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통로 세계 4번째지만 절반이 ‘비생태적’

조홍섭 2008.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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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252곳 상당수 동물들 습성과 안맞아 외면
값비싼 새 길보다 터널 수로 등 재활용 효과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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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328호인 하늘다람쥐는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 있는 피막을 날개처럼 펴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글라이더처럼 활공해 이동한다. 그러나 고속도로를 날아 넘으려던 날다람쥐는 종종 도로에 '불시착'해 로드킬의 희생자가 되곤 한다. 도로변에 높은 나무가 없어 비행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88고속도로에서 해마다 이렇게 죽는 하늘다람쥐는 5마리 정도다.

 

한국도로공사는 지난해 국립환경과학원의 제안을 받아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둥형 생태통로를 88고속도로 길 양쪽에 설치했다. 실험은 성공적이었다. 설치한 기둥을 타고 도로를 건너는 하늘다람쥐가 확인된 것이다.

 

못쓰는 가로등에 마닐라 삼 밧줄을 감은 이 재활용품 기둥 8개를 설치하는 비용은 500만원이었다. 다양한 동물이 이동하는 용도이긴 해도, 육교형 생태통로 하나를 설치하는 데 10억~20억원이 드는 것과 비교하면 아주 저렴한 비용이다. 동물의 눈높이에 맞는 생태통로가 왜 필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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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교형 하나에 10억~20억원…동물마다 좋아하는 길 달라

 

동물이 안전하게 도로를 건너도록 하는 시설인 생태통로 설치가 유행이다. 우리나라는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생태통로가 4번째로 많은 나라이다.

 

그러나 국립환경과학원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전국 252곳에 이르는 생태통로 가운데 제 구실을 하는 것은 절반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환경부에 등록된 69곳을 표본 조사했더니 생태통로는 49곳이었고 9곳엔 유도펜스만 있었으며 11곳엔 아예 아무것도 없었다. 동물의 흔적은 23곳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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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상당수 생태통로가 동물들의 습성에 맞지 않아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부가 설치한 첫 지리산 시암재의 생태통로는 상자형 터널 형태이다. 이 터널 들머리에서 안을 들여다보면 건너편 옹벽에 가로막혀 안이 캄캄하다. 녹지훼손을 줄이느라 통로 끝과 옹벽이 너무 가까워 생긴 일이다. 초식동물은 어떤 천적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이런 터널에 들어가길 꺼린다.

 

이번 조사에서 고라니, 멧토끼, 멧돼지 등이 주로 육교형 통로를 이용할 뿐 지하통로로는 거의 이동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난 이유이다. 연구진은 지하통로가 건너편이 훤히 보일 정도의 개방도(입구 면적과 통로 길이의 비율)가 0.7 이상이 돼야 고라니 등이 이용한다고 밝혔다.

 

반대로 쥐나 족제비 등은 통로가 좁을수록 안정감을 느껴 즐겨 이동하는 경향이 있다.

흥미로운 건, 경남 창녕군이 창녕향교 뒷산에 풍수지리상 땅의 기를 잇기 위해 도로 위에 설치한 구조물이 훌륭한 생태통로가 됐다는 사실이다. 이 통로에서는 고라니, 너구리 등 이 산에 서식하는 모든 동물이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토목공사 차원에서 지은 생태통로가 야생동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전통생태학적 사고에 토대를 둔 풍수지리의 힘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동특성을 연구해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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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환경과학원은 생태통로를 새로 짓기보다 기존의 시설을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이미 터널, 수로, 교량 등 생태통로로 활용할 구조물이 도로 133m에 하나 꼴로 있어, 이들을 동물이 다니기 편하도록 개선하고 유도펜스를 설치하는 편이 비용도 줄이고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외국보다 훨씬 촘촘하게 설치된 이런 지하시설물의 들머리를 동물이 접근하기 쉽게 고치고, 물이 고여 있는 수로라면 턱이나 선반을 벽에 설치해 물에 빠지지 않고 이동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비싼 돈을 들여 새 시설을 만들지 않아도 이상적인 동물 이동통로가 된다는 것이다.

 

동물이 도로로 뛰어드는 것을 막고 통로로 이끄는 유도펜스는 적은 비용에 효과가 큰 수단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 적지 않은 펜스가 관리부실로 구멍이 나거나 마무리가 엉성해 빈틈으로 들어온 야생동물이 빠져나가지 못하는 함정 구실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untitled-7_copy_2.jpg고가의 펜스가 남용되는 것도 문제다. 3단방형펜스는 애초 양서·파충류가 많이 다니거나 미관을 중시해야 하는 도로에 설치하는 용도이지만 최근 국도 곳곳에 설치되고 있다. 이 펜스의 설치비는 미국보다 2배 이상 비싼 m당 14만~21만원에 이른다. 연구진은 이런 고가형 펜스는 꼭 필요한 국립공원 등에만 설치하고 저가형을 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환경과학원은 또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최근 시험적으로 설치되고 있는 동물감지장치도 생태통로의 보조수단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출현하는 동물을 적외선 센서로 감지해 전광판에 감속표시를 하는 방식으로 스위스에서는 사슴류의 로드킬을 80% 이상 줄였다.

 

최태영 국립환경과학원 생태복원과 박사(동물생태학)는 "도로를 설계할 때부터 동물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하면 굳이 값비싼 생태통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며 "동물의 이동특성을 연구해 그들의 눈높이에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홍섭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사진제공 국립환경과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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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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