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차드 오배리, 제돌이 도우러 한국 오다

남종영 2012.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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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자살’ 겪으면서 돈·명예 포기하고 보호운동 뛰어들어

“서울시, 강력한 메시지 던진 셈…제돌이 야생방사 돕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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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야생방사 장소로 거론되는 제주도 동쪽 연안을 둘러보고 있는 리차드 오배리.



“돌고래 야생방사 성공을 위해 무엇이 가장 중요하냐고요? 내가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건 정치였어요.”


지난 8일 장시간 비행으로 지쳐 호텔에서 쉬던 리차드 오배리(73)가 밤늦게 나와 말했다. 제돌이 이야기를 꺼내자 피곤에 찌든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리차드 오배리는 세계적인 돌고래 보호운동가다. 40년 이상 전시·공연용으로 포획되는 돌고래를 구조하고 수족관에 사는 돌고래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왔다. 그의 이름은 2009년 루이 시호요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슬픈 돌고래의 진실>을 통해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영화는 핏빛으로 물든 일본 다이지 앞바다에서 돌고래 포획을 저지하는 그의 모습을 담았다.


그가 동물보호단체인 동물자유연대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제주 앞바다에서 불법 포획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공연하다 지난 3월 야생방사가 결정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를 돕기 위해서다. 세계적인 동물보호단체 ‘휴메인소사이어티’의 수석과학자인 나오미 로즈 박사 그리고 사무엘 헝 카유(Samuel Hung Ka-yiu) 홍콩돌고래보존협회장 등 돌고래 생태학자들도 함께 한국을 찾았다.


마침 이들이 온 8일, 서울대공원은 돌고래쇼를 중단하는 대신 생태설명회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돌고래쇼에 대한 찬반 의견은 팽팽했다.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돌고래쇼를 지속해야 한다는 의견은 52%,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40%로 나온 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폐지가 56.8%로, 지속 23.2%를 두 배 이상 앞섰다. 


“야생방사를 하겠다면 제 세력이 움직여요. 공연업계가 들고 일어나고, 정치적 이유로 반대 논리가 등장하고… 거대한 정치판이 형성돼죠. 이럴 땐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가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서울시는 자연과 환경에 관한 강력한 메시지를 세계에 던졌어요.”


오배리는 1960년대까지 세계 최고의 돌고래 조련사로 이름을 높였다. 그는 바다에서 돌고래를 직접 잡아 가르쳤고, 돌고래들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플리퍼>에 출연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돌고래 수족관과 돌고래쇼가 많아진 것도 그 즈음이다. 그런데 그가 돈과 명성을 포기하고 돌고래 야생방사 운동에 뛰어든 것이다. 


“내 품 안에서 돌고래 케이시가 자살했죠.”


“자살이라고요?”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아니지만, 지금도 난 자살이라고 믿어요. 돌고래는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날 케이시는 작정한 듯 올라오지 않았어요.”


1970년 4월22일, 첫 번째 ‘지구의 날’에 그는 ‘돌핀 프로젝트’라는 세계 최초의 돌고래 야생방사를 위한 단체를 출범시킨다. 지금까지 30마리 이상의 돌고래를 바다에 돌려보냈다.

 

이튿날 서울 양재동 에이티(aT)센터에서 동물자유연대 주최로 열린 ‘전시 돌고래의 안전 방생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나오미 로즈 박사는 왜 돌고래를 수족관에 가두선 안 되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녀는 전시·사육에 부적합한 동물 리스트가 있는데, 특히 돌고래가 상위를 차지한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우선 돌고래는 가족·사회생활을 하기 때문에 포획하면 가족을 해체시키는 효과를 가져와요. 하루 최고 100㎞ 이상을 헤엄치니, 인간 기술로 만들 수 있는 수족관보다 1000배 이상 광활한 곳을 누비고 다니는 셈이고요. 다양한 물고기를 먹는데, 수족관에선 먹이도 한두 가지로 줄어요. 그리고 가장 비극적인 건 수족관에서 새끼를 낳는 거죠. 그런 점에서 서울대공원은 현명합니다. 수컷만 사니까요.”


돌고래 전문가 세 명은 이날 서울대공원 돌고래쇼장에도 찾아갔다. 공연용 풀장에 들어서자 돌고래 5마리가 다가와 일렬횡대로 정렬하더니 물 밖으로 부리를 내놓았다. 수족관 돌고래에게 보이는 ‘스테이션닝’(stationing)이라는 동작이다. 수족관 돌고래는 먹이를 받아먹기 위해서 사람만 나타나면 다가가 부리를 내놓는다. 그 줄의 세 번째에 제돌이가 있었다. 로즈 박사가 말했다. 


