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전 찬성, ‘일본 참사’ 이후에도 그대로
47개국 대상 여론조사서 중국 이어 2위
성장 지상주의와 과학 만능주의가 뿌리
▲후쿠시마 원전 4호기의 사고 처리 모습
여론조사기업인 윈-갤럽 인터내셔널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인 지난 3월21~4월10일 사이 전 세계 47개국 3만 4000명 이상을 대상으로(한국은 3월23일, 1031명 대상) “전력 공급원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는데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나라 응답자들의 64%가 찬성한다고 대답했다. 우리보다 높은 찬성률은 중국(70%)밖에 없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전엔 원자력에너지를 어떻게 생각했었나’란 질문에 우리나라 응답자의 65%가 찬성했다고 답했다. 사고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얘기다.
원자력에너지에 반대한다는 응답은 우리나라에서 24%로 불가리아 23%와 함께 조사 대상 가운데 가장 낮았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지켜본(인지율 81%) 세계인들의 원자력에너지에 대한 지지율은 크게 떨어졌다. 찬성 비율에서 반대 비율을 뺀 순 호감도는 사고 이전의 25%에서 6%로 줄어들었다. 전체적으로 원자력에 대한 지지 대 반대 비율은 49 대 43으로 여전히 지지가 많지만 엇비슷해졌다.
▲자료=한국 갤럽
후쿠시마 사고가 원자력 인식에 끼친 영향이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나라는, 당연하지만 일본이다. 일본 응답자의 62%가 사고 이전엔 원자력을 찬성했지만 사고 이후 그 비율은 39%로 떨어졌다. 원자력 반대는 28%에서 47%로 늘어, 원자력 찬성이던 여론이 반대로 뒤바뀌었다.
대표적인 원자력 추진 국인 캐나다도 51%이던 찬성 비율이 사고 이후 43%로 줄고 대신 반대가 43%에서 50%로 뛰었다. 마찬가지로 네덜란드에서도 찬성이 51%로 우세하다가 사고 영향으로 반대가 50%를 차지하는 반전이 일어났다.
중국은 원자력 찬성 비율이 사고 이전 무려 83%로 세계 최고이다가 70%로 대폭 떨어졌다. 반대 비율은 30%로 우리보다 높다. 인도, 러시아 등 원전 대국들도 10% 포인트가 넘는 찬성 비율 감소폭을 경험했다.
주목할 것은 자국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불안감을 표시한 응답 비율이 중국에서 81%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가능성이 낮다는 중국 응답자는 2%에 지나지 않았다.
세계 최대의 원전보유국인 미국의 원자력 찬성 비율은 53%에서 47%로, 2위 국가인 프랑스의 찬성률은 66%에서 58%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도 찬성률은 옆걸음이지만 반대율은 사고를 계기로 10%에서 24%로 크게 늘었다.
애초 원전 반대 여론이 드세던 서유럽 국가들에서 이번 사고는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붇는 구실을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원자력 반대는 87%에서 90%로 뛰었다. 원전 포기를 확인한 독일은 64%이던 반대율이 72%로 늘었고 스위스에서도 사고 뒤 62%를 기록했다.
원자력 찬성 국가와 반대 국가는 따로 있다
원자력에 대한 여론은 대체로 동아시아와 동유럽에서 우호적이고 프랑스를 뺀 서유럽에서 비우호적이다. 여기엔 여러 사회경제적, 문화적 요인이 깔려있다. 예컨대, 프랑스나 동아시아에서 원자력은 국가적 긍지와 연결돼 있다. 옛 소련에서 떨어져 나온 동유럽은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지 않으려고 원자력을 적극 추진한다.
▲세계의 원전 가동 수 현황 2009년. 한국은 세계 5위의 원전 대국이다.
원자력 선호가 민주주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도 있다. 김수진(독일 베를린 자유 대 박사과정)씨는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도요새, 2011)에서 합의제 민주주의 모델을 채택하고 사기업의 경쟁적 운영을 중시하는 나라에서 원전을 포기하는 쪽으로, 반대로 국가에서 원전을 독점적으로 운영하고 경쟁 민주주의 모델일 때 원자력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실제로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한 나라는 독일, 스웨덴,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등으로 국민투표 등 사회적 합의를 통해 원전을 포기하는 길을 택했다.
후쿠오카 원전의 방사능 누출로 인한 피해 가능성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국 갤럽이 위 조사 때 함께 수행한 ‘일본 대지진 관련 국민 여론 조사’(전화조사, 표본오차 ±3.1%)에서 응답자의 63.6%가 방사능에 의한 국내 피해가 염려된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방사선은 무섭지만 원자력을 좋다’는 태도의 뿌리는 뭘까.
일찍이 1955년 한미원자력협정을 체결하면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나선 이래, 원자력은 핵무기 개발, 과학기술 발전의 핵심 주체, 경제개발을 위한 주요 동력원,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성장을 위한 주력 산업 등으로 쓰이며 몸집을 불려왔다. 원자력은 단순히 안전성 하나만으로 따질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원자력에 반대하는 사람은 의식하든 안 하든 ‘반 정부’ 쪽에 서는 부담을 안게 된다. 원자력을 추진하는 정부의 확고한 방침은 한반도 흔들린 적이 없다. 우리가 내는 세금에서 꼬박꼬박 떼어내는 전력기반기금 가운데 해마다 100여 억 원이 원자력문화재단의 원자력 홍보사업에 쓰이는 것은 한 가지 예이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원자력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정부의 홍보 세례와 반핵운동의 폭력성을 부각시킨 언론 때문에 일반인이 원자력을 ‘필요악’으로 보는 것 같다”며 “더 근본적으로 이런 인식의 뿌리에는 우리 사회의 성장 지상주의와 과학기술 만능주의가 도사리고 있다”고 말했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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