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개미’ 머리 잘라 보관하는 불개미 미스터리

조홍섭 2018. 11. 23
조회수 10489 추천수 1
강력한 턱의 덫개미 개미산으로 제압, 굴속에서 몸통만 먹어
덫개미 표면 왁스층 성분 흉내 내는 ‘화학적 의태’ 진화시켜

a1.jpg » 둥지 속의 플로리다 불개미 일개미가 몸이 잘린 덫개미 사이를 다니고 있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제공.

미국 플로리다에는 이 지역 고유종 불개미(학명: 포르미카 아치볼디 Formica archboldi)가 산다. 짙은 갈색의 평범해 보이는 이 불개미는 꼭 60년 전인 1958년 으스스한 습성이 발견돼 눈길을 끌었다. 둥지 안에는 늘 이 지역에 사는 다른 개미인 덫개미(오돈토마쿠스 속, Odontomachus)의 머리가 잔뜩 들어있었다.

문제는 머리가 잘린 덫개미가 만만한 개미가 아니란 점이다. 전 세계에 분포하는 덫개미는 종마다 형태가 다르긴 하지만 ‘곤충계 악어’란 별명에 걸맞게 길고 날카로운 주둥이를 지녔다. 게다가 주둥이에는 스프링 장치가 달려 1초에 40번 이상 닫을 정도로 빠르고 강력하고, 꽁무니에는 독침도 있다(▶관련 기사: ‘괴물 개미’의 사냥법…용수철 달린 위턱 시속 80㎞로 ‘철컥’).

a2.jpg » 톡토기 등 재빠른 미소 곤충을 사냥하기 위해 턱을 빠르게 닫는 구조로 진화한 덫거미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그 동안 불개미의 미스터리를 설명하는 두 가지 가설이 유력했다. 드물긴 하지만 이 불개미가 덫개미만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전문적 포식자라는 설이 하나이다. 그러나 개미 1만5000여 종 대부분은 기회가 닿으면 무엇이든 먹는 잡식성이어서 특정 종만 포식하는 전문가는 매우 드물다. 다른 가설은, 불개미가 덫개미의 버려진 둥지를 차지했다는 설이다.

이런 오랜 수수께끼를 풀 연구결과가 나왔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자연사박물관 생물학자는 과학저널 ‘사회성 곤충’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괴물 개미’의 머리로 둥지를 ‘장식’하는 기괴한 행동의 비밀을 밝혔다. 그는 불개미가 ‘화학적 의태’를 통해 덫개미를 사냥하며, 보통 방어용으로 쓰는 불개미의 개미산이 유독 덫개미에는 치명적인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실험실에서 두 개미를 기르며 고속촬영한 영상을 보면, 덫개미를 만난 불개미는 배를 내밀어 재빨리 개미산을 분사하는데 이를 맞은 덫개미는 순식간에 온몸이 마비된 듯 꼼짝 못 하게 된다. 불개미는 덫개미를 물고 굴 안에 끌고 들어가 토막 낸다. 몸통만 먹이로 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둥지엔 잘린 머리가 여기저기 남게 된다.

a3.jpg » 톡토기 등 재빠른 미소 곤충을 사냥하기 위해 턱을 빠르게 닫는 구조로 진화한 덫거미의 일종.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플로리다 불개미 둥지 한 곳에서 발견된 곤충의 머리. 가운데가 닻개미 머리이고 주변은 벌 등 다른 곤충의 머리이다. 몸통만 먹고 남은 것으로 보인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제공.
스미스는 “이 연구에서 과학적으로 놀라운 것은 불개미가 먹이 개미를 화학적으로 흉내 낸다는 사실”이라고 이 박물관 보도자료에서 밝혔다. 개미의 몸 바깥에는 큐티클 탄화수소라는 왁스 층이 입혀져 있다. 애초 개미의 몸이 메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출현한 이 왁스 층은 나중에 동료와 외부 개체를 구별하거나 생식 상태를 구분하는 소통수단으로 진화했다. 종마다 이 왁스층의 성분에는 차이가 난다.

놀랍게도 불개미 21개 집단의 큐티클 탄화수소는 모두 그 지역에 사는 덫개미의 것과 일치했다. 덫개미도 왁스층이 특이하게 사는 지역마다 조금씩 달랐지만, 불개미는 이를 흉내 냈다. 스미스는 “이처럼 다양한 화학 신호를 나타내는 개미 종은 처음 봤다”고 말했다.

April Nobile_Formica_archboldi_casent0103921_head_1.jpg » 플로리다 불개미의 머리 모양. 에이프릴 노블,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a4.jpg » 플로리다 불개미가 화학적 흉내를 내 잡아먹는 같은 지역 덫개미의 머리 모양.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흥미로운 사실은, 실험실에서 덫개미와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7달 동안 기른 불개미도 그 지역 덫개미의 왁스층을 보유했고, 외래종 덫개미가 많은 곳에 사는 불개미라도 그 종의 탄화수소 성분은 갖추지 못했다. 스미스는 이런 사실에 비춰 “불개미의 화학적 의태는 잡아먹은 덫개미에서 온 것이 아니라 진화 과정의 산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덫개미의 왁스층을 흉내 내지 못한 불개미는 덫개미 사냥에 실패할까. 스미스는 그런 사실은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실험으로 드러나기엔 왁스층의 화학적 차이가 너무 미묘할지도 모른다. 스미스는 “이번 연구가 화학적 의태와 포식 행동 사이의 직접적 관련을 밝히진 못했지만 이런 화학적 의태가 두 종 사이의 오랜 진화역사에서 생겨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제까지 플로리다 불개미는 머리를 수집하는 이상한 행태로만 알려졌지만 이제 다양한 화학적 의태를 하는 모델 곤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구 내용을 소개하는 노스캐롤라이나 자연사박물관 유튜브 영상.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Adrian A. Smith, Prey specialization and chemical mimicry between Formica archboldi and Odontomachus ants, Insectes Sociaux, https://doi.org/10.1007/s00040-018-0675-y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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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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