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 기후변화 시한폭탄 째깍째깍

조홍섭 2009. 10. 14
조회수 39183 추천수 0
  
   통토 녹아 나무 기우뚱…호수 하룻밤 새 사라져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등 온실가스 대거 방출
 

m1.jpg “우리는 이걸 ‘술 취한 나무’라고 부릅니다.”
 활을 당겨놓은 것처럼 허리가 휜 검은가문비나무를 가리키며 블라디미르 로마노프스키 미국 알래스카 대학 페어뱅크스 캠퍼스 교수가 말했다. 영구동토가 녹아 지반이 무너지면서 기울어진 나무가 시간이 지나면서 비스듬히 자세를 잡은 모습을 가리킨 것이다.
 세계적 동토 전문가인 로마노프 교수가 지난 8일 캠퍼스 안의 영구동토가 녹고 있는 현장을 안내했다. 숲에는 희고 매끈한 줄기의 자작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나무가 기울거나 사람 키 깊이로 움푹 패인 곳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1935년 이곳은 검은가문비나무 숲이었다. 당시 대학은 농업연구를 위해 가문비나무를 베어내고 감자밭을 일구었다. 평평하고 깔끔하던 감자밭은 5년쯤 지나자 폭격 맞은 듯 움푹움푹 패인 못쓰는 땅으로 바뀌었다. 당황한 대학 당국은 불도저를 동원해 땅을 갈았지만 몇 년 뒤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동토가 녹으면 어떤 일이 빚어지는지를 70년 전에 실험한 셈”이라고 로마노프스키 교수가 말했다.
 
 풍치 들린 이처럼 흔들흔들…1440㎞ 송유관도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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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에서 좀 떨어진 가문비나무숲에서 연구팀은 지난 1997년부터 처음 측정을 할 때만 동토가 녹는 조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여름철 땅을 70㎝ 파면 영구동토층이 나왔지만 현재 그 깊이는 땅속 150㎝까지 내려갔다.
 1월 평균기온이 영하 35도까지 떨어진 적이 있는, 알래스카 내륙 한가운데 위치한 페어뱅크스 시이지만 최근 땅속을 든든하게 지탱해 주던 동토가 여기저기서 녹으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도로와 활주로가 갈라지고 가로수가 기우는가 하면, 동토연구로 유명한 알래스카 대 지구물리학연구소 주차장에 거대한 함몰이 일어나기도 했다.
 알래스카 주 정부는 동토가 녹아 주저 앉고 갈라진 도로를 보수하는 데만 해마다 100억 원 이상을 쓰고 있지만 여기에만 매달리 수도 없는 형편이다. 2005년엔 인디언 원주민의 식수원인 크위길링곡 호수가 하루 밤새 사라진 사건도 일어났다. 호수바닥의 동토가 녹으면서 욕조의 물을 뺀 것 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재키 포스톤 알래스카 주 정부 기후변화전략 조정관은 “알래스카 원주민 마을의 84%인 184곳이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침식 영향을 받고 있고, 정도가 심한 알래스카 서부의 쉬쉬마레프, 뉴톡, 키발리나 등 3개 마을은 집단이주를 추진하고 있는데 비용이 4억 5천만 달러가 들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알래스카를 남북으로 횡단하는 1440㎞의 송유관도 점점 취약해지고 있다. 1977년 완공할 때 영하 60도의 혹한과 지진에 대비했지만 영구동토가 풍치 들린 이처럼 흔들릴 것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알래스카 송유관의 75%는 동토를 지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2~3배로 높아져 엄청난 재앙 예고
 
