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바위타기 쇼, 하와이 망둑어의 비밀

조홍섭 2013. 01. 11
조회수 40331 추천수 1

배와 입의 빨판 이용해 100m 폭포 기어올라, 가파른 화산 계곡 적응

'굴절적응'의 새 사례로 밝혀져…오묘한 동물 구조와 행동은 창조 아닌 우연과 재활용 덕분

 

Takashi Maie_climbing-goby-fish1.jpg » 두 개의 빨판을 이용해 최고 100m 높이의 폭포도 기어올라가는 하와이 고유종 망둑어. 굴절적응의 새로운 사례임이 밝혀졌다. 사진=마이에 다카시
 
도저히 물고기가 살 수 없을 것 같은 곳에서 물고기를 발견하는 수가 있다. 하와이 화산 계곡이 그런 곳이다. 홍수 때면 가파른 계곡을 따라 급류가 몰아치고 높이가 100m에 이르는 폭포가 허리를 자르는 개울의 최상류에도 물고기가 산다.
 

하와이 원주민들은 오래전부터 즐겨 잡아먹던 이 물고기를 ‘바위 타기 망둑어’라고 불렀다. 바위에 들러붙어 꼬물거리며 폭포를 기어올랐기 때문이다. 쉽게 떨어져 나가지 말았으면 하는 행운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와이 고유종인 이 망둑어는 개울 바위에 알을 낳지만 새끼는 급류에 휩쓸려 바다로 내려간다. 새끼가 산골짜기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약간의 변신이 필요하다. 먼저, 앞으로 뻗은 주둥이가 아래로 향하도록 방향을 틀고, 물벼룩 등을 먹던 동물성 식성을 풀만 먹는 채식주의로 바꿔야 한다.
 

Peter van der Sluijs_545px-Sucker_of_a_zwartbek_goby.jpg » 망둑어과 어류에 공통적으로 나 있는 빨판. 배지느러미 두 개가 합쳐 형성됐다. 사진=피터 반 데르 슬루이지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일반적으로 망둑어과 어류는 배지느러미 두 개가 맞붙어 만들어진 흡반이 있어 물살에 쓸려가지 않고 돌 등에 몸을 고정하는 데 쓴다. 그런데 이 하와이 망둑어는 빨판이 배뿐 아니라 입에도 있다. 앞으로 튀어나온 위턱을 바위 표면에 붙이고 먹이인 부착조류를 떼어 먹으면서 턱걸이를 하듯 몸을 위로 밀어올린다.

 

배와 턱의 두 빨판을 교대로 바위에서 떼었다 붙였다 하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무작정 폭포 위로 몸을 던지는 연어나 열목어보다 느리고 멋은 없지만 확실한 전진 방법이다.
 

Hawaii bishop museum_fishnative_SicyopterHanawi_rs.jpg » 배와 입의 빨판을 이용해 바위를 기어오르는 하와이 망둑어. 사진=비숍 박물관

 

그렇다면 폭포를 입을 이용해 거슬러 오르는 이 놀라운 행동은 어떻게 진화한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 클렘슨대학 연구자들은 먹이를 먹을 때와 몸을 밀어올릴 때 턱 근육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정밀하게 조사했다.

 

결과는 비슷했다. 다시 말해, 먹이 먹기와 이동이란 두가지 전혀 다른 행동이 사실은 하나의 적응 결과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다. 절벽을 기어오르려고 입을 독특하게 적응시켰는데 마침 부착조류를 먹는 데 활용하게 됐거나, 반대로 조류를 뜯어 먹기 위해 아래로 방향을 튼 입을 활용해 기어오르는 데 썼거나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Deinonychus_feathered.jpg » 깃털이 달린 데이노니쿠스 공룡의 모형. 깃털은 처음 보온과 장식용으로 먼저 쓰였고 비행 용도는 나중에 개발된 것이다.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이처럼 특정 용도를 위해 적응한 몸의 구조를 전혀 다른 용도로 이용하는 것을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굴절적응’이라고 불렀다. 그는 이 용어를 제안하면서 애초 단열 목적으로 출현한 깃털이 결국 비행 수단으로 쓰인 것을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이 밖에도 원시 물고기의 폐가 나중에 육상동물의 허파와 물고기의 부레로 전혀 다르게 이용된 것, 포유류의 땀샘이 유선으로 바뀌어 젖을 분비하는 것, 벌의 산란기관이 침으로 바뀐 것 등이 굴절적응의 예로 알려져 있다.
 

찰스 다윈은 이미 1859년 <종의 기원>을 쓸 때 이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기의 두개골에 봉합선이 있는 것은 분만의 고통을 덜어주는 놀라운 적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럴 걱정이 전혀 없이 알을 깨고 태어나는 새나 파충류에게도 같은 봉합선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고등동물은 단지 오래전에 이룩한 진화의 결과를 잘 활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복잡하고 오묘한 생물의 기능을 보면 어떻게 자연이 저절로 그런 걸 만들었을까 믿기 힘들기도 하다. 그래서 섣불리 신의 섭리나 창조를 들먹이는 잘못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진화는 기회주의적이고 우발적”이란 굴드의 말처럼 자연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융통성이 많고 재활용에 능하다.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ullen JA, Maie T, Schoenfuss HL, Blob RW (2013) Evolutionary Novelty versus Exaptation: Oral Kinematics in Feeding versus Climbing in the Waterfall-Climbing Hawaiian Goby Sicyopterus stimpsoni. PLoS ONE 8(1): e53274. doi:10.1371/journal.pone.0053274 http://dx.plos.org/10.1371/journal.pone.0053274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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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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