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건설이 기후변화 대안 될 수 있나

조홍섭 2009. 02. 26
조회수 13582 추천수 0
반핵에서 옹호로 ‘커밍아웃’하는 환경가 늘어
‘야누스의 얼굴’ 원자력 어떤 모습이 진짜일까

 
 
Untitled-1 copy.jpg


제임스 러브록은 2006년 발간한 <가이아의 복수>에서 지구의 생명체계를 유지하는 가상의 조절자인 ‘가이아’가 지구온난화 때문에 붕괴할 위기에 놓였다고 경고했다. 그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대안으로 원자력발전소(원전)를 더 많이 건설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더욱 화제를 불렀다.
 
영국 환경운동가들 블로그에서 치열한 찬반 논쟁
 
기후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한때 원자력을 일삼아 반대하던 환경론자들이 원자력 옹호로 변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대부분 ‘지구온난화가 워낙 급하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원자력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으로 ‘친 원전’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1970~1980년대를 통해 굳어진‘환경=반 원전’이라는 등식이 깨어지는 충격파는 만만치 않다.
 
영국에서 최근 이런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방출량을 1990년 대비 80% 줄여야 하는데, 원전을 새로 지을 것인지가 현안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먼저 포문을 연 사람은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메리크 갓하븐으로 저명한 기후변화 작가인 마크 라이너스를 겨냥했다. 국내에도 <6도의 악몽>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등 기후변화의 급박한 위험을 경고하는 책이 번역 출간돼 있는 라이너스는 이미 2005년부터 핵 에너지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음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갓하븐은 자신의 블로그(http://bristlingbadger.blogspot.com/2009/01/nuke-mark-lynas.html)에 지난 19일 올린 글에서 라이너스는 물론이고 일간 <가디언>의 진보적 환경칼럼니스트인 조지 몬비오를 싸잡아 비판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라이너스와 몬비오는 장문의 댓글을 주고받으며 치열한 논전을 펼쳤다. 몬비오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 논쟁을 해명하는 글 ‘원자력이 선택지가 아니라는 조건반사식 거부’(http://www.monbiot.com/archives/2009/02/20/nuked-by-friend-and-foe/)를 올려놓았다.
 
상대의 주장을 링크된 자료를 인용하면서 하나하나 논박하는, 치열하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은 이 논쟁은 지적 논쟁을 지켜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그동안 찬핵과 반핵진영 사이의 평행선을 그리는 논쟁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이다.
 
 
Untitled-3 copy.jpg

갓하븐은 라이너스가 “재생에너지와 에너지효율로 완전한 청정에너지 체제로 가기까지 시간을 벌어줄 대안”으로 원자력을 꼽은 데 대해 “막대한 투자를 한 원전이 다리 구실만 하고 폐쇄될 것으로 믿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수명을 다한 원전은 수명연장을 거쳐 오랜 세월 동안 엄청난 투자를 삼키면서 대량의 핵폐기물을 쏟아내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몬비오도 작년부터 원자력을 기후변화 해결책에 넣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며 이들이 “조건이 맞지 않으면 반대’에서 ‘조건이 맞으면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라이너스가 “중국처럼 석탄 외에는 대량으로 전기를 생산할 대안이 없는 나라는 원자력을 할 이유가 있지만 ‘바람의 사우디아라비아’인 영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해놓고선 다른 글에서는 “영국 해안과 언덕, 양지바른 지붕에 풍차와 태양전지판을 모두 깔아도 현재의 에너지 소비를 대지 못한다. 많은 환경운동가들이 즐겨 단언하듯 영국은 ‘풍력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수 없다”고 한 입으로 다른 소리를 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현재 활용할 대안이 있는데도 몇 십년 뒤에 이뤄질지도 불확실한 4세대 원전 등 신기술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붇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며 “그 바람에 재생에너지 등 훨씬 일찍 본궤도에 오를 기술 개발에 들어갈 돈이 사라진다”고 주장했다. 또 “원전 용량을 두 배로 늘려도 탄소방출의 8%를 줄일 뿐”이라는 지속가능위원회의 연구결과를 들어, 전기 형태로만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원자력의 한계를 강조했다.
 
원전은 지구온난화 대처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
 
몬비오는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해명성 칼럼에서 “원자력에 대한 입장이 바뀐 것은 사실”이라고 떨어놓고 “다가오는 기후변화에 비하면 원자력은 덜 위협적”이라고 밝혔다.
 
그는 원자력에 더는 반대하지 않을 조건으로 △우라늄 채광에서 원전 폐기까지 전 과정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고려할 것 △핵폐기물의 처분 장소와 방법이 마련될 것 △핵폐기 비용과 책임을 분명히 할 것 △핵물질이 군사용으로 전용되지 못하도록 법적으로 보장할 것 등을 꼽았다.
 
