홍섭 2008.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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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유출’ 직격탄 피한 천연기념물 사구

빙하기 과거에서 온 해저 모래, 파도 실려 상륙

겨울 석달 바람 타고 1만5천톤 모래언덕 살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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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 예수가 40일 단식을 한 곳, 그리고 무함마드(마호메트)가 태어난 곳은 모두 사막이다. 사막은 메마르고 삭막한 죽음의 땅이 아니라 믿음을 시험받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곳이다.

 

사막의 얼굴은 모래언덕(사구)이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끝없는 물결무늬를 남긴다. 모래는 바람을 타고 흐른다. 흐르던 모래는 돌이나 풀 주변에 모이고, 장애물을 만나지 못한 모래는 힘을 잃을 때까지 언덕을 기어오른다. 올라갈 땐 완만하다 꼭대기에서 급경사로 떨어지는 기다란 능선의 모래언덕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바다, 바람, 모래, 동·식물이 빚어내는 역동적 상호관계 생생

 

이런 사막경관을 보기 위해 아프리카의 사하라사막이나 미국의 데스밸리, 또는 중국 고비사막까지 갈 필요는 없다.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에도 사막이 있다. 천연기념물 431호인 신두리 해안사구는 길이 3.4㎞, 폭 200m~1.3㎞로 해변을 따라 기다랗게 펼쳐져 있는 국내 최대 규모 사구이다. 건조지역의 내륙사구에 비해 규모는 작을지라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바다, 바람, 모래, 동·식물이 빚어내는 역동적 상호관계가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 9일 신두리를 찾았을 때 해안은 깨끗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곳이 신두리 해변이다. 원유는 북서풍을 타고 정면으로 해안을 덮쳤다. 다행히 원유는 해변 모래에만 상륙했을 뿐 사구에는 도달하지 않았다. 기름찌꺼기를 모두 걷어낸 해변엔 타르볼이 바람에 날려 사구로 옮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그물막이 쳐져 있었다. 그물막 아래에는 작은 모래알갱이 크기의 타르볼이 흩어져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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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만 년 전~1만2천 년 전 동안 쌓여…<폭풍의 언덕> 연출

 

겨울은 해안사구가 몸을 불리는 기간이다. 신두리 앞바다 바닥은 완만해서 파도는 일찌감치 부서지면서 바닥의 모래를 해변으로 실어 나른다. 태안 앞바다 해저에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있어 모래 공급원이 된다. 큰 강이 없는 충남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23개의 사구를 형성할 만큼 많은 모래는 어디서 왔을까. 강대균 박사가 대한지리학회지에 낸 논문을 보면, 빙하기와 간빙기가 되풀이되던 플라이스토세(180만 년 전~1만2천 년 전) 동안 쌓였던 옛 사구가 이 지역 붉은 모래의 원천이다. 신두리의 모래는 강이 아니라 빙하기 과거에서 온 것이다.

 

북서쪽을 향하고 있는 신두리 해변은 겨우내 북서계절풍에 시달린다. 신두리 사구가 브론테 자매가 쓴 <폭풍의 언덕>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썰물 때 드러난 모래알갱이는 바람에 날려 내륙으로 옮겨진다. 해변 가까이엔 ‘전 사구’라 불리는 갓 만들어진 모래언덕이 있다.

 

여름 태풍의 ‘도적질’ 예비…수천년 동안 모래해변 파수꾼

 

갯그령 같은 사초과 식물들이 누렇게 시든 채 바람을 맞고 있었다. 이들은 바람속 모래를 잡아두는 구실을 한다. 쉬지 않고 불어대는 바람은 모래를 내륙 쪽으로 끊임없이 실어 나른다. 내년 여름 태풍이 몰아쳐 모래를 빼앗아 가기 전에 미리 비축해 두는 것이다.

