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의 겨울나기, 사람이 가장 큰 위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⑩ 흑두루미
전 세계 1만4천마리 중 일 이즈미 1만2천, 한반도 1천마리 찾아
볏짚 싹쓸이에 밀렵, 4대강 사업, 사진가 극성으로 휴식처 빼앗아
» 검은 몸빛이 이채로운 흑두루미가 논에서 먹이를 찾고 있다. 흑두루미가 살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뚜룩! 뚜룩!”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에서 큰 소리가 들린다.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 날아오는 흑두루미의 소리다.
해뜨기 전에 갯벌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먹이 터인 논으로 날아오는 중에 이런 소리를 낸다. 흑두루미가 우리 곁에 있다.
강산이 한번 바뀔 때마다 돌아오는 ‘강산 돌이’
순천만 흑두루미가 처음 알려지게 된 것은 순천만 보전운동이 한창이던 1996년 11월 고 김수일 교수에 의해서였다.
순천만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흑두루미는 예전부터 이곳에서 관찰되었고 “강산 돌이”라고 불렀다. 강산이 한번 바뀔 때마다 돌아오기 때문이다. 조사 초기에 관찰된 숫자는 70마리가 안 되었지만 올 겨울에는 거의 1000마리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흑두루미라고 부르지만 영어로는 ‘두건을 쓴 두루미’(Hooded Crane)이라고 부른다. 학명은 Grus monachus이다.
왜 두건을 쓴 두루미라고 했을까? 흑두루미의 검은 몸과 하얀 목과 검은 머리를 보고서 수도사를 떠올렸나 보다.
일본에서는 연학(煙鶴, ナベヅル), 중국에서는 백두학(白頭鶴)이라고 부르는데 조금씩 다른 듯하지만 나라마다 흑두루미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낙동강을 지나는 흑두루미가 줄어든 까닭은?
» 흑두루미의 번식지와 월동지. 아무르강 유역에 넓게 퍼져 번식한 흑두루미는 중국, 한국, 일본에 남하해 겨울을 난다.
흑두루미는 전 세계에 1만4000여 마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일본에 1만2000 마리, 한국에 1000여 마리 이내, 중국에서 1000여마리 정도가 월동지에서 관찰된다.
추운 날씨를 피해서 겨울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 중국으로 내려오지만 번식은 주로 아무르강(헤이룽강) 일대에서 한다. 처음 번식이 알려진 것은 1970년대 중반으로 러시아 연해주 지역의 비킨강 유역이었다.
두루미류 가운데 두루미(단정학)와 재두루미는 넓은 평원에 둥지를 쌓아서 알을 낳지만 검은목두루미와 흑두루미는 침엽수림 지대에서 어느 정도의 초원이 형성돼 있어 조그만 숲과 물이 함께 있는 곳에서 번식을 한다. 몸빛깔이 어두운데다 나무 그늘이 드리운 곳에서 번식을 하니 천적이나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
3~4월에 일본이나 우리나라를 거쳐 번식지로 날아간 흑두루미는 4월말과 5월초에 둥지를 만든다. 그곳에 알을 2개 정도 낳은 후 한 달 정도 알 품기를 하면 병아리처럼 생긴 어린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온다. 한 달 정도가 지나면 어느 정도 단거리를 날아다닐 정도로 빠른 성장을 한다.
장거리 비행을 하려면 2∼3개월은 자라야 한다. 9개월이 지나면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10월께 날씨가 추워지면 서서히 이동을 시작해 10월 말께 우리나라, 중국, 일본으로 월동을 하러 내려온다.
10월말과 11월초에는 많은 흑두루미가 우리나라를 지나간다. 그러나 예전과 다르게 낙동강 경로를 이용하는 흑두루미의 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이는 4대강 사업의 영향으로 보인다. 강을 준설하면서 중간에 내려서 휴식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줄자 흑두루미들이 내리지 않고 바로 일본으로 이동하거나 서해안을 경유해서 일본으로 가고 있다.
이런 결과는 각 지역 현장에서 흑두루미 이동을 모니터링 하는 지역활동가나 연구자들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순천만에도 올해 800여 마리가 이동시기에 찾았다가 다시 일본 쪽으로 이동한 개체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이용하던 길을 버리고 돌아가는 꼴이다. 이런 영향이 계속된다면 흑두루미들은 쉬지 못한 채 힘들게 일본까지 날아가거나 서해안 경로로 돌아가는 일이 늘어날 것이다.
흑두루미를 위협하는 전깃줄과 밀렵
흑두루미에게 가장 무서운 위협은 사람이다. 번식지는 드넓은 평원이거나 인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비교적 영향이 적다.
그러나 번식지인 러시아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자주 발생해 번식지를 위협한다. 또 개체수의 대부분인 1만2000여마리가 일본의 한 장소인 이즈미 시에서 월동하는 것도 문제다. 일본의 월동지에서 질병이나 사고가 발생한다면 큰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한국이나 중국의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중국은 양쯔강에 싼샤댐이 만들어지면서 흑두루미의 월동지가 영향을 받고 있다. 한국은 서산과 순천만에 흑두루미가 찾아오지만 하나의 월동지나 마찬가지이다. 천수만에 많은 눈이 오고 추워지면 천수만에서 머물던 개체가 순천으로 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순천만에서 죽은 흑두루미는 자연사한 것도 있지만 사람에 의한 예도 적지 않다. 흑두루미 사망 기록은 다음과 같다.
