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사와 케첩의 공통점은? 흔들어야 나온다
송곳니 홈 타고 독액 스며들어, 흔들면 독액 점성 낮아져
권위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논문 독니의 비밀 밝혀
독니에 패인 홈의 주사전자현미경 사진. 대부분의 독사의 송곳니에는 관이 아니라 홈이 패여있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
독사는 먹이에게 어떻게 독액을 주입할까.
흔히 독사의 독니에는 관이 나 있어 마치 주사기처럼 먹이에 독액을 주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독니에 관이 나 있는 독사는 방울뱀 등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독사의 7분의 6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독사는 독니 겉 표면에 난 홈을 통해 독액을 먹이에 주입한다. 송곳니로 먹이에 구멍을 낸 뒤 이 홈을 따라 독액을 흘려넣는 것이다.
언뜻 어설퍼 보이는 이런 얼개가 작동하는 원리는 무엇일까. 대부분의 독사는 어떻게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효율적인 독 주입 방법을 진화시킬 수 있었을까.
이런 궁금증을 품고 브루스 영 미국 매사추세츠 로웰 캠퍼스 교수 등 미국과 독일 연구자들은 독사의 독 이빨 구조와 독액의 물리적 특성을 조사해, 그 결과를 권위 있는 물리학회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최근호에 실었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독사의 독액을 채취해 표면장력과 점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독액의 표면장력은 매우 커 물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점성도 높아 끈적끈적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보통 때 독액은 독니에 난 홈 속에 갇혀 보관된다.
먹이를 물었을 때의 독니 모습. 먹이의 조직과 독니 사이에 튜브 형태의 빈 공간이 생겨(노란 화살표) 독액이 조직으로 스며들어간다. <피지컬 리뷰 레터스>
그러나 먹이를 물 때 상황은 달라진다. 독사는 송곳니로 먹이를 반복적으로 깨무는 동작을 하는데, 이 과정에서 먹이의 조직과 독니의 홈 사이에 튜브가 형성돼 독물이 운반될 통로 구실을 한다.
또 끈적하던 독물은 깨무는 동작과 함께 상하방향의 힘을 받으면 갑자기 점성이 낮아져 튜브를 통해 쉽사리 흘러든다. 연구진은 이것을 "독물이 비 뉴턴 유체의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케첩 뚜껑을 열고 거꾸로 세워도 점성이 높은 내용물이 잘 나오지 않지만 위아래로 흔들어 주면 점성이 갑자기 낮아져 쏟아져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독니를 지닌 가봉북살모사의 모습. 독사는 효율적으로 독액을 주입하기 위해 독니의 홈을 진화시켰다.
새를 잡아먹는 독사는 깃털을 물 때 독니의 홈에 보관된 독액이 스며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독사보다 홈이 더 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독액의 표면장력이 독액 주입 과정을 결정하는 원동력임을 알아냈다"며 "그 결과 독니 겉에 패인 홈을 통해 효율적으로 독액을 주입하는 방식이 독사에게 우세하게 진화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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