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선 환경보호 역설하며…밖에선 가리왕산 ‘전기톱질’

김정수 201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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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참석 국내외 활동가들 "올림픽 사흘 치르려 500년 숲 파괴라니…"

평창 생물다양성협약 회의장에선 "생물다양성 보전을" 공허한 선언

 

ga1.jpg »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 참석한 국내외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14일 평창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공사를 위한 벌목 작업이 진행되는 정선 가리왕산 중봉에 올라 “생물다양성 보전과 거꾸로 가는 가리왕산 숲 파괴를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정선/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지난 14일 오전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숲 벌목 현장

 

강원도 평창에서 열리는 생물다양성협약(CBD) 총회에 참가하고 있는 국내외 환경단체 활동가 20여명이 총회장에서 20여㎞ 떨어진 정선 가리왕산을 찾았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한 생물다양성 파괴 현장을 직접 보려는 것이었다.

 

이들을 태운 차량이 임도를 따라 2~3분가량 올라갔을 때 어디선가 날카로운 전기톱 소리가 들려왔다. 총회 기간만이라도 벌목을 멈추라는 환경단체들의 요구에 대한 답변이 전기톱 소리로 돌아오고 있었다.
 

ga4_김명진.jpg » 가리왕산 하봉 활강경기장 건설을 위한 벌목작업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김명진 기자

 

20여분 쯤 더 올라가자 임도 양옆으로 벌목 현장이 확 펼쳐졌다. 임도에서 산쪽 숲은 이미 30여m 폭으로 깨끗이 베어져 하늘과 그대로 맞닿았다. 아래쪽에선 베어낸 나무를 트럭에 싣는 작업이 벌어지고 있었다. 트럭에 실려 수종을 구분하기 힘든 나무 단면 가운데는 지름이 70㎝가 넘는 아름드리 거목도 눈에 띄었다.
 

차에서 내린 국외 환경엔지오 활동가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노르웨이에서 온 ‘지구의 벗’ 활동가 요룬 오스페달 발레스타는 “사흘간의 올림픽 활강경기를 위해 이 숲이 이렇게 훼손돼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더는 겨울올림픽을 좋아할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파라과이 출신의 시모네 로베라 ‘지구 숲 연합’ 집행이사도 “국제올림픽위원회가 환경을 이야기하지만 언제나 말 뿐이었다. 올림픽위원회와 스키연맹 등에 편지를 보내 숲 파괴를 멈출 대안을 찾도록 요구하겠다”고 거들었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겠다며 인근 평창에서 열린 생물다양성협약 총회가 가리왕산한테는 오히려 위기가 된 듯하다. 강원도는 총회 개막이 2주도 남지 않은 지난달 17일 유전·생태적으로 가장 우수한 옛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부터 서둘러 벌목을 시작했다. 총회에서 가리왕산이 거론되더라도 되돌리기 어렵게 만들어놓으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살 법한 조처였다.
 

가리왕산 중봉은 2001년 강원도가 처음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설 때부터 활강경기장 예정지로 제시한 곳이다. 2011년 7월 아프리카에서 날아든 유치 성공 소식이 가리왕산엔 훼손의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이듬해 1월 국회는 평창겨울올림픽 지원 특별법을 제정해 가리왕산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에 스키장을 설치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 뒤 환경단체들이 산림유전자원 훼손 문제를 계속 제기해 산림청에 대체지 검토 위원회가 꾸려졌으나, 환경단체들까지 참여한 이 위원회에서도 최소 표고차 800m 규격과 안전성 등의 기술 검토에 밀려 대체지를 찾지 못했다.
 

올들어 환경단체들은 국제스키연맹 규정에서 활강경기를 표고차 300~500m 스키장에서 두 번 나눠 할 수 있다는 이른바 ‘투런’과 ‘표고차 750m 경기’ 예외조항을 찾아냈다. 하지만 이 조항을 근거로 한 가리왕산 구하기는 “올림픽엔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라는 국제스키연맹의 유권해석에 가로막혔다.
 

ga3_녹색연합.jpg » 천연림을 바리캉으로 밀어내듯 벌채한 가리왕산 하봉의 모습을 한 환경활동가가 지켜보고 있다. 사진=녹색연합

 

벌목 작업은 계획 면적 70만㎡의 30%인 21만㎡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왔을까? 이날 가리왕산에 오른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었다.
 

정규석 녹색연합 자연생태국장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활강경기장 예정지는 밀양 얼음골과 같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풍혈지역이어서 토목공사만 안 들어가면 지켜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2001년 강원도가 처음 겨울올림픽 유치에 나설 때부터 가리왕산 보전 운동을 펼쳐온 김경준 원주환경운동연합 네트워크활동국장도 “아직 포기할 수 없다. 당장 훼손을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올림픽 뒤 복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가리왕산 문제를 끝까지 끌고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ga2.jpg » 정홍원 국무총리가 15일 오전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의 고위급 회의 개막식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지난 15일 오전 평창 생물다양성협약 회의장
 

정홍원 국무총리가 고위급 회의 기조연설을 하는 중간에 청중석에서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저개발국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도우려는 공적개발원조 금액을 2015년까지 2006~2010년 평균의 두 배로 확대하겠다는 발표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박수였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늘어나는 원조금은, 한국의 경제 규모로 따져보면 푼돈 수준인 500만달러(한국 돈 50억원)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날 박수를 보낸 각국 대표단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는 지난 17일 저녁 평창로드맵과 강원선언문을 남기고 19일간의 긴 일정을 마감했다. 환경부는 평창로드맵이 2020년까지 세계생물다양성 목표(아이치 목표)를 달성할 전략과 단계별 이행 방안을 담고 있어 생물다양성 보전에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로드맵의 핵심인 재정 동원 방안을 중심으로 보면 이 지도는 2015년까지 가는 길밖에 그려져 있지 않은 미완성 지도다. 2016년 이후 어찌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이견으로 다음 총회에서 재협상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접경보호지역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평화와 생물다양성 다이얼로그’를 환영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강원선언문을 두고도 환경부는 생물다양성협약 고위급회의에서 이런 선언문이 채택되기는 10년 만에 처음이라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번 총회에 대한 외부 평가는 싸늘하다. 박중록 시비디한국시민네트워크 대표는 “의미를 부여하려면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보기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종이 없는 회의를 하겠다고 하고선 인터넷이 끊겨 참석자들한테 자료도 제때 전달하지 못한 회의 운영을 생각하면 총회를 유치한 이유도 찾기 어려울 정도”라고 혹평했다. 

 

평창·정선/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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