 

사구는 폭풍으로부터 모래해변을 지키는 구실을 수천 년 동안 성공적으로 해 왔다. 사구를 단지 모래자원으로 간주해 퍼내고 펜션을 지어 개발한 뒤 콘크리트 방파제로 해안을 막으려던 시도는 모조리 실패로 돌아갔다. 오로지 살아있는 방파제, 움직이는 모래언덕만이 해안을 지켜왔음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서종철 대구가톨릭대 교수가 계산한 바로는 신두리에서 11월부터 2월 사이 바람이 이동시키는 모래의 양은 1만5천여t에 이른다. 해안 1m당 11.75t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세계 다른 해안사구와 비교해도 매우 많은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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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도 지켜…모래 위에 고인 호수, 가뭄 안 타

 

모래의 이동이 멈춘 사구는 죽은 사구이다. 땅속 깊이 뿌리를 박은 갯가식물은 모래를 멈추게 한다. 그 위에 식물이 자랄 수 없을 만큼 모래가 쌓인다면 모래는 이동을 계속하지만 그렇지 못하면 모래밭은 녹지로 바뀐다. 식물과 모래의 밀고 당기는 오랜 싸움에 사람이 개입하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사구 주변에 방풍림으로 곰솔과 강인한 아까시나무를 심으면서 모래땅이 급속하게 줄고 있는 것이다. 서종철 교수가 항공사진을 비교해본 결과 녹지로 덮이지 않은 모래땅의 면적은 1967년 사구의 33%이던 것이 1998년 2%로 줄었다. 그 만큼 사구의 역동성은 약해진 셈이다.

 

사구는 험한 바다로부터 해안뿐 아니라 지하수도 지킨다. 모래층엔 빈틈이 많다. 비가 오면 그 틈에 담수가 채워진다. 사구는 지하수 층을 간직해 바닷물의 침투를 막는다. 오래 전부터 주민들은 사구에서 물 부족한 줄 몰랐다. 하종수 태안해안국립공원사무소 보전팀장은 “해안사구가 1㎝ 낮아지면 지하수위가 7㎝ 떨어진다”며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오랜 경험에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신두리 사구 안에는 독특한 호수가 있다. 환경부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두웅습지가 그것이다. 수면면적이 150X90m밖에 안 되는 이 호수는 모래 위에 고인 물이다. 물이 모래바닥으로 스며나가지 않는 까닭은 바로 지하수다. 바닷물과 지하수 층이 땅속에서 맞서 있어 아무리 가물어도 호수 물은 줄지 않는다. 이곳에는 이동성이 적어 오래 보존된 습지에만 사는 희귀한 금개구리가 서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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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밟기만 해도 사구 환경 민감…방제작업 후유증 어떨지

 

사구는 생물이 살기엔 환경이 매우 거칠다. 강한 바람, 자외선이 센 햇빛, 소금기, 물 부족, 끊임없이 변하는 지형 등을 버텨내는 생물만이 살 수 있다.

 

강인한 생명력의 수송나물과 좀명아주가 바다와 가까운 최전방에 자리 잡는다. 전 사구에는 갯그령과 통보리사초, 좀보리사초 등이 깊고 넓은 뿌리 망으로 버틴다. 안정된 2차 사구에 가면 갯완두, 갯방풍, 갯잔디가 있고, 이보다 안쪽에는 5월 화려한 꽃을 피우는 해당화, 갯메꽃, 갯쇠보리, 오리새 등이 나타난다. 그 밖엔 띠, 억새, 사철쑥이 자라고 가장 바깥엔 인공으로 조성한 곰솔 숲이 병풍처럼 둘러싼다.

 

이런 식물들을 토대로 표범장지뱀, 큰조롱박먼지벌레. 개미지옥, 날개날도래 같은 동물들이 이곳에 서식한다. 희귀한 뿔쇠똥구리는 주민들의 방목을 금지시킨 바람에 쇠똥이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쉬지 않고 옮겨 다니는 모래가 생태계의 변천을 좌우하는 사구는 환경변화에 아주 예민하다. 방파제나 건물은 말할 것도 없고 자동차나 사람이 밟고 다녀도 모래의 이동에 차질을 빚는다. 최종관 국립공원연구원 해양생태계회복추진팀장은 “신두리 해안의 기름방제 작업을 하면서 모래사장을 걷어낸 것이 장기적으로 사구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태안/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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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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