“제돌이가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네요”


새로 시작한 생태설명회는 기존의 돌고래쇼와 다른 내용이었다. 해설자 두 명이 나와 돌고래의 종과 먹이, 습성을 설명했다. 돌고래들은 설명에 따라 시속 40㎞로 헤엄치기와 점프 등 몇 가지 동작을 보여줬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돌고래쇼와 다를 것 없다는 비판이 있어, 야생에서 나타나지 않는 행동을 없앴다”고 말했다. 생태설명회가 끝난 뒤 어떻게 보았느냐고 물었다. 헝 카유 박사가 답했다. “생태설명회라면 굳이 돌고래가 필요 없겠는데요.”


하지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서울대공원의 돌고래는 모두 5마리. 이 가운데 제돌이 등 3마리는 제주도가 고향인 남방큰돌고래이고, 2마리는 일본 다이지에서 수입한 큰돌고래다. 돌고래 야생방사는 원래 살던 서식지에 풀어주는 게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남방큰돌고래는 방사가 가능하지만 큰돌고래는 방사가 여의치 않다. 이 사정을 알기 때문에 이들도 서울대공원을 비난하려 들지 않았다. 

 

셋째 날인 10일, 세 명의 전문가들은 제주도에 내려가 제돌이의 야생방사 후보지로 거론되는 제주시 북동쪽 해안을 둘러봤다. 야생방사 실무를 맡고 있는 모의원 서울대공원 동물원장과 김병엽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 연구원도 동행했다. 


제돌이는 야생방사지에 설치되는 가두리 안에 살면서 차가운 바닷물을 익히고 산 생선을 잡아먹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산 생선을 자유롭게 잡고 야생의 바다가 편안해질 때, 제돌이는 비로소 가두리의 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다. 지도를 보던 오배리가 다려도로 가보자고 했다.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의 다려도는 육지에서 약 1㎞ 떨어진 무인도였다. 오배리가 말했다. “일단 사람이 살지 않아 좋고요. 수심도 4~6m이니, 제돌이가 헤엄치기에 충분해요.”


다른 곳도 야생방사 후보지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만 바다 한가운데 설치하면 돈이 많이 들고, 육지 쪽 만을 막아 설치하면 돈이 조금 드는 게 차이일 뿐이라고 오배리는 설명했다. 그리고 제돌이의 적응 속도에 따라 짧게는 3주, 길게는 1년 가두리에서 적응 훈련을 마치고 바다로 내보내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원래 서울대공원은 야생적응 훈련기간을 내년 6월부터 2013년 여름까지 1년을 상정했다. 사계절 수온을 다 익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배리 등은 수온이 큰 변수가 아니라고 말했다. 김병엽 연구원은 바다가 잔잔하고 돌고래가 자주 출현하는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제주시 한경면 차귀도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등을 야생방사 후보지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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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떠나기 전, 리차드 오배리는 서귀포시의 돌고래 공연업체인 퍼시픽랜드를 들렀다. ‘제돌이’를 불법포획해 서울대공원에 넘긴 그 업체다. 공연장은 인파로 가득 찼다. 오배리는 비상구 계단에서 아픈 표정으로 쇼를 지켜봤다. 돌고래 묘기에 환호가 끊이지 않을수록 그는 더 외로워 보였다. 결국 그는 공연을 다 소화하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저 돌고래들은 자연에서 훔쳐온 거예요. 그 사실을 알면 환호해선 안 돼요.”



사흘 동안 동행한 세 명의 전문가들은 모두 제돌이가 바다에 성공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 보수신문을 중심으로 제기된 △포획된 지 2년 이상 된 개체는 성공 사례가 없다는 점 △야생에 돌아갔을 때 원래 무리에게 공격받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축했다. 


약 20년 전 오배리는 브라질의 한 수족관에서 7년 동안 갇혀 있던 돌고래 ‘플리퍼’의 야생방사도 성공시켰다고 말했다. “그때 방류할 때 브라질 국기를 표시해뒀죠. 2년 뒤에도 발견됐어요.” 로즈 박사도 말했다. “2년 미만 개체만 성공했다는 건 논문 이야기예요. 논문만 안 나왔을 따름이지 그 이상 된 개체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많아요.”  


그리고 제돌이가 야생으로 안전하게 돌아가기 위해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산 생선 공급 등 가능한 야생적응 훈련부터 당장 시작하는 것이다. 둘째, 다른 돌고래와 함께 방사하는 게 이상적이라는 점이다. 사회생활을 하는 돌고래의 습성상 성공률은 더 높아진다. 서울대공원에 있는 2마리 그리고 제주지방법원이 1심에서 몰수형을 내린 퍼시픽랜드의 5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주민들과 협의가 중요하다. 야생방사장이 설치되면 돌고래와 인간 사이의 접촉을 최대한 줄여야 하기 때문에,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 


서울시는 15일  ‘제돌이 야생방사 시민위원회’를 연다. 시민위원회는 이날 야생방사 전 과정에 대한 로드맵을 작성하고 야생방사지 선정 등에 관한 사항을 논의한다. 오배리는 “자원봉사라도 해서 제돌이의 고향 가는 길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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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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