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 속 ‘유전자 지문’으로 드러난 추악한 ‘밀렵-밀수 카르텔’

조홍섭 2018. 09. 21
조회수 7632 추천수 1
유전자 분석해 케냐·우간다·토고 등 3곳의 조직범죄단체 관여 확인
코끼리 밀렵용 총알 한방에 25달러…밀수 카르텔이 밀렵꾼 지원

e1.jpg »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아프리카코끼리. 엄니를 노린 밀렵 탓에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아트 울프, 아트 울프사 제공

1940년대까지 아프리카 대륙에는 최대 500만 마리의 아프리카코끼리가 어슬렁거렸다. 주로 상아(엄니)를 노린 밀렵 때문에 그 수는 급격히 줄어 현재는 41만 마리 남짓이다. 특히 2005년부터 10년 동안 11만 마리가 사라졌다. 한 해 최고 4만 마리가 상아 때문에 밀렵 됐다. 이대로라면 몇십년 안에 이 거대한 포유류는 멸종이 불가피하다.

밀렵을 막기 위한 국제적 노력은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대규모 국제 밀거래 조직이 개입하고 있다는 심증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이른바 ‘유전자 지문’ 기술이 코끼리 밀렵 단속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되고 있다. 압수된 상아의 유전자로부터 어느 지역에서 밀렵됐는지, 밀렵의 핵심지역이 어딘지 아는 것은 물론, 유전적으로 동일한 한 쌍의 엄니가 각각 다른 곳에서 압수되는 것으로부터 상아 밀수 범죄 단체의 활동을 규명하기도 한다.

e2.jpg » 2012년 말레이시아에서 압수된 상아. 말레이시아 국립공원부 제공.

사무엘 와서 미국 워싱턴대 보전생물학 센터 소장 등 국제 연구진은 20일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실린 논문에서 압수된 상아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3개의 대규모 상아 밀수 카르텔이 암약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들 범죄 단체가 활동하는 곳은 케냐 몸바사, 우간다 엔테베, 토고 로메 등으로 나타났다.

국제 범죄조직에 의한 야생동물 거래는 연간 2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데, 코끼리 상아는 40억 달러로 추정된다. 상아가 국제 범죄조직의 표적이 된 배경에는 국제 무역의 대규모화가 놓여있다. 해마다 선박을 통해 세계를 오가는 컨테이너는 10억 개에 이른다. 이 가운데 당국이 내용물을 검색하는 것은 1∼2%에 불과하다. 밀렵한 상아를 모아 어떻게든 컨테이너에 담기만 한다면 세계 소비처로 운송하는 것은 보장된다는 얘기다.

e3.jpg » 와서 박사 팀이 2015년 싱가포르에서 적발된 4.6톤의 밀수 상아에서 유전자 분석을 위한 시료를 채취하고 있다. 케이트 브룩스, 더 라스트 애니멀스 제공.

연구 주 저자인 와서 박사는 19일 열린 원격 기자회견에서 상아가 국제 범죄 단체로 흘러들어 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1989년 상아의 국제거래가 금지됐지만 아프리카에서 소규모 밀렵꾼에 의해 광범하게 저질러지는 밀렵은 막지 못하고 있다. 밀렵꾼은 자신이 아주 잘 아는 지역에서 밀렵을 한다. 이들이 체포된다 해도 압수하는 상아는 밀렵꾼이 지닌 소량에 그친다. 중간 수집책은 수많은 소규모 밀렵꾼을 연결해 확보한 상아를 항구에 모아 컨테이너에 숨긴다.

와서 박사팀은 2015년 유전자 지문 기술을 이용해 상아 밀렵을 막을 수 있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아프리카 전역에서 구한 코끼리 배설물 속에서 얻은 유전자를 분석해 압수한 상아가 어디서 밀렵됐는지를 알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그 이전 8년 동안 코끼리의 60%가 밀렵 된 가봉 등 2곳의 밀렵 ‘핫 스폿’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밀렵 집중지를 안다고 밀렵이 근절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자들은 상아 압수물의 70%는 대규모 압수물인데, 이는 국제 밀거래 조직과 연관됐을 것으로 보고, 국제 상아 밀거래가 극성이던 2011∼2014년 사이 압수물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와서 박사는 “개별 밀렵꾼과 대량 운송책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이번 연구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e4.jpg » 2015년 싱가포르에서 압수한 상아를 같은 개체에서 나온 짝으로 정렬했다. 보전생물학 센터, 워싱턴대 제공.

그 비결은 한 쌍인 코끼리 엄니의 짝을 맞추는 것이다. 코끼리의 엄니 한 쌍은 유전자가 동일하다. 와서 박사는 “대규모 압수물의 엄니를 분석해 보니 절반 이상이 한 쪽 엄니였다. 다시 말해 한 코끼리에서 나온 엄니 두 개가 각각 별도로 운송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다른 대규모 압수물 상아의 분석 기록을 검토해 나머지 한쪽 엄니가 있는지 확인했다. 38개 대규모 압수 가운데 26곳에서 유전자가 일치하는 엄니를 찾았다. 같은 코끼리의 두 엄니는 비슷한 시기, 같은 항구에서 다른 경로로 유통된 것으로 나타났다.

밀렵꾼과 마찬가지로 상아 밀수꾼도 적발되면 “처음”이라고 발뺌하기 일쑤이다. 조직범죄의 일환이란 증거가 없으니 형량도 낮고, 곧 다시 ‘생업’으로 돌아간다. 와서 박사는 “이번 연구로 같은 밀수 카르텔이 두 개의 운송에 책임이 있음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엄니의 짝을 맞춰나간 결과 3개의 대규모 카르텔이 상아를 아프리카 밖으로 실어나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와서 박사는 또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밀수 카르텔이 밀렵꾼을 지원하고 있을 가능성도 제시했다. 그는 “코끼리 사냥에 쓰는 탄환은 한 발에 25달러나 한다. 밀렵에는 많은 돈이 들기 마련이다. 모든 상아가 같은 장소로 반출되고 있음은 누군가가 밀렵꾼을 지원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S. K. Wasser, A. Torkelson, M. Winters, Y. Horeaux, S. Tucker, M. Y. Otiende, F. A.T. Sitam, J. Buckleton, B. S. Weir, Combating transnational organized crime by linking multiple large ivory seizures to the same dealer. Sci. Adv. 4, eaat0625 (2018). DOI: 10.1126/sciadv.aat0625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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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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