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과 곤충은 화학전 한다

조홍섭 2008.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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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공격 받으면 독성물질 방출해 잎벌레 못 덤비게
잎-뿌리 벌레, 나무 분비물 매개로 소통해 서로 피해

 

 

untitled-1_copy_2.jpg천적이 나타나도 달아날 수 없는 식물에게 화학물질은 유력한 대응무기이다. 식물에 약용성분(독을 포함해)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초식동물의 공격을 받으면 휘발성 화학물질을 뿜어 다른 동료 나무들이 잎을 움추려 대처하도록 하는 적극적인 나무도 있다. 식물과 곤충의 먹고 먹히는 관계는 기본적으로 화학전이다.

 

최근 네덜란드의 생태학자는 식물을 먹는 땅속 곤충과 땅위 곤충이 식물이 분비하는 화학물질을 매개로 소통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연구자는 독특한 현상을 관찰했다. 이파리를 갉아먹는 벌레가 있는 식물의 뿌리에는 대개 벌레가 적다. 반대로  땅속에서 뿌리를 갉아먹는 벌레가 있으면 잎을 먹는 벌레는 적은 경향이 있다. 게다가 잎을 먹는 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는 기생벌은 땅속에 벌레가 없는 식물을 고를 확률이 높다.

 

네덜란드 과학연구기구(NWO)는 최근 네덜란드 생태학연구소의 록시나 솔러 박사팀이 “곤충이 식물을 전화처럼 이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연구팀은 애벌레가 흑겨자의 뿌리를 갉아먹는 고자리파리의 일종과 잎을 먹는 배추흰나비의 일종, 그리고 배추흰나비 애벌레에 알을 낳는 기생벌인 배추나비고치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면밀하게 추적했다.

 

배추나비고치벌은 살아있는 배추흰나비 애벌레의 몸속에 알을 낳아 자기 애벌레의 먹이로 삼는다. 시험농장에서 고치벌이 숙주의 몸에 기생한 비율은 뿌리에 고자리파리 애벌레가 있는 흑겨자에서 46%인데 견줘 뿌리벌레가 없는 곳에선 85%로 배에 가까웠다.

 

고치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 벌레가 사는 식물을 가려내는 것이다. 식물이 뿜어내는 미세한 화학물질을 정밀측정한 결과, 뿌리가 벌레의 공격을 받은 식물은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훨씬 높은 농도의 휘발성 황화물을 방출했다. 이 물질은 곤충에게 독성을 끼치는 물질이다. 반면, 꽃가루받이 등을 위해 곤충을 유인하는 물질은 적게 뿜어냈다.

 

고치벌은 단지 역겨운 황화물 때문에 뿌리해충 식물을 피하는 건 아니다. 고치벌의 궁극적 관심은 자기 애벌레가 잘 자라  유전자를 성공적으로 퍼뜨리는 것이다. 실험 결과, 뿌리에 해충이 낀 식물에서 고치벌 애벌레는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훨씬 느리게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솔러 박사는 “고치벌의 이런 행동은 오랜 세월 동안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과정에서 형성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생벌뿐 아니라 잎을 먹는 다른 애벌레도 뿌리를 손상당한 식물이 뿜어내는 화학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잎 벌레는 마치 땅속 벌레와 전화통화를 하듯이 이미 ‘주인’이 있는 식물은 피하고 비어있는 식물을 고르는 것이다. 이런 선택이 먹이를 지속적으로 확보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당연히 유리하다.

 

마찬가지로 식물 쪽에서도 잎과 뿌리 양쪽에서 먹어대는 것보다는 뿌리나 잎 한쪽에만 벌레가 덤비는 편이 낫다. 곤충과 식물의 화학전은 그런 면에서 타협 지향적이다.

 

솔러 박사는 “연구가 초기단계여서 곤충과 식물의 이런 관계가 얼마나 일반적으로 적용되는지는 아직 모른다”고 밝혔다.

 

한겨레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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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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