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양의 방사선은 이롭다고?
세포 차원 효과 있을지 몰라도 ‘구경꾼 효과’ 등 부작용 드러나
▲방사능 비가 내린 지난 7일 적은 비가 내렸지만 시민들이 빠짐없이 우산을 받아 있다.
게다가 이 이론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한다.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에 딸린 방사선보건연구원은 호메시스를 주요 연구과제로 삼고 있다.
지난 6일 대한방사선방어학회가 연 긴급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한 김종순 인제의대 교수는 “미량 방사선은 인체에 도움이 된다”며 라돈온천 지역인 일본 미사사 주민의 암 발생률이 일본 평균보다 훨씬 적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종합일간지(<한국일보> 4월14일치)에 “적은 양의 방사선은 오히려 면역기능 높이죠”란 제목의 기사가 실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이 빗방울, 공기, 채소 등에서 잇따라 검출돼 안전 논란이 일자 정부와 원자력계는 “극미량이어서 절대 안전하다”며 건강 우려를 일축했다. 이제 적은 방사선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홍보가 나올 판이다. 과연 방사선 호메시스는 옳은가?
한국환경독성보건학회가 지난 15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우리 국민건강 과연 문제 없나?’ 포럼을 열었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하미나 단국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공중보건정책에서 호메시스 가설은 오류임이 드러났다”며 “미국환경보호청 등 보건정책에 이를 채택하는 곳은 없다”고 밝혔다.
방사선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에 관한 대부분의 주요한 이론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피폭 생존자 8만 6600명에 대한 조사를 토대로 한다. 여기서 얻은 가장 중요한 결론은 피폭량이 늘어날수록 암 환자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방사선 피폭량이 적은 사람 가운데 암 사망자 자체가 적어 실제로 위험이 얼마나 큰지를 계산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국제방사선방호학회(ICRP)는 현재까지의 실험 데이터와 역학데이터를 바탕으로 ‘문턱 없는 선형 모델’(LNT)을 각국에 권고하고 있다. 비록 과학적으로 불확실성이 남아있지만,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선이라도 빈도는 작을지언정 암 발생을 일으킨다고 믿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구경꾼 효과'를 보여주는 전자현미경 사진. 방사선에 쏘인 세포(아래 분홍색)에서 염색체가 손상돼 떨어져 나갔다. 방사선을 쏘이지 않은 세포(위 파란색)에서도 염색체 손상이 드러나 있다. <사이언스> 2003.
호메시스 가설은 일본의 저선량 피폭자들이 장수하거나, 자연방사선이 높은 중국 서부와 콜로라도 주민의 암 발생이 평균보다 약간 낮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나왔다.
1980년대 중반엔 노벨상을 받은 세포유전학자 셸던 월프가 ‘적응 반응’ 설을 제기해 주목을 받았다. 한 세포는 저선량과 고선량의 방사선을 차례로 쏘이고 다른 세포는 고선량만을 쏘였을 때, 앞의 세포가 훨씬 디엔에이 손상을 덜 입는다는 것이다. 이는 저선량 방사선이 세포의 디엔에이 복구 효소를 강화시켰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방사선 호메시스 연구는 1990년대 말 전성기를 맞는다. 하 교수는 미국 에너지부가 1997년부터 2003년까지 1억 달러를 호메시스 연구비로 내놓은 것이 관련 연구 증가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에너지부는 원자력발전을 추진하는 부서이다.
그런데 호메시스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콜롬비아 대 홀 등은 1999년 세포에 알파선을 쏘이는 실험을 하다가 조사된 세포뿐 아니라 그 이웃에 있던 세포까지 손상을 입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싸움 구경하다 돌 맞는 데 비유해 ‘구경꾼 효과’라고 부른다.
이 현상은 방사선에 쏘인 세포에서 해로운 분자가 스며 나와 이웃 세포에도 해를 끼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선량 방사선의 알려지지 않은 위험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는 2006년 저선량 방사선의 건강 위험을 평가한 보고서에서 “호메시스 이론을 지지하는 데이터가 있더라도 (아무리 작은 방사선도 해롭다)는 현재의 선형 모델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저선량 방사선에 의한 발암확률 모식도. 100명 가운데 평생 암에 걸려 죽는 사람은 42명(검은 원)이다. 이 가운데 자연방사선에 추가로 100밀리시버트의 인공 방사선에 쏘이면 1명(별)이 암으로 사망한다. 일반인 권고기준인 연간 1밀리시버트라면 1만명당 1명이 사망한다. 자료=미국 과학아카데미 2006년 보고서
하 교수는 그 동안의 호메시스 연구의 한계로 ‘구경꾼 효과’ 이외에도 인체가 아닌 세포 차원의 연구가 대부분이어서 역학적 증거가 없다는 점, 태아나 유전질환자 등 방사선에 특히 민감한 개인에게는 피해가 나타날 수 있는 점 등을 꼽았다.
실제 역학적 연구를 보면, 저선량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에서 암이 발생함을 뒷받침한다. 원폭 생존자의 65%가 100 m㏜ 이하의 방사선에 노출됐고 체르노빌 사고 때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의 방사선 오염지역에서의 평균 피폭량은 9 m㏜ 수준이었다. 또 15세 이하의 어린이에게서는 10~20 m㏜ 수준에서부터 암 발생이 증가한 사실이 밝혀졌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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