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느러미로 걸었을까, 실러캔스 7천만년의 비밀

조홍섭 2013. 04. 26
조회수 53687 추천수 1

실러캔스 게놈 첫 해독…'살아있는 화석'은 아냐

심해 동굴 서식해 진화 매우 느려…육상동물 조상은 폐어에 더 가까워

 

 Alberto Fernandez Fernandez_비엔나자연사박물관_640px-Latimeria_Chalumnae_-_Coelacanth_-_NHMW.jpg » 오스트리아 비엔나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프리카 실러캔스 표본. 사진=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38년 12월22일 남아프리카 찰룸나강 하구에서 한 어선의 저인망에 괴상하게 생긴 커다란 물고기가 걸렸다. 드물게 나오는 못 먹는 물고기였다.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이던 이 물고기는 한때 박물관에서 일한 적이 있는 마저리 코트니래티머라는 여성의 눈에 띄면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물고기가 됐다.
 

그는 스케치북에 마치 다리처럼 살집이 있는 8개의 지느러미에 크고 푸른 눈을 지닌 1.5m 크기의 이 물고기를 그려 전문가에게 보냈다. 곧 4억년 전에 나타나 중생대 말에 멸종한 물고기와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7000만년 만에 되살아난 이 고대 물고기가 바로 실러캔스이다.
 

실러캔스는 바다를 떠나 처음으로 땅을 네 발로 딛고 공기를 호흡한 첫 육상동물의 조상으로 여겨졌고, ‘살아있는 화석’이란 별명이 붙었다.
 

Latimeria chalumnae model in the Oxford University Museum of Natural History.jpg » 영국 옥스퍼드대 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아프리카 실러캔스 모델.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은행, 폐어, 투구새우, 투구게 등 가까운 친척이 없거나 화석에나 나오는 오랜 형태를 그대로 간직한 생물을 흔히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이 말을 쓰기를 꺼린다. 진화가 멈춘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정작 이 말은 처음 만든 이는 찰스 다윈이다. 그는 <종의 기원>에서 “담수에는… 철갑상어를 비롯해 오리너구리와 폐어 같은 특이한 생물도 산다. … 이런 특이한 형태를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이들은 한정된 공간에 서식해 경쟁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라고 썼다.
 

최근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이 이 수수께끼의 물고기 실러캔스의 게놈(유전체)을 해독해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 결과 과연 이 물고기는 다른 동물보다 아주 천천히 진화해 왔음이 분명해졌다.
 

Indonesian coelacanth_opencage_768px-Latimeria_menadoensis.jpg »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실러캔스. 아프리카 것과 비슷하지만 종은 다르다. 사진=오픈케이지

 

아프리카 실러캔스와 종은 다르지만 형태는 매우 비슷한 또다른 실러캔스가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됐다. 두 종은 사람과 침팬지의 조상이 진화 계통에서 갈라진 것과 비슷한 시기인 약 600만년 전에 다른 진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인도네시아와 아프리카 실러캔스의 혹스 유전자 차이를 분석했더니 사람과 침팬지 차이보다 11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처럼 실러캔스의 유전자 변화가 적은 이유를 변화가 필요 없는 서식환경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물고기는 낮에는 수심 170m의 어두운 바다 밑 동굴 속에 쉬다가 밤에 해저 절벽을 따라 표면에 나와 다른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심해 동굴에서 사는데다 경쟁자가 거의 없어 변화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변화가 느렸을 뿐 진화가 멈췄던 적은 없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실러캔스는 고대의 원시적 물고기가 아니라 현대적인 물고기란 얘기다.
 

긴꼬리투구새우_국립생물자원관.jpg »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긴꼬리투구새우. 원시적 형태를 그대로 갖췄지만 내부는 크게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림=국립생물자원관

 

화석의 골격을 근거로 말하는 ‘살아있는 화석’이란 규정이 골격 내부 생물체 조직의 진화를 가린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국 과학자들은 최근 공룡시대부터 비슷한 형태를 유지해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는 투구새우의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알려진 것보다 훨씬 커다란 유전적 변화를 겪었음을 밝혔다.

 

유럽의 한 투구새우는 2억 5000만년 전에 존재했던 종으로 알려졌으나 이번 연구에서 2500만년 이전에 진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투는 그대로이지만 내용물이 달랐던 것이다.
 

사실 이번 <네이처> 연구의 주요 성과는 다른 데 있다. 실러캔스와 폐어 가운데 누가 육상동물로 진화한 직계인가는 진화학계의 오랜 논란거리였는데, 이번에 폐어 쪽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람을 포함해 네 다리로 땅을 딛는 동물의 조상의 폐어의 조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G.H.Ford_640px-LepidosirenFord.jpg » 지느러미를 발처럼 이용하는 폐어의 모습. 그림=G. H. 포드, 위키미디어 코먼스

 

nature12027-f1_2.jpg » 어류와 네발 육상동물의 계통도. 폐어가 실러캔스보다 육상동물 기원에 가깝다. 그림=<네이처>

 

하지만 폐어의 유전자는 너무나 복잡하고 수가 많아 당분간 실러캔스는 육상동물 진화를 연구하는 주역의 자리를 내놓지 않을 전망이다. 실러캔스는 혈액 공급이 잘되는 커다란 알을 뱃속에서 부화시키는 난태생이다. 이런 형질은 나중에 태반으로 진화했을 것이다.
 

지금은 심해 동굴에만 살아남았지만 4억년 전 실러캔스의 다른 종은 얕은 웅덩이에서 지느러미를 이용해 걸어다녔을 것이다. 고대의 기억을 오롯이 간직한 이 특이한 물고기는 7000만년을 버텼지만 현재 멸종위기에 몰려 있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The African coelacanth genome provides insights into tetrapod evolution
Chris T. Amemiya et.al. Nature Volume: 496, Pages: 311~316
DOI: doi:10.1038/nature12027

Mathers et al. (2013) Multiple global radiations in tadpole shrimps challenge the concept of ‘living fossils’. PeerJ 1:e62 http://dx.doi.org/10.7717/peerj.62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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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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