m3.jpg 동토의 해빙은 알래스카나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토가 녹으면서 막대한 양의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 등 온실가스가 대기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이미 알래스카와 시베리아의 호수 바닥에선 동토가 녹으면서 메탄가스가 부글거리며 솟아나오고 있다.
 로마노프스키 박사는 “극지방 동토에 묶여있던 탄소가 모두 대기로 방출되면 지구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현재의 2~3배로 높아져 엄청난 기후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동토의 해빙이 아직 일부 지역의 현상이지만 시나리오에 따라서는 2100년까지 알래스카의 남쪽 절반가량에서 지표 2m 이내의 동토가 모두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동토는 한순간에 녹는 것이 아니다. 두께 3~5m의 동토가 녹으려면 100년쯤 걸리는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로마노프스키의 연구를 보면, 페어뱅크스 동토의 온도는 1960년대부터 상승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엔 빙점에 거의 육박했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점점 잦아지고 강해지고 있는 산불도 동토의 해빙을 재촉하고 있다. 또 동토를 덮고 있는 토탄층엔 막대한 탄소가 들어있어 산불과 함께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방출되고 있다.
 알래스카 대 페어뱅크스 캠퍼스와 미국 산림청이 공동으로 22년째 기후변화에 관한 장기생태연구를 하고 있는 보난자 크리크의 한대림은 동토와 산불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삐죽삐죽한 가문비나무가 끝없이 펼쳐진 숲 밑바닥에는 연 강수량이 거의 사막 수준인 250㎜밖에 되지 않는데도 울퉁불퉁한 사초 사이로 물이 고여 있는 한대림 습지가 펼쳐져 있다. 땅밑의 영구동토가 습기를 차단해 생긴 독특한 지형이다. 바닥에는 순록의 먹이인 지의류와 크램베리, 월귤 등의 식물이 자란다.
 
 ▶산불 강도 강해지면서 빙하기 이래 한번도 보지 못한 경관 연출
 
125542646482_20091014.jpg지난 9일 보난자 크리크에서 산불이 나지 않은 곳의 영구동토층을 직접 확인했다. 연구현장 관리자인 제이미 홀링스워드가 시추봉을 찔러넣자 약 50㎝ 깊이에서 딱딱한 동토층에 닿았다. 습지를 덮은 사초와 토탄층을 차례로 벗겨내자 흙으로 만든 아이스크림 같은 동토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점토를 물로 헹궈내자 투명한 얼음이 나타났다. 홀링스워드는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때인 약 1만 년 전에 형성된 얼음”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004년 대규모 산불이 일어난 곳에서는 검게 탄 가문비나무 아래에 토탄층이 타버려 푹신한 느낌이 없었다. 영구동토층은 지하 1m에 있었다. 동토층의 깊이가 화재 전보다 2배는 깊어진 것이다.
 기후변화는 알래스카의 경관을 바꿔놓고 있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검은가문비나무이다. 70년을 자라야 어른 손목 굵기 정도로밖에 자라지 않지만, 산불에 적응하면서 지난 빙하기 이래 알래스카 한대림의 주요 수종이 됐다. 오히려 산불이 나야 나무꼭대기의 솔방울이 열려 씨앗을 방출해 번식이 가능하다. 그러나 최근 산불의 강도가 강해지면서 가문비나무는 솔방울부터 뿌리까지 모두 타버리고 있다.
 보난자 크리크에서 생태변화를 연구하고 있는 미국 산림청의 테레사 홀링스워드는 “달라진 산불양상이 빙하기 이래 한번도 보지 못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원 알래스카 대 국제북극권연구센터 교수는 “북극 동토의 해빙은 느리지만 치명적인 기후변화의 시한폭탄”이라며 “한국도 극지 기후변화에 관한 기초연구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페어뱅크스(알래스카)/글·사진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영구동토란?
 한여름에도 녹지 않고 2년 이상 얼어있는 지하의 토양을 가리킨다. 점토가 얼어있는 형태를 띤다. 알래스카를 비롯해 캐나다 북부, 시베리아, 알프스와 티베트 고지대 등에 분포한다. 동토 위에는 여름 동안 녹아 식물이 자랄 수 있는 ‘활동층’이 덮여 있다.
 지표면에 가까운 동토는 지난 빙하기 때 얼어붙은 유기물이다. 따라서 동토가 녹으면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가 발생하는데, 시베리아 동토에 묻힌 메탄의 양만도 500억t으로 대기 속 메탄의 10배에 해당한다. 동토에는 해저에서와 마찬가지로 메탄이 물과 함께 언 형태인 메탄하이드레이트(메탄수화물)가 들어있기도 한다.
 동토의 깊이는 알래스카 페어뱅크스에서 50m(수m~150m) 정도이며 알래스카 북극 근처에선 온도가 영하 9~11도인 동토가 650m 두께로 깔려있다. 지열이 약한 시베리아에선 그 깊이가 1400m에 이르기도 한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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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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