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해협에 신호등을 만들어야 하나

조홍섭 2008.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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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비명횡사 잦은 고래


연 13만 척 오가는 뱃길이자 고래 주요 이동통로
숨차 잠시 나왔다가 꽝, 자다가 꽝, 느림보라 꽝

 

 

Untitled-8 copy.jpg고래 포획이 허용되던 1985년까지 해마다 3월이 오면 포경선들은 부산과 대마도 사이 대한해협으로 몰려들었다. 동중국해에서 겨울을 나고 동해로 이동하는 밍크고래를 잡기 위해서였다.

 

이 좁은 수역은 밍크고래뿐 아니라 귀신고래, 참고래, 향고래, 혹등고래 등 대형 고래와 상괭이, 참돌고래 등 소형 고래들의 주요 이동통로이다. 동해에 사는 어떤 고래든 대한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것은 없다.

 

동시에 이곳은 연간 13만 척이 넘는 크고 작은 배들이 부산항을 드나드는 해상교통 중심지이기도 하다. 특히 부산과 일본 후쿠오카를 오가는 쾌속여객선은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승객을 실어 나른다. 수중부양선인 이 배들은 선체를 들어 올린 뒤 수중익으로 시속 80㎞에 가까운 속도로 나는 듯 바다를 가른다.

 

대한해협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고래와 선박의 충돌현장이 되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지난달 17일 하이제트호가 밍크고래와 충돌해 선박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 것을 비롯해 2004년 이후 고래로 추정되는 물체와 쾌속선이 충돌하는 사고가 9건이나 발생했다.


잠수의 ‘달인’…수심 3000m 깊이까지 들어가 먹이사냥

 

Untitled-10 copy.jpg흔히 잦은 충돌사고의 원인으로 포경 금지 이후 늘어난 고래를 꼽는다. 고래 탓이란 얘기다. 그런 측면이 없는 건 아니지만, 고래에게도 사정이 있다.

 

고래는 잠수의 선수다. 향고래는 심해의 대왕오징어를 쫓아 수심 3천m 깊이까지 들어간다. 길게는 80분 동안 호흡을 멈출 수 있다. 향고래가 아니라도 부리고래 등 심해에서 먹이를 찾는 고래들은 수백m 이상 깊은 바다에서 1시간까지 머물며 먹이를 찾는다.

 

소형 고래라도 150~600m까지 잠수를 하며 5~40분 동안 숨을 멈출 수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호흡을 멈출 수 있는 것은 허파의 산소교환 효율이 육상동물은 기껏 15%인데 비해 고래는 90%에 이르는데다, 들이마신 공기 속 산소를 다 써버리면 근육 속의 산소 저장체인 미오글로빈에서 산소를 끌어 쓰기 때문이다.

 

고래의 잠수행동은 독특하다. 수면 근처에서 호흡을 고르다가 물속 깊이 들어가는데, 잠수에도 깊고 얕은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얕은 잠수로, 약 30m 되는 깊이에서 3~4분 머물다가 나온 뒤 다시 비슷한 잠수를 되풀이하는 방식이다. 다른 하나는 아예 600m쯤 깊이 잠수한 뒤 17~18분 지나서 수면에 올라오는 깊은 잠수이다.

 

고래에게 행동 고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법

 

중요한 건 고래가 바다표면에 늘 떠 있다가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아 잠수를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위험한 물 밖에는 숨이 턱에 차 더는 참을 수 없을 때 나온다. 허파와 근육조직의 산소까지 모두 써 버려 고갈된 상태가 돼야 수면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따라서 선박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챘다고 해도 호흡을 위해 수면으로 올라오는 급박한 행동을 멈추기는 어렵다.

 

김장근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장은 “잠수와 호흡행동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형성돼 우리가 호흡을 하듯 무의식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래에게 이런 행동을 고치라고 요구할 수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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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사정은 속도이다. 큰 고래는 느릿느릿 유영한다. 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귀신고래, 향고래는 시속 6.5~8㎞의 속도로 헤엄친다. 순간적으로 질주하더라도 긴수염고래가 시속 13㎞, 혹등고래 16㎞, 향고래 25.7㎞ 정도밖에 속도를 올리지 못한다.

 

좀 더 날씬한 고래들은 이들보다 빨라, 밍크고래를 비롯해 참고래, 대왕고래는 시속 16~19.2㎞로 유영하고 급하게 내달릴 때는 30㎞까지 속도를 높일 수 있다.

 

이에 비해 쾌속여객선은 보통 시속 80㎞(43노트)의 속력으로 운항한다. 동작이 민첩한 밍크고래보다도 4배 이상 빠른 속력이다. 배가 다가오는 것을 눈치챘다 해도 반사행동을 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고래는 일반적으로 소리에 아주 민감하지만 일부 고래는 수면에서 세상 모르게 자는 버릇이 있다. 향고래, 혹등고래, 긴수염고래가 잠을 자다 배와 부딪힌 예가 많다.

 

북대서양 긴수염고래 사망원인의 35.5%는 선박과 충돌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긴수염고래의 생존을 위협하는 최대요인은 바로 선박이다. 그렇다고 유영속도가 느리고 표층에서 헤엄치는 시간이 긴데다 선박이 다가와도 잘 도망치려 하지 않는 이 고래의 느긋한 행동만 탓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이 고래가 나타나는 해역에서 선박 속도를 시속 22.2㎞(12노트) 이하로 늦추도록 권고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선박 속도 시속 22.2km이하로 늦추도록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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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는 14일 고래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부산과 대마도 중간해역에서 한일 쾌속여객선의 운항속도를35노트(시속 64.8㎞)로 늦추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승객들은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도록 하는 한편 고래 출현에 관한 한일 간의 정보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쾌속선의 속력을 이 정도 늦춘다고 고래와의 충돌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박병곤 해수부 해사안전정책팀 사무관은 “늦춘 속도는 쾌속선이 부양 운항할 수 있는 최저속력”이라며 “이 정도 늦춰도 고래 탐지능력은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결국 제대로 된 충돌예방은 일본 가와사키 중공업이 오는 5월 시제품을 내놓을 예정인 액티브 소너가 탑재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이 장치는 전방으로 음파를 쏘아 수중부유물을 미리 탐지해 항로를 바꾸도록 해 준다.

 

대한해협의 쾌속여객선 항로에서 자주 발견되는 고래는 밍크고래, 참돌고래, 상괭이 등이다. 그러나 김장근 박사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래 30여종 대부분이 이곳을 봄·가을로 지나다니고 특히 전 세계에 130여 마리밖에 없는 한국계 귀신고래에게 선박은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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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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