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어두운 코뿔소와 등쪼기새의 몰랐던 공생

조홍섭 2020.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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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음으로 밀렵꾼 접근 알려…멸종위기 코뿔소 보호 기대


r1.jpg » 소등쪼기새가 시력이 매우 약한 검은코뿔소에게 밀렵꾼의 접근을 경고하는 보초병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아프리카 롤로웨 임폴로지 공원의 검은코뿔소. 데일 모리스 제공.

코뿔소를 비롯해 아프리카의 대형 초식동물 등에는 털을 헤집으며 진드기 등 기생충을 잡아먹는 소등쪼기새가 산다. 초식동물은 먹이터를 제공하고 새는 귀찮은 벌레를 잡아주는 유명한 공생관계이다.


그러나 붉은부리소등쪼기새가 단지 기생충 제거뿐 아니라 밀렵꾼의 접근을 경고해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검은코뿔소의 목숨을 지켜주는 ‘보초병’ 구실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론 플로츠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대 행동생태학자 등 국제 연구진은 320㎢ 면적의 남아프리카 보호구역에서 27개월 동안 검은코뿔소와 소등쪼기새의 관계를 연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10일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박쥐 수준의 시력


검은코뿔소는 1850년 70만 마리에 이르렀지만, 남획으로 1995년 2400마리까지 줄었고, 최근 복원 노력으로 5000마리로 늘었지만 ‘위급’ 단계의 멸종위기종이다. 주요 위협은 밀렵이다.


다 자라면 1.5t에 이르는 이 코뿔소는 인간을 빼면 자연계에서 천적이 거의 없다. 문제는 뛰어난 후각과 청각 대신 시력이 형편없이 나빠 사람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주 저자인 플로츠는 “검은코뿔소가 크고 날카로운 뿔과 두꺼운 가죽을 지녔지만 거의 박쥐처럼 앞을 못 본다. 만일 조건이 괜찮다면 사냥꾼은 5m 이내까지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코뿔소 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다가선다면 말이다.”라고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r2.jpg » 검은코뿔소 귀에 경고음을 울리는 붉은부리소등쪼기새. 제드 버드 제공.

연구자들은 소등쪼기새가 바로 이 코뿔소의 취약점을 보완해, 코뿔소가 감지하지 못하는 방향에서 사람이 접근하면 ‘쉬익∼’하는 경고음을 낸다고 밝혔다. 경고음을 들은 코뿔소는 언제나 경계 자세를 취하고 자신으로부터 바람이 불어가는 쪽, 다시 말해 사냥꾼이 접근하는 자신의 취약점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렇다면 새의 경고음은 얼마나 효과를 낼까. 연구자들은 현장에서 위치추적장치를 단 코뿔소와 그렇지 않은 코뿔소를 만났을 때 코뿔소에 소등쪼기새가 얼마나 있는지 조사했다.


위치추적장치를 단 코뿔소는 연구자들이 위치를 알기 때문에 새에 들키지 않고 코뿔소에 접근할 수 있었는데, 절반 이상의 경우에 코뿔소에 새가 앉아있었다. 그러나 위치추적장치가 없는 코뿔소를 목격한 경우, 코뿔소에서 소등쪼기새를 발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등에 새가 있었던 코뿔소는 연구자들이 접근하기 전 회피해 볼 수 없었다는 얘기다.


플로츠는 “위치추적장치를 단 코뿔소와 달지 않은 코뿔소에 소등쪼기새가 있었는지 아닌지를 비교해 추정하건대, 연구진과 코뿔소가 만나는 상황을 소등쪼기새가 40∼50% 회피하게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추적장치를 단 코뿔소라도 연구자들이 언제나 소등쪼기새를 속일 수는 없었다. 연구자들이 바람받이 방향으로 접근했을 때 코뿔소 등에 새가 많을수록 먼 거리에서 경고음을 울렸다.


플로츠는 “실험 결과 소등쪼기새가 없는 코뿔소는 사람의 접근을 23%만 알아챘다. 새가 있을 때는 모든 경우 평균 61m 거리에서 사람을 감지했다. 새가 없을 때보다 4배나 먼 거리이다. 소등쪼기새가 한 마리 늘어날 때마다 감지 거리는 9m씩 멀어졌다”고 말했다.


이 실험 결과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을 멀리서도 감지한다는 것은 유일한 천적인 밀렵꾼의 접근을 미리 알아채고, 또 사격 정확도를 크게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바람과 공기저항 등의 요인을 빼고 탄도의 정확도만을 고려해도, 사격 방향이 1% 어긋나면 30m 거리에서 목표물에 0.7m 빗겨나지만, 60m 거리에서는 1∼3m나 벗어난다고 논문에 적었다. 코뿔소로서는 생사가 달라지는 차이이다.


r3.jpg » 소등쪼기새의 경고음이 울리자 검은코뿔소들이 취약점인 자신으로부터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려 경계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제드 버드 제공.

그렇다면 소등쪼기새는 코뿔소를 위해 이런 경고를 할까. 사실 초식동물의 피부에 상처가 있다면 소등쪼기새는 상처를 벌려 피를 섭취하는 것을 마다치 않는다.


따라서 둘의 관계를 서로 돕는 공생이 아니라 일방적인 기생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코뿔소는 분명히 소등쪼기새의 유용한 먹이 자원이다.


경고음도 코뿔소의 배나 사타구니에서 먹이를 찾던 새가 코뿔소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대비해 등으로 모이자는 신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코뿔소는 사람의 접근을 알아채기 위해 새의 경고음을 엿듣는 셈이 된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코뿔소와 소등쪼기새의 관계는 종종 조건부 공생이다. 새가 상처를 헤집어 피를 먹는 대신 보초병 구실을 해 주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용인하는 것 같다”고 논문에서 설명했다.


사람의 과잉 살상이 부른 진화


흥미롭게도 소등쪼기새는 사람 이외의 포식자가 접근한다고 코뿔소에 경고음을 내는 사례가 전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연구자들은 소등쪼기새의 경고음이 사람이 코뿔소에 극심한 포획 압력을 가한 결과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행동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사람의 코뿔소 사냥은 최근 성행했지만, 이미 5만년 전부터 창을 이용한 사냥이 이뤄졌다.


어쨌든 소등쪼기새의 경고음은 세계적 멸종위기종인 검은코뿔소 보전에 청신호를 켠다. 검은코뿔소 서식지에 소등쪼기새를 복원하면 밀렵을 줄일 수 있을지 모른다.


소등쪼기새는 가축의 기생충을 없애기 위해 마구 뿌린 살충제 탓에 역시 멸종위기에 놓여 있다. 대부분의 검은코뿔소는 소등쪼기새의 경고음 혜택을 받지 못하고 홀로 산다. 플로츠는 “소등쪼기새 복원이 밀렵을 얼마나 줄일지는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건, 이 새가 코뿔소가 위험을 회피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스와힐리 원주민은 소등쪼기새를 ‘코뿔소 지킴이’라고 부른다. 전통지식은 이미 오래전에 두 동물의 호혜적 공존 관계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인용 저널: Current Biology, DOI: 10.1016/j.cub.2020.03.01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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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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