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나비가 바다 고둥의 독 보유 밝혀져

조홍섭 2012. 10. 16
조회수 31822 추천수 0

화려한 동남아 나비 날개에 포식 고둥의 맹독 포함돼

독성물질 공유 이유는 아직 수수께끼 

 

poisonous-butterfly.jpg » 날개에 독성이 있는 열대 나비 헤보모이아 글라우시페. 사진=미국립과학원회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와 호주에 널리 분포하는 흰나비과의 나비가 있다. 날개 끝의 주황색 반점이 도드라지는 이 나비(학명 헤보모이아 글라우시페)는 아름다운 만큼 날개에 맹독을 품고 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연구자들이 이 나비의 독성물질을 분석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이 독이 바다에 사는 청자고둥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던 것이다.
 

청자고둥은 인도양에 서식하는 포식동물로 다른 고둥을 포함해 바다의 연체동물을 잡아먹고 사는데, 독 한 방울로 사람 20명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맹독 물질을 품고 있다.
 

800px-Conus_marmoreus_feeding_on_cowrie.jpg » 다른 연체동물을 잡아먹고 있는 청자고둥.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H. Zell_725px-Conus_marmoreus_01.jpg » 청자고둥 껍질. 사진=H. 젤, 위키미디어 코먼스

 

연구자들은 최근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서 이 나비로부터 청자고둥에서 발견되는 ‘클라콘트리판-엠’이란 독성분을 검출했다고 밝혔다. 이 성분은 나비의 몸에서는 나오지 않았고 날개에만 포함돼 있었다. 또 애벌레의 피부에도 독성이 있었다.
 

이 나비는 풍접초과 식물에 알을 낳으며 깨어난 애벌레는 이 이 식물에 알을 낳는다. 독물질의 시안 성분은 이 식물로부터 유래한다고 논문은 밝혔다.
 

G. Lubec.jpg » 난초 사마귀가 독성이 있는 나비의 날개를 떼어낸 채 먹고 있다. 사진=G. 루벡, 미국립과학원회보

 

geko.jpg » 말레이시아 도마뱀부치는 독 나비를 날개째 먹지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진=미국립과학원회보

 

흥미롭게도 이 나비의 포식자인 새, 개미, 난초 사마귀 등은 이 나비를 잡았을 때 날개는 먹지 않고 몸만 먹었다. 그러나 도마뱀부치는 이 나비를 통째로 먹었는데, 나비에 포함된 독성분이 웬만한 포식자에게는 치명적일 만큼 충분하게 들어있음에 비춰 이 파충류가 독성 작용을 막는 면역 체계를 갖춘 것으로 논문은 추정했다.
 

Hectonichus_Nymphalidae_-_Hebomoia_glaucippe.jpg » 날개에 독성이 있는 나비 헤보모이아 글라우시페. 사진=헥토니쿠스,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다면 왜 고둥과 나비가 똑같은 독성물질을 갖게 된 걸까. 나비와 고둥이 진화의 갈래로 갈라지기 전 공통의 조상이 이 독성분을 지녔던 것일가.
 

하지만 아직 그런 추론을 뒷받침할 증거는 없다. 논문은 “땅에 사는 나비와 바다 고둥이 똑같은 독성물질을 갖게 됐는지를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이 나비와 다른 독성을 지닌 동물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Peptide toxin glacontryphan-M is present in the wings of the butterfly Hebomoia glaucippe (Linnaeus, 1758) (Lepidoptera: Pieridae)
Narkhyun Baea,1, Lin Lia,1, Martin Lodlb, and Gert Lubeca
www.pnas.org/cgi/doi/10.1073/pnas.1209632109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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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섭 기자
20년 넘게 환경문제를 다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환경전문기자를 역임했으며 웹진 물바람숲의 운영자입니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네이버에 <한반도 자연사>를 연재했고 교육방송(EBS)의 <하나뿐인 지구>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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