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에서 무려 5년, 가족만 만났더라면…

남종영 2012. 0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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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판 커버스토리] 과학자에게 듣는 케이코의 귀향

 영화 ‘프리윌리’의 주인공 세계적 야생방사 운동 끝에

 멕시코의 아쿠아리움을 떠나 아이슬란드 돌아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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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코'라는 이름의 범고래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럼 '프리윌리'는? 1970~80년대에 태어난 이들은 영화 <프리윌리>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소년과 범고래의 우정을 그린 이 영화는 3편까지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영화가 화제가 되면images.jpg서 사람들은 케이코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케이코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곧이어 케이코를 좀더 동물복지적인 환경에서 살게 해주자는 운동이 일어났고 아이슬란드 앞바다로 되돌리는 데까지 이르렀다. 수백만명의 기금 참여로 '케이코 재단'이 생겼고, 이 재단은 전세계 돌고래 야생방사 운동의 상징처럼 돼 오고 있다. 케이코를 야생에 돌려보낸, '케이코 프로젝트'에 관여한 두 과학자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시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녕, 케이코.”

 1998년 9월9일 미국 오리건주 뉴포트의 오리건 코스트 아쿠아리움 앞. 수백명이 범고래 ‘케이코’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몰려들었다. 공항에는 미국 공군이 지원한 C-17 수송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케이코가 고향인 아이슬란드의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다.

 

 수컷인 케이코는 두 살 때 1977년 아이슬란드 바다에서 잡혀 캐나다와 멕시코의 수족관을 전전했다. 하지만 1995년 영화 <프리윌리>에 캐스팅돼 멕시코 수족관의 열악한 시설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인 야생방사 운동이 벌어졌다.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이 성금을 보내는 등 이내 78억원(700만달러)이 쌓였다. 결국 멕시코의 수족관은 손을 들었고 케이코는 오리건 아쿠아리움에 있다가 이날 최종 방사를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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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코가 아이슬란드 남부의 섬 베스트만 제도에 도착해 야생방사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출처 <Keiko's story: A Killer Whale goes Home>


 

 7시간 비행 끝에 케이코는 아이슬란드 남부의 섬 베스트만 제도(Vestmannaeyjar)에 도착했다. 이미 바다엔 길이 76m, 너비 30m의 야생방사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야생방사장은 길이 76미터, 너비 30미터, 깊이 7.3미터의 길이로 설치됐다. 우리나라 바다의 가두리 양식장을 연상하면 되는데, 케이코는 이 안을 헤엄치면서 야생적응 훈련을 받을 터였다. 수족관 돌고래의 야생적응은 첫째 죽은 생선을 산 생선으로 교체해 먹이고(산 생선을 잡아 먹는 방법을 익힌다),

 

둘째, 점진적으로 인간과의 접촉을 줄여 홀로 설 수 있게 하고(수족관 돌고래는 사람만 보면 쫓아와 먹이를 달라는 행동을 한다), 셋째, 차가운 바다 수온에 장기적으로 적응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케이코는 갓 두 살 때 야생에서 잡혀 20년 가까이 수족관에서 살았기 때문에 아주 긴 야생적응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케이코는 야생방사장을 중심으로 야생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2002년 케이코 프로젝트를 넘겨받았을 때, 케이코에게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방사작업에 참여한 이 단체 수석과학자인 미국의 나오미 로즈 박사가 말했다. “케이코는 아침에 방사장을 나가 야생 범고래 무리와 어울리고 저녁이 돼서야 돌아왔어요. 7월 한달은 거의 매일 그랬어요.”

 

 2002년 8월5일 케이코는 다른 고래들을 따라 동쪽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케이코의 등에는 위성위치추적장치(GPS)가 붙어 있었다. 연구자들은 조마조마하며 케이코의 도전을 관찰했다. 이 작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한 뉴질랜드 과학자 폴 스퐁 박사가 말했다. “케이코는 북대서양을 향해 가고 있었어요. 아침마다 연구자들은 케이코의 위치를 확인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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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코의 항해도를 나타낸 지도. 8월5일 아이슬란드 남부를 거쳐 그달 말까지 북대서양을 횡단했다. 각 지점은 GPS에 찍힌 케이코의 여정이다. 갓 두 살 때부터 수족관에 갇힌 고래치고는 놀라운 기록이다. 'From captiviity to the wild and back; An Attempt to release Keiko the killer whale', <해양포유류과학> 2009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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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코에 달린 위치추적기. 'From captiviity to the wild and back; An Attempt to release Keiko the killer whale', <해양포유류과학> 2009년호.

 

 케이코는 1000㎞를 헤엄쳐 8월31일 노르웨이에 도착했다. 케이코가 따르던 범고래 무리와는 헤어진 것 같았다. “체중도 잃지 않고 건강했어요. 성공적으로 먹이 사냥을 했다는 거죠.”(나오미 로즈)

 

 야생적응 훈련팀은 노르웨이에 급파됐다. 하지만 케이코는 이곳에서 야생방사장 없이 자유롭게 헤엄쳐 다녔다. 구경 인파가 몰려 관광지화되는 바람에 그동안 사람 접촉을 차단한 게 헛수고가 되기도 했다.

 

 1년 넘게 피오르 바다를 헤엄치던 케이코는 2003년 12월 갑자기 먹기를 중단하더니 무기력증에 빠졌다. 얼마 안 돼 케이코는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폐렴이었다.

