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잡아먹어라, 도롱뇽의 잔인한 봄

2013. 04. 19
조회수 34774 추천수 1

입 크기 따라 먹느냐 먹히느냐 결정, 간접적으로 동료 포식 냄새 맡아도 '변신'

평화로워 보이는 물속 생태계, 사실은 화학신호 감지 둘러싼 군비경쟁 치열

 

 sala2.jpg » 다 자란 도롱뇽. 유생일 때는 동족 포식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사진=국립환경과학원

 

인왕산 백사실 계곡은 서울 4대문 안에서 유일하게 도롱뇽이 사는 곳이다. 맑은 계곡물 속에는 요즘 한창 도롱뇽이 우무처럼 생긴 자루 속에 알을 낳아 놓았다. 알에서 깬 새끼는 머리가 크고 꼬리가 길어 언뜻 올챙이처럼 생겼지만, 자세히 보면 네 다리가 나와 있고 나뭇가지 모양의 겉아가미가 밖으로 삐져나온 모습이 특이하다. 도심의 ‘비밀 정원’을 흐르는 깨끗한 물속에서 도롱뇽의 봄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그건 밖에서 사람이 바라본 풍경일 뿐, 물속에선 소리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롱뇽 새끼는 포식성이 강하다. 주로 물밑에 사는 무척추동물을 먹고 살지만, 올챙이나 형제인 도롱뇽 새끼도 잡아먹는다. 먹느냐 먹히느냐를 결정하는 건 입의 크기이다. 동료보다 빨리 자라 머리가 커진 도롱뇽은 동종 포식에 나선다. 어차피 다른 먹이보다 크기도 하고 영양가도 높으니까.
 

sala1.jpg » 도롱뇽 유생(오른쪽)이 북방산개구리 올챙이를 머리부터 잡아먹고 있다. 사진=국립환경과학원

 

그렇다면 무엇이 물벌레를 먹던 도롱뇽을 동료에게 입맛을 다시는 포식자로 바꿔놓을까. 정훈 삼육대학교 행동과학연구실 교수팀은 백사실 계곡 등에서 구해 온 도롱뇽 알을 부화시켜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이런 의문에 도전했다.
 

일반적으로 도롱뇽은 다른 ‘입 큰’ 도롱뇽의 공격을 받거나 곁에서 동종 포식을 목격하는 직접적인 경험을 하면 머리가 커지는 등 변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 교수팀은 물이 드나드는 불투명한 플라스틱 수조를 이용한 실험에서 어린 도롱뇽이 직접 경험 없이도 주변의 다른 개체들이 동료에게 잡아먹히는 화학신호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커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도롱뇽은 주변에서 동종 포식이 벌어지는지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또 버들치의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커진다는 실험 결과도 얻었다. 버들치는 도롱뇽 새끼를 잡아먹는 포식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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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a4.jpg » 물속의 도롱뇽(위)와 물 밖에 나와 사람에게 경계 표시를 하는 도롱뇽 성체. 사진=국립환경과학원  

 

물속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포식자와 그 먹이인 피식자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포식자가 작은 동물을 잡아먹어야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에 앞서 포식자의 존재 그 자체가 생태계를 바꾸어 놓는다.
 

특히 잡아먹히는 쪽의 대응이 만만치 않다. 포식자는 굶느냐 먹느냐의 문제이지만 먹히는 쪽에겐 목숨이 걸려 있으니까. 그래서 앞의 도롱뇽처럼 약한 동물들은 포식자에 관한 화학적 단서를 감지하는 전문가이고 또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 형태, 그리고 생활사까지 바꾼다.
 

첫 화학적 단서는 포식자의 특징적 냄새이다. 그 화학물질을 감지하느냐에 생사가 달렸다. 포식자 때문에 놀란 다른 피식자가 내는 화학 정보도 요긴하다. 놀란 먹잇감은 종종 오줌과 함께 암모니아를 순간적으로 방출한다. 공격받은 개체의 조직이 파괴되면서 나오는 화학물질은 강력한 경고이다. 원생생물부터 양서류까지 부상당한 동료가 방출하는 화학적 단서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포식자를 감지하면 먹이 동물은 활동을 줄이고 은신처에서 더 오래 머무는 식으로 대응한다. 어떤 가재는 포식자의 단서에 집중하느라 먹이의 감지 능력이 일시적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포식성 물고기가 있는 연못의 잉어가 포식자가 삼키지 못하도록 몸의 폭을 넓히는 쪽으로 몸의 형태가 변하는 것은 유명한 예이다. 어떤 개구리의 알은 알을 공격하는 거머리 냄새를 가하면 부화 시기가 앞당겨지기도 했다.

article-2050410-0E6BEEB700000578-576_468x286.jpg » 무게 6㎏의 대형 강꼬치고기가 너무 큰 잉어를 먹다 목에 걸려 죽은 모습. 강꼬치고기 같은 육식어종이 호수에 들어오면 잉어나 붕어가 길이 생장보다 몸의 폭을 넓게 하는 쪽으로 자라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사진=<메일 온라인> 2011.10.18

 

포식자도 쫄쫄 굶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 동부 미시시피강 유역에 사는 해적농어는 이름처럼 개구리, 작은 물고기, 물벌레 등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불투명한 플라스틱으로 칸막이를 해 서로 모습을 볼 수 없는 수조를 이용한 실험에서 개구리나 물벌레가 다른 포식성 물고기가 있으면 산란 수를 줄이는 등 민감하게 반응을 했지만 해적농어는 전혀 없는 것처럼 행동을 했던 것이다. 연구자들은 해적농어가 자신의 냄새가 나지 않도록 가려 ‘유령 물고기’가 되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그 메커니즘이 무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Ellen Edmonson and Hugh Chrisp_800px-Aphredoderus_sayanus_sayanus.jpg » 미국 미시시피강에 사는 해적농어. 자신의 냄새를 숨기는 스텔스 기능을 갖춘 것으로 밝혀졌다. 사진=엘렌 에드몬슨, 휴 크리스프, 위키미디어 코먼스

 

평화로워 보이는 물속에선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에 진화적인 군비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승패를 좌우하는 건, 사람의 군사분쟁에서처럼 적의 동태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김은지 et.al.(2012) 간접적인 카니발리즘 경험에 의한 한국산 도롱뇽 유생의 표현형의 변화, 한국환경생태학회지 26(3): 342~347.
Resetarits Jr WJ, Binckley CA (2013) Is the pirate really a ghost? Evidence for generalized chemical camouflage in an aquatic predator, Pirate Perch (Aphredoderus sayanus). doi:10.5061/dryad.1bt11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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