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빛 가슴의 나르키소스, 황금새를 만나다

윤순영 2019. 05. 13
조회수 339132 추천수 0

어청도 찾은 희귀 나그네새…사람 두려워 않는 앙징맞은 새


크기변환_YSY_5755.jpg » 나뭇가지를 횃대 삼아 앉은 황금새 수컷.


황금은 지구에서 가장 가치 있는 물질이다. 밝은 황색 광택을 내고 변색하거나 부식되지 않아 높게 치는 금속 가운데 하나다.


이름에 황금을 올린 새가 있다. 월동지와 번식지를 오가면서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매우 관찰하기가 힘든 나그네새다. 산과 들에 꽃이 피는 이맘때면 번식지로 향하던 황금새가 우리 곁에 온다.


크기변환_YSY_5037.jpg » 목욕을 마친 황금새 수컷. 물에 젖은 깃털도 아름답다.


크기변환_YSY_5841.jpg » 수수한 깃털의 황금새 암컷.


크기변환_YSY_4771.jpg » 동남아의 월동지에서 먼 길을 와 지친 몸을 추스르고 사냥감을 찾는 황금새.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는 4~5월이 되면 번식지를 찾아가던 많은 새가 지친 몸을 쉬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4월 중순과 말경 두 차례 이곳을 방문하여 희귀한 나그네새 황금새를 만났다.


몸길이 10㎝가량인 작은 새인 황금새 수컷은 검은색의 몸 윗면과 꼬리, 하얀 날개 조각을 가진 검은 날개, 주황색이 섞인 노란색의 멱과 눈썹 선과 가슴 부위, 그리고 황금색의 허리를 두른 화려한 모습이어서 다른 종과 헷갈리지 않는다. 특히 사람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 친근감이 가는 앙증맞은 예쁜 새이다.


크기변환_YSY_5273.jpg » 번식지로 가려면 2000여 km의 비행이 더 남았을 것이다.


크기변환_YSY_3610.jpg » 조금 전에 도착한 황금새가 대나무 밭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다.


크기변환_DSC_3343.jpg » 자리를 이동하는 황금새.


암컷은 연한 갈색이며 꼬리와 허리는 옅은 적갈색이다. 황금새는 영어로 ‘나르키소스 플라이캐처’(Narcissus Flycatcher)라 한다. 나르키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으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여 그리워하다가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되었다고 한다. 날면서 날벌레를 사냥하는 아름다운 새라는 뜻이다.


황금새를 비롯한 솔딱새 과의 새들은 날면서 사냥하는 습성이 있고, 나뭇가지 등을 횃대로 사용하며 앉아있던 곳으로 되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크기변환_YSY_4455.jpg » 기력을 회복해 번식지로 떠날 준비가 된 황금새.


크기변환_YSY_3503.jpg » 긴 여행 탓인지 암컷 황금새가 왠지 힘들어 보인다.


크기변환_YSY_6771.jpg » 땅위에서도 사냥을 한다.


봄철 우리나라를 드물게 지나가는 나그네새지만 가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 아마도 풍향 등의 이유로 번식지에서 곧바로 월동지로 가는지도 모른다. 여름에는 벌, 나비, 파리, 날도래, 매미, 메뚜기, 딱정벌레, 거미류 따위를 잡아먹고 여름철에 나는 잘 익은 열매도 먹는다.


가끔 땅 위에서도 먹이를 찾는다. 가을에는 콩과 식물의 열매를 먹는다. 단독 또는 암수가 함께 살며 번식이 끝나면 가족 단위로 모여 관목 숲 사이나 교목의 높은 꼭대기에서 산다.


크기변환_YSY_4522.jpg » 중간 기착지에 도착한 새들은 2~3일이면 체력을 회복하고 떠난다.


크기변환_YSY_6151.jpg » 몸을 움츠린 황금새. 피로한 기색이 역력하다.


크기변환_YSY_4703.jpg » 주변을 경계하는 모습이다. 번식지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나이 든 황금새 수컷은 암컷보다 번식지에 먼저 도착해 짝을 고르는 데 도움을 줄 둥지를 준비한다. 짝짓기 의식에 익숙한 나이 든 황금새 수컷은 일반적으로 젊은 황금새 수컷보다 서둘러 그 지역에 도착한다. 경험은 매우 중요한 삶의 일부분이다. 젊은 황금새도 머지않아 따라 배울 것이다.


크기변환_YSY_4861.jpg » 사냥 후 부리를 닦는 황금새.


크기변환_YSY_4055.jpg »  사냥감을 노리거나 찾을 때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하는 황금새.


기변환_YSY_6554.jpg » 정면에서 보니 눈썹이 사납게 보인다.


암컷 황금새는 수컷이 영역을 지키고 있는 동안 낙엽활엽수림이나 혼효림 또는 아고산대의 숲에 열심히 둥지를 만든다. 다른 황금새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지저귀며 경고한다.


이때 가슴의 깃털을 부풀려 자기가 더 강하다는 것을 과시한다. 상대방이 물러나지 않으면 맹렬하게 달려들어 싸움한다. 어떤 때는 두 마리가 엉겨 붙어 땅 위에 떨어질 때도 있다. 영역 침범은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작지만 매서운 성격이다.


크기변환_YSY_5571.jpg » 몸은 매우 작지만 눈썹 선이 치켜 올라가 상대에게 강한 느낌을 준다.


크기변환_YSY_6746.jpg » 조개껍질 위에 앉은 황금새. 찌꺼기를 먹는다. 필요한 영양소인가 보다.


크기변환_포맷변환_YSY_6960.jpg » 번식지로 향하는 힘찬 날갯짓.


번식기에 수컷은 반복적으로 노래한다. 5∼7월에 4∼5개의 알을 매일 1개씩 낳아 암컷이 약 13일 동안 품고 새끼가 태어나면 수컷과 함께 먹이를 나른다. 새끼는 부화한 지 약 12일 만에 둥지를 떠난다.


쿠릴열도 남부, 사할린, 일본 북해도, 혼슈, 시코쿠, 큐슈에서 번식하고 사할린에서 북쪽으로 한국, 중국 본토, 대만을 가로질러 필리핀, 베트남, 보르네오 등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난다. 동아시아가 원산이나 이동성이 매우 높아 남쪽의 호주와 북쪽의 알래스카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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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김포의 재두루미 지킴이. 한강 하구 일대의 자연보전을 위해 발로 뛰는 현장 활동가이자 뛰어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이메일 : crane517@hanmail.net      
블로그 : http://plug.hani.co.kr/c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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