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 교통수단 전락한 케이블카, 사자평 훼손 가속
등산객들 케이블카 타고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 오른 뒤 등산로로 옮겨 가
등산객 폭주로 사자평 등 생태계 파괴 벌어져…7일 도립공원위서 양성화 심의
» 경남 밀양 얼음골에서 가지산 도립공원을 잇는 케이블카. 건설 때부터 환경파괴 논란이 일었지만 상부 승강장과 등산로 연계를 막겠다는 조건에서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이 규정을 없애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사진=마창진 환경운동연합
내일(11월7일) ‘경상남도 도립공원위원회’가 가지산 도립공원의 얼음골 케이블카와 관련한 계획을 변경하는 안건을 심의한다는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환경부의 ‘자연공원 삭도(索道)-케이블카-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넘어서는 일로 애초 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의 내용의 핵심은 탐방객이 가지산 도립공원 안에 있는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고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에 오른 뒤 기존 등산로로 옮겨 갈 수 없도록 폐쇄했던 것을 풀겠다는 것이다. 이는 가이드라인에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환경부는 2011년 케이블카와 관련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왕복이용을 전제로 하고 기존 탐방로와 연계를 피함’이라 분명히 밝혔다. 보호가 필요한 산 정상부에 케이블카를 타고 많은 이들이 몰려들어 훼손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얼음골 케이블카는 환경파괴 논란 끝에 이런 조건 아래 운행을 허가받았다. 2009년 1월19일 승인을 받아 2012년 9월 운행을 시작했지만 상수 승강장의 불법 건축 때문에 운행이 중지되는 일이 빚어지기도 했다.
불법에 참여한 밀양시와 불법을 방관한 경상남도는 가지산도립공원을 관리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이 당시에 나왔다. 자연공원을 총괄하는 환경부도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었다.
그 후 2013년 1월31일 열린 도립공원위원회는 불법 건축물인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을 재심의하였고, 도립공원위원회는 개정된 자연공원법을 적용하여 불법 건축물을 사후 추인하는 방식으로 얼음골 케이블카가 재운행되도록 하였다.
얼음골 케이블카는 이처럼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졌다. 그런데 이제는 경상남도가 나서 도립공원위원회에 위법한 사항을 심의 의결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과 마산·창원·진해 환경운동연합은 11월3일과 5일 얼음골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 일대를 현장 조사했다. 얼음골 케이블카를 타고 손쉽게 산에 오른 탐방객들은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에서 너도나도 기존 등산로로 넘어가고 있었다. 등산객들로 인하여 사자평 억새군락이 급격히 망가지는 걸 확인하였다.
» 차단막을 쉽게 넘어가는 등산객들. 얼음골 케이블카는 간단한 안내판을 걸어놨을 뿐 현장에서 이를 막기 위한 어떤 조처도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 케이블카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에서 등산로로 넘어간 흔적. 사람들의 발에 밟혀 맨 흙이 넓어지고 있다.
사자평은 남부지방에서 보기 힘든 고층 습지로서 국내 유일의 은줄팔랑나비의 집단 서식지이며 담비, 삵 등 다수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곳이다. 사자평은 생태적으로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억새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경관보전을 위한 특별한 노력도 요구되는 곳이다. 그런 곳이 얼음골 케이블카로 인하여 산산조각나고 있다.
» 등산객들로 인하여 급격히 훼손된 사자평. 11월5일 사자평에서 만난 등산객들은 모두 얼음골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사자평에 온 사람들이었다.
경상남도는 다른 일에 앞서 얼음골 케이블카로 인한 등산로 세굴, 사자평 훼손 등을 면밀히 조사하여 보전·복원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 가이드라인을 형식적으로만 적용하고 있는 얼음골 케이블카 운영자에게 경고하고 상부 승강장과 전망대를 넘어가는 등산객들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얼음골 케이블카에서 벌어지는 일은 현재 진행중인 설악산, 지리산 등 다른 국립공원의 케이블카 조성 사업의 미래상이다. 애초 목적과는 달리 등산객들이 손쉽게 고산을 등산하는 교통수단으로 케이블카가 쓰인다면 산림 생태계 파괴는 피할 수 없다. 환경부는 얼음골 케이블카를 교훈 삼아 국립공원 케이블카 정책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상남도에 간절히 바란다. 위법적 사항을 심의하려는 도립공원위원회 개최를 취소하고, 영남의 자산이며 우리의 자랑인 가지산 도립공원과 사자평 지역이 제대로 보전될 수 있도록 특단의 조처를 취하기를.
글·사진 윤주옥/ <한겨레> 물바람숲 필자,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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