 

 “케이코는 힘든 삶을 살았어요. 돌고래로서는 힘든 비행기를 네 번이나 탔고요. 하지만 변화에 도전하면서 26살까지 살았어요. 그 정도면 야생 범고래의 평균 수명이지만 수족관 개체로선 오래 산 거예요.”(나오미 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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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르웨이에 도착한 케이코. 8월30일에 찍은 사진이다. 과학자들은 케이코가 훨씬 건강하고 활달해 보였다고 말했다. 미국 휴메인소사이어티 제공.

 

 

 최종적으로 야생 무리에 섞이지 못했기 때문에 케이코의 도전은 실패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케이코는 아이슬란드 범고래 무리와 간혹 어울렸지만, 범고래들이 케이코를 끼워주진 않았다. 로즈 박사는 케이코 프로젝트가 실패했다는 시각에 반대한다. “1993년 멕시코 수족관에서 케이코를 봤을 때 매우 아팠고 무기력했지만, 아이슬란드에서의 케이코는 강건하고 활동적이었어요. 케이코가 야생에서 5년을 살았어요. 우리는 만족합니다.”

 

 케이코는 자신이 잡혀 온 위치에 방사됐지만 과거의 무리나 가족을 찾진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스퐁 박사는 이 지점에 대해 특히 아쉬워했다. “케이코 프로젝트에서 유일하게 달성하지 못한 지점이죠. 케이코가 가족과 재회했다면 야생 무리에 합류해 완전히 적응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 케이코 이야기는 나오미 로즈와 폴 스퐁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작성했다.

 

 나오미 로즈=동물보호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의 수석과학자인 나오미 로즈(49)는 국제포경위원회(IWC)의 과학위원회 위원이며 수족관 돌고래의 동물복지와 해양 생태계를 연구하고 있다.

 

 폴 스퐁=캐나다 밴쿠버 아쿠아리움의 해양포유류학자였던 폴 스퐁(73)은 고래가 수족관에 갇혀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 수족관을 나와 1972년 밴쿠버 북쪽 북서태평양 핸슨 섬에 연구소 ‘오르카랩’을 설치해 범고래를 관찰하고 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고향에 방사장 설치, 돈은 누가 내지?

 

 세계적인 해양포유류학자인 케네스 밸컴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기록을 정리한 바에 따르면, 고래 야생방사 사례는 큰돌고래·남방큰돌고래만 60차례, 범고래 21차례 등 90여차례에 이른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감금된 개체도 방사됐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큰돌고래 미샤와 에코(미국 플로리다 주 템파베이에 방사) 그리고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온 범고래 케이코처럼 방사 과정이 과학적으로 진행된 경우는 드물다. 특히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위성위치추적장치(GPS) 등 장비가 발달하지 않아 방사된 고래가 야생 무리에 합류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과학적인 야생방사 프로그램이 표준이 됐다. 터키에서 ‘돌고래와 수영하기’ 프로그램에 이용되던 톰과 미샤는 영국의 동물원 감시단체 ‘본프리’에 구조돼 2010년부터 에게해에서 지름 30m의 가두리에서 야생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 6년 가까이 수족관에 장기 수용된 이들이어서, 과학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를 주목하고 있다.

 

 야생방사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선 방사될 바다 한가운데 가두리(야생방사장)를 만들어 돌고래가 바다 환경에 적응하도록 해야 한다. 가두리는 돌고래가 잡혀온 고향에 설치하는 게 원칙이다. 원래 무리와 만나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큰돌고래 미시와 실버, 로키는 각각 다른 곳에서 잡혀 다른 수족관에서 일했는데, 1991년 야생적응 과정 없이 카리브해의 영국령 섬나라 터크스 케이커스 제도에 한데 모아 방사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야생적응 훈련은 수족관 적응 과정과 반대로 하면 된다. 야생에서 잡혀온 돌고래가 수족관에서 맨 처음 죽은 생선을 먹는 훈련을 한다면, 반대로 야생방사 과정에선 산 생선에 익숙해지는 연습부터 시작한다. 야생방사일이 가까울수록 인간과 접촉도 점진적으로 줄여야 한다. 

 수족관에 오래 있던 돌고래일수록 야생적응 기간은 오래 걸린다. 2년 동안 수족관에서 수용된 미샤와 에코의 경우 가두리에서 25일 있다가 야생적응에 성공했다. 먹이는 9달 전부터 점진적으로 산 먹이 비율을 높였다.

 

 남방큰돌고래의 야생방사에 대해서 고래연구소도 이런 적응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남방큰돌고래는 제주 연안 1㎞ 안을 계속 돌므로, 이 구간 중 하나에 야생방사장을 설치하면 된다. 돌고래들은 이때부터 야생 무리와 소통과 교감을 나누기 시작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문제는 야생방사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방사장을 누가 관리할지 여부다. 검찰 관계자는 “야생방사로 이어지는 몰수형을 구형할 경우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단체인 핫핑크돌핀스와 동물자유연대는 퍼시픽랜드가 불법을 저질러 영리를 획득한 만큼 야생방사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서울대공원에 있는 제돌이 등 세 마리에 대해선 서울시가 나서 야생방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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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종영 한겨레신문 기자
2001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한겨레》와 《한겨레21》에서 환경 기사를 주로 썼고, 북극과 적도, 남극을 오가며 기후변화 문제를 취재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 종단 환경 에세이인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지었고 『탄소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했다. 북극곰과 고래 등 동물에 관심이 많고 여행도 좋아한다. 여행책 『어디에도 없는 그곳 노웨어』와 『Esc 일상 탈출을 위한 이색 제안』을 함께 냈다.
이메일 : fandg@hani.co.kr      
블로그 : http://plug.hani.co.kr/isoundmy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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