- 1997년 1월 / 흑두루미(유조) / 폐사 / 영양실조
- 2001년 12월 / 흑두루미(성조) / 폐사 / 농약중독
- 2008년 1월 / 흑두루미(유조) / 폐사 / 전선충돌
- 2010년 10월 / 흑두루미(성조) / 폐사 / 추락
- 2012년 3월 / 흑두루미 / 폐사 / 농약중독
이런 요인 말고도 폐사한 사례가 있을 수 있지만 발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오리를 잡기 위해 뿌린 농약 묻힌 낱알을 먹고 죽거나 전선에 부닥쳐 죽는 사례와 영양실조, 추락 등이 관찰되었다.
2012년에는 농약을 먹은 흑두루미를 독수리들이 뜯어 먹어 형체를 알기 어려운 흑두루미들도 있었다. 전주에 있는 전깃줄에 다리가 걸리거나 부딪쳐서 뇌진탕으로 죽은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2010년 순천만 일부 구간의 전주를 제거했지만 전체적으로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일본에서도 이런 충돌에 의한 피해는 많다.
» 흑두루미의 추락. 마침 카메라를 들고 있어 촬영할 수 있었다.
» 물위에 떨어진 흑두루미. 아마도 맹금류의 습격을 받은 것 같다.
추락해서 폐사한 경우도 있다. 2010년 10월 어느날, 하늘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검은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고 있었는데 흑두루미였다.
마침 카메라를 가지고 있어서 추락 장면을 찍었다. 흑두루미는 물위로 떨어지면서 물이 튀고 깃털도 함께 날아올랐다. 둑에서 100미터 정도 떨어진 물속으로 떨어져서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결국 김인철 당시 순천시 운영과 직원과 스티로품을 잡고서 조금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서 건져왔지만 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마도 근처를 지나던 벌매로 추정되는 20여마리 정도의 맹금류들과 사이에 어떤 사고가 있었을 것으로만 추정된다.
다른 요인들로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꼽을 수 있다. 흑두루미가 안정적으로 먹이를 먹기 힘들게 하는 사진가 문제가 심각하다.
두루미가 대부분 예민하지만, 특히 흑두루미는 더 그렇다. 그래서 조금만 이상해도 바로 날아오른다. 농로로 차량이 들어가거나, 사진을 찍기 위해서 접근하면 새들을 힘들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일부 지역에서 이런 행동이 그나마 통제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 자동차가 접근하자 흑두루미 무리가 날아오르고 있다.
천학(千鶴)의 도시를 꿈꾼다면
우리나라에 흑두루미가 겨울을 날 수 있는 곳은 많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역에서 농어촌공사가 자연스러웠던 논을 농지정리하고, 농로와 수로를 콘크리트화 하면서 새들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해가고 있다.
그나마 논에 있는 볏짚마저 똘똘 말아서 소먹이로 가져가고 있다. 이렇게 볏짚을 걷어간 논을 조사해 보면 볍씨 한 톨 찾기가 정말 어렵다.
순천만의 넓은 지역에서 생물다양성계약을 통해서 볏짚 존치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지방자치단체에서도 부서별로 예산이 달라서 어떤 곳은 볏짚을 걷어내고 풀씨나 청보리 재배를 지원하기도 한다.
또한 농수로가 콘크리트로 덮이면 이곳에 서식하는 다양한 동·식물에 영향을 주어서 생물다양성이 떨어지고 겨울을 나는 흑두루미는 다양한 먹이가 아닌 오로지 볍씨에만 의존하게 될 것이다.
» 순천시가 천학의 도시를 꿈꾼다면 '두루미 농장'인 일본 이즈미를 따를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두루미 공간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순천시가 천학(千鶴)의 도시를 꿈꾼다면 먹이를 인공적으로 주는 ‘이즈미 농장’을 모델로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천만 곳곳에서 자유롭게 먹이를 먹을 수 있는 드넓은 공간을 제공한다면 흑두루미에게는 환상적인 월동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순천만 흑두루미의 월동이 자유로워진다면 다른 조류들도 더불어 위협을 덜 느낄 것이다. 사람들이 그만큼 접근을 줄이면 새들도 우리에게 좀 더 다가올 것이다.
다양한 탐방객들이 순천만과 흑두루미를 보고 가면서 자연에서 느낀 것들을 살고 있는 지역에서 실천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은 실천 활동이다. 흑두루미가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순천만을 기원하고 새해에는 흑두루미를 보면서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글·사진 차인환/ 흑두루미 보호 활동가
■ 흑두루미에 대해 더 궁금하다면 참고하세요.
-국제두루미재단
-한국물새네트워크
-한국 야생조류보호협회
-사이버 두루미
-교육방송 <하나뿐인 지구> ‘흑두루미 생존의 최전선, 순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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