몬비오는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릴수록 전력망의 비용이 늘어나고 관리가 힘들어진다는 점과 독일이 원전을 포기하는 빈 자리를 재생에너지가 아닌 석탄화력이 차지할 것이란 사실을 들면서, “더 빠르고 싼” 대안으로 원자력 선택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갓하븐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원자력과 재생에너지가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며 “원자력은 현재의 에너지 소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원자력을 선택지에서 없애지 않는다면 재생에너지를 얻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자력이 있는 한 재생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는 분산형 전원공급망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원자력이 기후변화보다 더 큰 위협이란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원자력과 기후변화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갓하븐으로부터 집중공격을 받은 라이너스도 댓글에서 “원자력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지 못해 온 것을 충분히 인정한다”면서 원자력을 잘 몰랐고 기후변화가 급박해져서 그랬다고 해명했다.
 
Untitled-2 copy.jpg

그는 체르노빌 사고가 난 지역을 예로 들면서 “사람의 출입이 금지됐지만 야생동물의 천국으로 바뀐 데서 최악의 핵사고가 나더라도 생물권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조력발전,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도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은 원전보다 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갓하븐은 체르노빌에서 인간뿐 아니라 여러 생물이 돌연변이를 겪고 있고, 그보다 심각한 사고가 날 수도 있으며, 핵폐기물로 인한 위협이 미래세대에까지 미친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원자력을 가질래 기후변화를 당할래’라고 물었을 때 누가 후자를 택하겠냐”며 “분명한 것은 원자력이 최후의 선택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편 영국의 일간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은 23일치 기사에서 반핵운동을 해 온 중량급 환경운동가들이 공개적으로 원자력 지지를 밝히는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엔 그린피스 영국 지부장을 맡았던 스티픈 틴데일, 환경기구 의장인 크리스 스미스 경, 녹색당 활동가인 크리스 구달, 그리고 마크 라이너스가 포함돼 있다.
 
틴데일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반핵은 환경운동가들에게 오랫동안 본질적 부분이었다”며 자신의 변신을  종교를 바꾸는 것에 비유했다.
 
라이너스는 “환경운동가에게 (핵을 지지하는 것은) 부모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것처럼 거부당할까 두려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토니 쥬니퍼 영국 ‘지구의 벗’ 전 사무총장은 이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재생에너지와 함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더 청정한 차를 타고, 교통량을 줄이고, 건물에 마이크로 동력 체계를 도입하며, 화석연료 발전의 효율을 높이고 청정하게 하는 것이 원자력보다 나은 패키지”라며 여기에 전반적인 소비를 줄이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우리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을 최대 10기 새로 지어 원전 발전비중을 59%까지 올리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그러나 기후변화 대응에서 원자력이 어느 비중을 차지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거의 없는 형편이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태그 :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한국인에는 비만과 당뇨 막는 ‘쌀밥 유전자’ 있다

    조홍섭 | 2020. 10. 19

    인도보다 3천년 앞서 쌀 재배, 고혈당 막는 유전적 적응 일어나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은 오랜 벼농사 덕분에 고탄수화물 식사로 인한 비만과 당뇨병 등의 부작용을 막는 유전적 적응을 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오랜 목축 역사가 있는 유럽 ...

  • 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냄새로 코로나 검사, 개 활용 연구 활발

    조홍섭 | 2020. 10. 16

    헬싱키 공항 현장 배치…80∼90% 정확도 감염자 실시간 찾아요양원 식구들이 아침마다 돌아가며 개와 아침 인사를 나누는 것만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사람보다 10만배나 뛰어난 개의 후각을 이...

  • 모기, 물리긴 해야는데 물릴 순 없어서…인공 피부 개발모기, 물리긴 해야는데 물릴 순 없어서…인공 피부 개발

    조홍섭 | 2020. 10. 15

    따뜻하고 탄력 있는 피부에 인공혈액도질병 감염 모기에 물리는 실험도 가능가을 모기가 기승을 부리지만 단잠을 방해할 뿐이다. 해마다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등 세계적 감염병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의 사정은 훨씬 심각하다. ...

  • 국내 최대 남생이 서식지 발견 2년 만에 망가져국내 최대 남생이 서식지 발견 2년 만에 망가져

    조홍섭 | 2020. 10. 14

    경주 천군동 저수지, 토목공사하며 물 빼…“한 마리도 못 봐”멸종위기 토종 거북으로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남생이의 집단 서식지가 알려진 지 1년도 못 돼 완전히 망가져 남생이가 자취를 감췄다.구교성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연구원은 3월과 9월 ...

  • ‘코모도 용' 왕도마뱀이 희귀 앵무 지킨다‘코모도 용' 왕도마뱀이 희귀 앵무 지킨다

    조홍섭 | 2020. 10. 13

    쏠쏠한 관광수입으로 공원관리 철저, 밀렵 차단…코로나19 이후 어떻게?인도네시아 코모도 섬 등에 사는 코모도왕도마뱀은 사람까지 습격하는 세계 최대 도마뱀으로 유명하다. 뜻밖에도 이 무시무시한 도마뱀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앵무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