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토끼는 청소동물, 스라소니와 동족 사체 먹어

조홍섭 2019. 01. 15
조회수 8161 추천수 0
먹이 부족한 혹한기 죽은 동물 사체 일상적으로 먹어
평소 천적인 스라소니, 동족 토끼, 뇌조 깃털도 메뉴에

h1.jpg » 눈에 빠지지 않도록 발이 크게 적응한 눈덧신토끼. 먹이가 눈 속에 파묻히는 겨울을 나기 위해 사체를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다람쥐는 도토리를 먹고, 토끼는 풀을 먹고…’ 초식동물에 관한 이런 통념이 깨지고 있다. 다람쥐는 애벌레가 많아지는 봄이 오면 이 영양가 풍부한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초식성 소화기관을 지녔지만 토끼도 예외가 아니다. 먹이가 부족할 때 기회가 닥치면 육식도 마다치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마이클 피어스 캐나다 앨버타대 생태학자 등 연구자들은 북극에 인접한 캐나다 북서부 유콘 준주에서 눈덧신토끼가 다양한 종류의 동물 사체를 먹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과학저널 ‘노스웨스턴 내추럴리스트’ 최근호에 보고했다.

h2.jpg » 무인카메라에 찍힌 눈덧신토끼의 육식 모습. 죽은 뇌조의 깃털을 먹고 있다. 마이클 피어스 외 (2018) ‘노스웨스턴 내츄럴리스트’ 제공.

연구자들은 청소동물의 생태를 연구하기 위해 2015년부터 2년 6개월 동안 이 지역 클라우네 호수 부근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조사했다. 놀랍게도 청소동물 대열에는 초식동물로 알려진 눈덧신토끼가 포함돼 있었다. 연구자들은 “여러 종의 동물 사체를 먹는 일이 눈덧신토끼의 일상적 행동임이 처음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 지역에 동물 사체 161구를 놓고 2∼4m 떨어진 곳에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조사했는데, 토끼는 이 가운데 12.4%인 20구를 먹었다. 토끼의 주요 포식자인 캐나다스라소니와 동족인 토끼 사체도 먹이에 포함됐다. 또 흰멧새, 뇌조, 아비 등 새들의 사체에도 입을 댔다.

h3.jpg » 캐나다스라소니의 주식 눈덧신토끼이지만, 죽은 스라소니는 반대로 토끼의 먹이가 된다. 케이스 윌리엄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동족 토끼 사체에는 1주일 동안 24차례 찾아와 먹었는데, 토끼 한 마리가 이를 독차지하려고 주변에 모인 토끼를 쫓아내는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고 논문은 밝혔다. 

뇌조 사체는 가장 즐겨 찾은 사체였다. 특히 토끼는 이 새의 깃털을 뽑아 먹는 행동을 지속해서 보였다. 한 토끼는 까마귀가 뇌조 사체를 물고간 뒤 남아있는 깃털을 먹었고, 다른 토끼는 스라소니가 먹고 남긴 날개 한 쪽을 눈밭 속에서 파내 물고 갔다. 

연구자들은 토끼가 깃털을 먹는 이유로 논병아리의 예처럼 소화를 촉진하거나 장내 세균 군을 바꾸려는 목적, 또는 단순히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했다.

h4.jpg » 눈덧신토끼가 사체를 가장 즐겨 먹는 것으로 밝혀진 뇌조.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초식동물이 사체를 먹는 것은 사체 주변에 다른 포식자가 모이기 때문에 위험을 자초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최근 종종 보고되고 있다. 이를테면 비버는 연어가 하천 상류에서 번식을 마치고 죽으면 이를 포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초식동물의 사체 청소 이유로 먹이 부족, 꼭 필요한 영양분 섭취, 사체가 풍부한 기회 활용 등을 꼽았다. 따라서 ”눈덧신토끼가 다양한 사체를 먹는 행동도 겨울철 먹이와 영양소 부족을 메꾸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h5.jpg » 혹독한 날씨와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겨울철 극지방 토끼는 동족의 사체 등 먹이를 가리지 않는다. D. 고든, E. 로버트슨,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영하 30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는 유콘 준주의 겨울 동안 토끼는 주로 단백질 함량이 적은 나무껍질 등을 갉아먹으며 연명한다. 조사 결과 풀이 많은 5∼8월 동안은 사체를 먹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h6.jpg » 죽은 동물을 뜯어먹는 눈신토끼. 움직임을 감지하는 무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Michael JL Peers et al, Scavenging By Snowshoe Hares (Lepus americanus) In Yukon, Canada, Northwestern Naturalist, 99(3):232-235.https://doi.org/10.1898/NWN18-05.1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 메일
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메일 : ecothink@hani.co.kr       트위터 : eco_think      

최신글




최근기사 목록

  • 서·남해 갯벌서 푸른곰팡이 96종 발견서·남해 갯벌서 푸른곰팡이 96종 발견

    조홍섭 | 2019. 10. 15

    신종 후보 17종 포함…차세대 항생제 개발, 치즈 생산 등에 활용꼭 90년 전 알렉산더 플레밍은 깜빡 잊고 뚜껑을 덮지 않은 배지에 날아든 푸른곰팡이가 세균 성장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곰팡이에서 생산한 페니실린 덕분에 제2차 세...

  • 청소 새우가 먹히지 않는 비결 있다청소 새우가 먹히지 않는 비결 있다

    조홍섭 | 2019. 10. 10

    포식자 고객에 청소 직전과 중간에 ‘앞다리 춤’으로 신호열대 태평양 산호초에는 큰 물고기의 아가미와 입속을 청소하는 작은 새우가 산다. 송곳니가 삐죽한 곰치 입속을 예쁜줄무늬꼬마새우가 드나들며 기생충을 잡아먹고 죽은 피부조직을 떼어먹는...

  • 배추흰나비는 실크로드 따라 동아시아 왔다배추흰나비는 실크로드 따라 동아시아 왔다

    조홍섭 | 2019. 10. 08

    전 세계 유전자 분석 결과…지중해 기원, 통일신라 때 작물과 함께 와배추흰나비는 세계에서 가장 널리 분포하고 수도 많은 나비의 하나다. 생물 종으로 성공한 나비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농작물 피해를 일으키는 해충이기도 하다.시민 과학...

  • 유령게의 ‘으르렁’ 경고음, 위장 분쇄기관 소리였다유령게의 ‘으르렁’ 경고음, 위장 분쇄기관 소리였다

    조홍섭 | 2019. 10. 07

    먹이 부수는 부위를 발성 기관으로 ‘재활용’, 상대에 경고 신호 전달집이나 먹이를 빼앗으려는 상대에게 유령게는 집게발을 휘두르며 낮고 거친 소리를 낸다. 마치 개가 으르렁거리는 듯한 경고음을 내는 곳은 놀랍게도 먹이를 잘게 부수는 위 앞...

  • 다리 대신 터널…제2순환로 환경파괴 위험 여전다리 대신 터널…제2순환로 환경파괴 위험 여전

    윤순영 | 2019. 10. 02

    육상 구간 논 습지 훼손 불보듯, 저감방안 대책 선행되야 수도권 제2순환고속도로가 한강을 건너는 구간은 애초 계획된 교량 설치 대신 지하터널 형태로 건설될 예정이다. 교량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를 우려한 문화재청이 한강 하류 재두루미 도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