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태 연구원, "징계는 외부 압력 탓"
"앞으로 누가 양심선언할까요."
명예훼손 인정못해 법적 대응도 고려
“앞으로 어느 누가 바른말을 하겠습니까?”
대운하 양심선언 때문에 과거 어느 해보다 잔인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된 한국건설기술연구원(건기연)의 김이태(48·사진) 연구원은 “참담하다”고 말했다. 건기연으로부터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은 그는 24일 <한겨레>와 한 전화통화에서 “앞으로 저처럼 양심선언을 할 제2의 인물이 나오는 것은 더욱 힘들어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김 연구원은 지난 5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 ‘대운하에 참여하는 연구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건기연이 국토해양부로부터 연구용역 의뢰를 받은)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대운하 사업”이라고 폭로한 바 있다. 건기연은 당시엔 “용역 내용을 유출한 게 아니라 개인 의견을 말한 것에 불과해 보안규정 위반이 아니다”라며 징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가 약속을 뒤집었다. 지난 9월 조용주 원장 부임 뒤 11월말부터 김 연구원에 대한 비공개 특별 감사를 벌인 데 이어 23일 징계위원회에서 결국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다.
김 연구원은 “처벌하지 않겠다고 표명해놓고 이를 뒤집는 건 건기연 내부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그래서 더 징계를 받아들이기 싫었고, 혐의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건기연에서는 “대운하 폭로가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등 건기연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내부 취업규칙상 품위 유지 의무 위반을 들이댔다.
김 연구원은 “어차피 외부 압력에 따라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게 건기연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안타깝지만 저만 좀 참으면 된다 싶어 징계 결정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나 때문에 아내도, 노동조합도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김 연구원에 대한 징계 처분이 내려지기 직전 그의 부인 류종숙씨는 다음 아고라에 ‘김 연구원의 아내입니다’라는 글을 띄웠다. 이 글에는 김 연구원이 초년 연구원생 시절 업무 도중 맨홀 뚜껑에 엄지발가락 윗부분이 절단된 일을 당하고도 산업재해 처리를 하지 않은 일, 엄동설한에 부랑인 같은 노인을 집에서 묵게 한 일 등 김 연구원의 면모를 잘 보여주는 사연이 담겨 있다. 김 연구원은 “산재로 처리하면 윗사람이 회사로부터 주의나 경고를 받을까 봐 그랬다. 또 노인이 쓰러져 계셨는데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김 연구원은 서울대 환경계획학과를 졸업한 뒤 줄곧 연구자의 길을 걸어왔다. 주위에서는 “정직 기간 잠시 여행이라도 갈 것”을 권유하지만, 그는 “공식 업무는 못 보더라도 (처리해야 할) 과제가 쌓여 있다. 집에 있든 회사에 나가든 관련 논문이라도 계속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징계 조처에 법적 대응을 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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