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동물원의 펭귄 풀이 펭귄 비치로 바뀐 이유

남종영 2012. 05. 25
조회수 22948 추천수 0

걸작 디자인의 펭귄 풀 69년만에 폐쇄, 지난해 동물복지 고려한 펭귄 비치 열어

사람 구경보다 동물 생태 우선 고려…제돌이 방사 계기로 우리 동물원도 참고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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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지은 런던 동물원의 펭귄 풀. 당시로선 혁신적이었지만 지금은 동물복지를 위해 폐쇄돼, 문화유산으로 전시되고 있다.


유럽의 동물원은 그 자체가 문화 유산이다. 영국 런던의 타워브리지가 템즈강을 건너는 실용적 용도로 이용되면서도 보존되는 문화유산인 것처럼, 오래된 동물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동물원에겐 다른 건축물과 달리 재밌는 점이 하나 있다. 동물원은 관람객의 요구와 효율적인 동물 전시를 위해 끊임없는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 과정을 지켜보면, 동물을 바라보는 인간의 관점이 어떻게 변했는지 고스란히 드러난다.


런던 동물원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원으로 꼽힌다. 서커스 등의 동물 전시를 제외하면, 전문가들이 주도한 세계 최초의 동물원이다. 1826년 창립된 런던동물학협회는 1828년 리젠트 파크 한켠에 런던 동물원의 문을 연다.

 

초기 런던 동물원에는 아프리카, 인도의 열대 동물들이 주를 이뤘다. 지금은 멸종한 얼룩말의 일종인 콰과와 수많은 관람객을 끌어모았던 하마 등이 주요 전시 동물들이었다. 동물원은 영국 제국주의가 확장하는 데 맞춰 동물들을 늘려갔다.

 

20세기에 이르러선 극지 동물들도 런던에 입성했다. 20세기 초반이야말로 스코트와 셰글턴 등 영국의 극지 탐험이 전성기를 이뤘던 때가 아닌가. 그 중심에 펭귄이 있었다.

 

런던 동물원의 펭귄 풀은 1934년 지었다. 지금 봐도 현대적인 이 사육시설은 미적이면서도 기능적이다. 펭귄들은 마치 미인 대회에 나와 행진하는 여성처럼 에스자 형의 하얀 램프를 따라 내려오는데, 그 굴곡 때문에 사면의 관람객들이 펭귄의 앞뒤를 다 지켜볼 수 있다.

 

램프를 따라 내려가는 펭귄은 속도를 높이면서 물에 뛰어든다. 관람객은 역동적인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좀더 자연에 가까운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펭귄에게도 당시 이 펭귄 풀은 다른 사육장에 비해 생태적이었을 것이다. 동물원 사육사의 전형적인 이미지인 우리와 철창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펭귄은 펭귄 풀에서 행진하고 헤엄치고, 관람객들은 펭귄 풀 밖에서 지켜본다. 마치 풀장에서 노는 어린이들을 지켜보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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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되기 전 펭귄 풀의 모습을 담은 오래 전의 엽서. 건축가에겐 훌륭했지만, 펭귄에겐 그렇지 않았다. 사진=PostalesInventadas.


지금 이 펭귄 풀에 펭귄은 없다. 펭귄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갔다. 다만 런던 동물원의 역사 유적으로 남아 있다. 러시아인 건축가 베르톨드 루베트킨이 설계한 이 펭귄 풀은 영국 문화유산 1등급으로 지정됐다. 바우하우스를 연상케하는 모던한 디자인과 근대 동물원의 역사를 공히 보여주는 역사적 건축물이다. 

 

80년 가까이 이 펭귄 풀은 생태적이었지만, 2012년 이곳은 생태적이지 않다. 과학자들은 이제 이 펭귄 풀의 수심은 펭귄이 헤엄치기에는 너무 얕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얼핏 봐도 수심 1m를 넘지 않아 보인다. 또한 펭귄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수 있는 은신처도 없다. 현대 생태동물원 설계의 기본 원칙은, 동물이 자신을 전시하다가도 혼자 있고 싶으면 관람객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

2003년 펭귄 풀은 폐쇄됐다. 2011년 문을 연 새 펭귄 풀의 이름은 '펭귄 비치'다. 널찍한 호수가 자연형으로 디자인돼 있고, 호수의 깊이도 족히 1.5~2m는 됨직 하다. 펭귄 비치라는 이름 그대로 호수 옆에는 모래와 자갈이 깔린 비치가 있어서 여기서 펭귄들이 쉰다. 런던 동물원은 "과거 펭귄 풀보다 넓이는 4배, 깊이는 3배 더 커졌다"고 밝히고 있다. 펭귄 비치의 면적은 1200㎡, 수조에는 380㎥의 물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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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새로 문을 연 펭귄 풀. 동물복지와 전시효율을 높인 게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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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 비치의 록호퍼 펭귄. 사진=윌리엄 워비,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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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을 준비중이던 2005년 펭귄 비치에서 펭귄이 먹이를 들고온 사육사를 따라가고 있다. 사진=마이클 피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펭귄 비치에는 훔볼트 펭귄, 마카로니 펭귄, 록호퍼 펭귄 등 60여마리가 산다. 훔볼트나 마카로니는 남극이 아니라 비교적 따뜻한 곳에서 사는 펭귄이다. 어떻게 보면 약간의 모래와 수풀이 이들의 '향수병'을 달래줄 수도 있겠다. 물론 과거보다 야생에 가깝다고 하지만 야생보다 나을 리 없다.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계기로 동물원의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혹자는 서울시의 야생방사 결정을 두고 사자, 호랑이는 안 풀어주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이 사례를 통해 동물원의 역사가 차츰 동물들의 복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교훈을 요약하자면, 먼저 동물원 사육에 적합하지 않는 종은 될 수 있으면 전시를 자제하고(돌고래가 그 상위 리스트에 속한다), 교육 목적으로 전시할 수밖에 없다면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육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서구의 유명 동물원은 개조되어 왔다. 물론 동물원 진화의 이유는, 동물이 좀더 편하게 살게 해주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이 보기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 그리고 불편한 마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있지만 말이다.

 

런던/ 글·사진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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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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